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종의 사슬끊고 참민주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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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종의 사슬끊고 참민주 세상으로
  • 석희열 기자
  • 승인 2007.06.10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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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6.10항쟁 20돌...역사를 바꾼 그날의 함성

4반세기에 걸친 군부독재를 끝장내고 민주정부 출범의 터전을 마련한 87년 6월항쟁이 올해로 스무돌을 맞았다. 6월항쟁으로 국민은 '6·29선언'이란 독재정권의 항복선언을 끌어내 '문민시대'를 열었지만 6월항쟁에 담긴 참민주화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전히 완성되지 않은 채 미완으로 남아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물줄기로 굽이쳤던 자주·민주·통일의 6월정신을 오늘에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1987년 6월항쟁의 현장
87년 6월 10일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경찰의 원천봉쇄로 시내 곳곳이 막히자 명동성당으로 들어와 군사독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후 명동성당은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교실이나 군사정권을 규탄하는 성토장이 되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 민중항쟁이 그 정점을 향해 가파르게 치닫고 있던 87년 6월 18일 오후 3시. 점심도 거른 채 1주일째 집무실에 대기하고 있던 권복경 치안본부장의 무전기에는 시위현장으로부터 타전되는 다급한 목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서울시내가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폭풍이 불어치고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국민적 저항이 성난 파도처럼 몰아쳤다. 경찰은 곳곳에서 시위대에 포위된 채 밀리고 있었고 무장해제당했다. 시위진압 장비들이 불탔다. 최루탄마저 바닥나 경찰력으로 시위대를 막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점점 위기상황이 다가오고 있었다.

80년 5월 광주를 무력진압하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 군사정권은 그 태생부터가 도덕적 정통성을 갖지 못했다. 안기부·기무사·검찰·경찰 등 공권력을 동원한 강권통치로 겨우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정권이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뜨거운 열망과 저항을 감당하기에는 애초부터 역부족이었다.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열린 날에 맞춰 벌어진 '6·10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과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시작으로 연일 계속된 시위는 갈수록 열기를 더해 갔다.

연인원 500만명 참가한 한국의 대서사시

▲ 1987년 1월26일 서울대생 박종철씨 추모식에 참가한 박씨의 어머니 정차순 여사가 학생들의 추모사를 들으며 울부짖고 있다.
ⓒ 고명진 사진집
6월항쟁에 불을 지핀 도화선은 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일어난 경찰의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여기에 전두환 정권의 4·13호헌조치와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폭로사건'이 민주화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전국의 대학가는 연일 시위와 데모로 들끓었다. 교수들도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거대한 물결에 합류했다. 정치연금에서 풀려난 김영삼·김대중이 이끄는 민주화추진협의회가 84년 5월 결성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야권 역시 85년 2·12총선에서 신민당 신생돌풍을 일으키며 숨가쁘게 움직였다.

6월 10일 오전 잠실체육관. '민정당 제4차 전당대회 및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 전두환은 육사 11기 동기인 노태우의 손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민정당의 권력승계 작업이 마무리되었음을 선언했다.

같은 시각. 전국 22개 도시에서는 수십만명의 국민이 참가한 가운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무차별적으로 뿜어대는 다탄두 최루탄과 자욱한 가스연기 속에서 학생과 시민은 어깨에 어깨를 겯고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10대 소녀에서 60대 할머니까지 대열에 뛰어들어 눈물을 흘렸다. 장구한 역사 앞에 모두가 하나된 기쁨, 억눌리고 억눌리다 비로소 떨쳐 일어선 감격과 회한의 눈물이었다. 이날의 성난 파도는 뜨겁고도 장렬했다. 너도 나도 무릎 꿇고 살기보다 차라리 서서 죽기를 다짐했다.

"세계의 양심과 이성이 우리를 격려하고 민주제단에 피뿌린 민주영령들이 우리를 향도하며, 민주화 의지로 사기충천한 온 국민의 민주화 결의가 큰 강줄기를 형성하니 무엇이 두려운가. 자! 이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찬연한 민주새벽의 그날을 앞당기자."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수치와 분노가 독재자에게 던지는 마지막 항거였다.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가슴 속 깊이 묻어둔 80년 광주의 민주영령들에 대한 산 자들의 속죄였다.

6·10국민대회는 그야말로 30년 군부통치의 질곡을 단박에 사르는 거대한 불꽃이었다. 몸서리쳐지는 억압과 굴종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마침내 참민주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역사적 시민항쟁의 분수령이었다.

굴종의 사슬 끊고 참민주 세상으로

이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국민합의를 배신한 4·13호헌조치는 무효임을 모든 국민의 이름으로 선언했다.

"세계의 양심과 이성이 우리를 격려하고 민주제단에 피뿌린 민주영령들이 우리를 향도하며, 민주화 의지로 사기충천한 온 국민의 민주화 결의가 큰 강줄기를 형성하니 무엇이 두려운가. 자! 이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찬연한 민주새벽의 그날을 앞당기자."

이날 오후 6시 경찰의 원천봉쇄로 겹겹이 둘러싸인 서울 성공회대성당에서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선포하는 애국가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화문과 서울시청 앞을 지나는 수백대의 차량이 일제히 경적을 울렸다. 시민들은 박수와 만세를 부르며 화답했다.

수십년 독재의 총칼 앞에 몸을 굽혔던 민중들이 원한에 사무쳐 일제히 떨쳐 일어선 것이다. 독재와 불의에 감연히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한 국민들의 숭고한 용기와 열정이 이날 만방에 빛났다.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에서 실로 찬연한 순간이었다.

이날의 성난 파도는 이후 명동성당 농성투쟁으로, 6·18최루탄 추방대회로, 6·26평화대행진으로 이어지며 들불처럼 타올랐다. 7월 9일 열린 연세대생 이한열씨 장례식에는 100만 인파가 서울시청 앞 광장을 구름처럼 뒤덮었다.

전국적으로 연인원 500만명 이상이 참가해 20여 일 동안 전개된 6월항쟁에 대해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한 칼럼에서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잠재력을 동력화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국민의 사회의식을 폭넓게 일깨웠다"고 회고했다.

87년 6월의 대함성. 그날의 항쟁으로 우리는 단번에 절망의 질곡에서 희망의 기슭으로 올라섰다. 연령, 직업, 계층, 종교를 뛰어 넘는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통해 우리는 민족대통합의 감격을 맛보고 무너져 내리는 군사독재를 장송했다.

그러나 또다시 분열... 대함성의 알맹이는 어디에

"너희들도 우리 자식"
6월항쟁 기간 동안 경찰의 무차별적인 최루탄 발사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어머니들이 나서 전경의 가슴에 장미꽃을 달아주며 최루탄을 쏘지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 우상호 의원실
그러나 6월의 불꽃은 다 타지 못하고 꺼졌다. 국민의 저항에 밀린 군사정권은 6·29로 위장항복하고 6·10을 무장해제했다. 선거를 앞두고 민주세력은 두 김(김대중·김영삼)씨로 갈라져 분열하고 선거혁명은 끝내 실패했다.

6월항쟁의 주역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3당합당 및 자민련과의 공조로 대통령에 오른 원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참여정부를 출범시킨 노무현 대통령 또한 잇따른 사대·굴욕외교와 '막말 정치'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6월항쟁에 대한 추억만으로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역주의세력과 수구세력을 극복할 수도 없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6월항쟁을 기억하되 기억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말고 21세기적 관점에서 6월항쟁을 극복하는 제2의 6월항쟁을 통해 6월항쟁의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하는 역사적 진보의 발상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6월. 모든 국민이 군사독재에 맞서 떨쳐 일어나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며 새역사를 창조하고자 했던 그날의 대함성에 담긴 알맹이를 찾아야 한다.

들불처럼 타오른 6월항쟁...100만 몰린 이한열씨 장례식

▲ 1987 7월 9일 치러진 이한열씨 장례식에 100만명이 넘는 구름 인파가 몰려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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