문주란 "진짜 좋은 명곡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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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 "진짜 좋은 명곡을 내고 싶다"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6.10.23 04: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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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살이 18년째... 주말 뮤즈클럽 라이브 무대에 극성팬 열광
"4계절의 변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까 세월의 흐름을 너무 절박하게 느낌니더. 숲의 색깔이 하루하루 다름니더. 세월이 가는구나, 또 나이 먹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지예. 요즘 들어 외로움을 많이 타는 거 같슴니더."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22일 저녁, 6,70년대 한국 가요계를 풍미했던 톱가수 문주란씨의 라이브 카페 '문주란 뮤즈클럽'을 2년 만에 다시 찾았다.

서울에서 남한강변을 따라 6번 국도를 타면 양평 들머리에서 청평으로 가는 이정표와 만나게 된다. 신양평대교를 지나 다시 363번 지방도를 타고 10km 남짓 가다보면 청평 북한강가에 이태리풍의 하얀색 라이브 카페가 나온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

"당신과 나는 사랑을 했지요/ 서로 좋아 사랑했죠/ 당신과 있으면 행복해서/ 이 세상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죠/ 모진 바람 불어와도/ 이젠 다시 울지 않겠어요/ 당신이 있으니까."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자 85평 넓이의 홀 안은 40∼50대 중년들로 꽉 들어찼다. 132개 좌석이 만원이다.

저녁 7시. 먼 기적 소리처럼 트럼펫 연주가 길게 울려퍼지자 진주빛이 도는 흰 구슬로 엮은 귀걸이와 검정색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문주란씨가 추억을 노래하며 무대에 올랐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요란한 박수가 터졌다. 귀에 익은 선율, '안개낀 고속도로'다.

"오신다고 욕봤슴니더. 운동하다 넘어져서 가슴이 쪼매 아픔니더. 추억의 노래 귀에 익은 노래가 나오면 함께 따라 불러주이소. 그럼 저도 힘이 나겠슴니더."

'보슬비오는 거리' '낙조' '꼭필요합니다' '초우'. 특유의 저음인 알토와 소프라노를 넘나드는 그의 가창력에 객석이 금세 한껏 달아올랐다. 함성과 찬사가 쏟아졌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댄다. 70년대 극장 리사이틀이 아마 이랬겠지.

"옛날 노래인데 이렇게 다들 기억해주셔서 고맙슴니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무대 위에서 팬 여러분들을 뵈면 목이 메고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슴니더."

번잡한 도시생활을 피해 한가로이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1999년 이곳으로 왔으니 벌써 청평살이 18년째다.

그는 유난히 계절을 많이 타는 듯했다.

"4계절의 변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까 세월의 흐름을 너무 절박하게 느낌니더. 숲의 색깔이 하루하루 다름니더. 세월이 가는구나, 또 나이 먹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지예. 요즘 들어 외로움을 많이 타는 거 같슴니더."

새파랗고 싱싱하던 이파리들이 어느새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가는 계절의 변화를 보고 있노라니 감수성이 예민해진 것이다.

"이럴 때 눈물이 다 날라캄니더."

가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열 네살 너무 이른 나이에 혜성처럼 나타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벌써 연예계 생활 50년째다.

타인으로부터 주목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즐거움, 큰 행복일 게다. 문주란씨는 때로 평범한 일상으로의 일탈을 꿈꿀 때가 있다고 했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소리치고 싶을 땐 마음껏 떠들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자유가 그립다는 얘기다.

그때 부산에서 올라온 한 열성팬이 그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이럴 때 눈물이 다 날라캄니더."

이어 60년대 영화 주제가로 크게 히트했던 '타인들'(문희 주연), '파란 이별의 글씨'(윤정희 주연)를 연거푸 불렀다. 모두 박춘석씨(2010년 작고) 작곡이다. 문주란씨는 이날도 박춘석씨 얘기를 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따금 마주치는 그의 눈가엔 방울방울 이슬이 맺혔다. 촉촉하게 젖은 그의 목소리가 황혼에 서러웠다. 울긋불긋한 조명 아래서 유난히 슬퍼보이는 그는 이날 사람이 그립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빠바바 바바바방~' 전자 오르간의 음율을 타고 흐르는 '백치아다다'는 흐느끼듯 눈물겨웠다. 수백 번도 넘게 불렀을 이 노래의 노랫말을 그는 음미하듯 읊조렸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검은 머리 금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꽃가마에 미소짓는 말~못하는 아다다여/ 차라리 모를 것을 짧은 날의 그 행복/ 가슴에 못 박고서 떠나버린 님 그리워/ 별 아래 울~며 새~는 검은 눈의 아~~~다다여."

신청곡도 빗발쳤다.

'별이 빛나는 밤의 부르스' '당신이 있으니까' '공항의 이별'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동숙의 노래' 등을 잇따라 열창했다.

자신이 부른 노래 가운데 가장 아끼는 곡으로 '동숙의 노래' '백치 아다다' '파란 이별의 글씨' '주홍글씨' 등 쓸쓸하고 서정적인 노래를 주로 꼽았다. 노랫말도 대부분 사랑하고 이별하고 실연하고 눈물흘리고 그런 것들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노래하며 120분 동안 펼쳐진 '문주란 쇼'는 불빛에 반짝이는 북한강을 배경으로 빛줄기가 창을 타고 흐르며 운치를 더했다.

가수 문주란. 1966년 '동숙의 노래'를 불러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후 '타인들' '돌지 않는 풍차' '공항의 이별' '공항대합실' '생각하지 말아요'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면서 1960∼7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다. 절절한 가사와 귀에 감겨드는 멜로디가 매혹적인 그의 히트곡 대부분은 박춘석씨 작품이다.

불멸의 히트곡 '동숙의 노래'는 1966년 남궁원·태현실씨가 주연한 전쟁영화 <최후 전선 180리>의 주제가로도 불렸다. 크게 히트한 만큼 노래 속의 주인공 '동숙'에 얽힌 사연과 뒷얘기도 많았다. 동숙은 1960년대 어려운 시절을 살던 우리네 누이들의 자화상이다. 

당시 한 음악평론가가 "남인수 이후 가창력이 가장 뛰어난 가수는 문주란과 정훈희"라고 말할 정도로 개성 있는 그의 가창력이 가요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곡이 궁금해서 물었다.

"진짜 좋은 명곡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가슴 저미는 첫사랑에 울어야 했던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언젠가 얘기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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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2016-10-23 10:45:05
정말 멋지십니다. 어쩜 저리도 매력적인 목소리가 나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