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대공분실은 한국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이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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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은 한국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이 돼야"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8.01.10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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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에 담긴 알맹이를 찾아 역사의 교훈으로... 진정한 청산은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져야
"남영동 대공분실을 역사박물관으로!"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역사박물관으로!"

남영동 대공분실. 문재인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봤다는 영화 <1987>의 주요 배경이 된 곳.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고문피해자 단체들은 "남영동 대공분실은 역사박물관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독재정권 시절 치안본부(경찰청) 대공수사 기관으로 주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끌고 가 조지던 곳이다. 특히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갖은 고문으로 인간성을 말살하고 황폐화시키던 곳으로 악명이 높다.

1985년 9월 당시 김근태 민청련 의장을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전기고문을 했으며 1987년 1월에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그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박종철군이 물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곳, 김근태 의장이 반복된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됐던 곳.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박종철군이 고문받았던 그 방에는 지금 무엇이 남아 있나. 유리창으로 가리워진 방 안엔 달랑 영정 사진 하나만 있다. 김근태 의장이 저승의 문턱까지 간 그 방은 지금 깨끗하게 청소된 채 아무 흔적도 없이 음침한 공기 속에 방치돼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5층 16개 조사실들은 이렇게 텅 빈 채 괴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고 한다.

박종철사업회,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추진단은 그동안 SNS를 비롯한 온라인상에서 청와대 20만명 청원운동(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78392)을 벌여 왔다.

또 민청련동지회, 박종철사업회, 이한열사업회,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서울대민주동문회 등 고문피해자 90여 개 단체와 남영동 시민의 품으로 추진단은 지난 9일 "남영동 대공분실은 역사박물관이 돼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나치 체제를 경험한 독일의 경우 작센하우젠 수용소, 다하우 수용소, 나치전당대회장 등 오늘날 도처에 남아 있는 나치의 흔적들은 박물관으로 남겨 보존하고 있다. 늘 많은 시민들이 그곳을 방문해 나치의 잔학상에 대해 반추하고 또 반추한다고 한다.

독일에서 나치 체제에 대한 청산은 이렇게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100만 구름 인파
1987년 7월 9일 치러진 연세대생 이한열씨 장례식에 100만명이 넘는 구름 인파가 몰려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주었다.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데일리중앙

이에 반해 우리의 87년 체제에는 청산이 없었다.

그 결과 그해 12월에 치러진 대통령선거는 노태우의 승리로 나타났다. 흔한 말로 '죽쒀서 개 준 꼴'이 됐다. 항쟁의 금자탑을 수구보수 세력에게 반납하는 어리석음을 또다시 되풀이한 것이다.

피눈물을 흘리며 좌절을 겪고 학습한 대다수 국민들은 87년을 결코 반복할 수 없으며 다시는 반동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4.19와 6월항쟁, 촛불혁명에 담긴 알맹이를 찾아 보수 세력의 집권으로 헐어버린 민주주의 체제의 텅 빈 속을 채워야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텅 빈 16개 고문실을 피의 기록으로 채워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후세에게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고문피해자 단체들과 남영동 시민의 품으로 추진단은 성명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거쳐 간 수많은 고문 피해자들의 기록을 작성하고 가해자들을 밝혀내야 한다. 독재정권이 어떤 방식으로 민주화운동가들을 고문하고 핍박했는지 세세하게 밝혀내서 생생하게 재현해 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국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엔 이 땅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사람은 누구든지 김근태처럼 만신창이가 되든지 박종철·이한열처럼 죽을 수도 있던 시대였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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