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59주년... "아~ 자유여, 정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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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59주년... "아~ 자유여, 정의여 만세!"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9.04.19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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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죽어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쓰러져간 젊음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이젠 우리 폭정에 견딜 수 없어/ 자유의 그리움으로 분노를 뱉는다/ 아, 총탄에 뚫린 4월 그 가슴 위로/ 넋이 되어 허공에 출렁이는 아 자유여 만세" (서울대 메아리, '4월 그 가슴 위로' 중에서)

59년 전 4월의 그날- 한여름처럼 양광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광화문 세종로 종로 일대를 노도와 같이 휩쓸던 젊은 함성들. "사악과 불의에 항거해 압제의 사슬을 끊고 분노의 불길을 터뜨린" 민족사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민주의 횃불 4월혁명.

무심한 세월은 흘러 그날로부터 반세기 넘게 지났건만 혁명의 상흔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그때 치우지 못한 혁명의 찌꺼기들은 수십년 동안 그대로 쌓이고 쌓여 더욱 기승을 부리며 온갖 질병과 해악을 이 땅에 뿌리고 있다.

'피의 화요일'로 불리던 그날의 함성으로 우리는 단번에 절망의 질곡에서 희망의 기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새벽을 틈타 한강을 건넌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무장해제당해야 했다.

실패한 혁명이 다음에 결과할 반동의 역사를 한 치만 내다보았던들 4월혁명은 그때 그처럼 그렇게 속절없이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을-.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쓰러져간 젊음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의 '진달래')

19일 서울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역에서는 국가보훈처 주최로 시민과 학생 2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민주주의!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59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열렸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4.19혁명의 의의를 되새기는 한편 4.19혁명의 과정과 의미를 재조명했다.

특히 7년 만에 4.19혁명 유공자 포상(40명)도 이뤄졌다.

기념식은 국민의례와 헌화분향, 경과보고, 4.19혁명 유공자 포상, 기념사, 기념공연, 4.19의 노래 제창 순으로 KBS 박지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59주년 4.19혁명 기념식 기념사에서 "4.19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탄탄한 초석을 놓았다"고 민주 영령들의 넋을 추모했다.

이 총리는 "이후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항쟁, 국정농단을 심판한 2016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의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다"고 4.19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고 진달래 피는 4.19 민주묘역. 산허리를 감싸고 도는 안개비에 젖은 4.19 묘역에는 전날부터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960년 4월 19일 신설동 네거리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이 쏜 총탄에 쓰러진 곽종한(당시 19세)씨의 유족은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젊은 주검들이 아스팔트 위에 꽃잎처럼 나뒹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서울대 문리대 김치호. 그의 비석에는 '평북 신의주 출생. 서울대 문리대 3년 재학.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 시위 중 총상. 같은 날 수도육군병원에서 사망.' 이라고 적혀 있다. 묘역에는 작은 무덤과 함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안병채(安炳彩). 경북 영풍 출생. 당시 동신국민학교 4학년에 다니던 그는 1960년 4월 19일 신설동 네거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묘역에는 비석만 세워져 59년 전의 그날을 증언하고 있다.

무덤이 있는 묘역은 유족의 뜻에 따라 시신 안장을 한 경우이고, 비석만 세워져 있는 묘역은 마찬가지로 유족의 뜻에 따라 유골 안장이라고 한다.

265명의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4.19 민주묘역에는 먼저 가신 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듯 산 허리의 높은 잎들이 햇볕을 받아 소리없이 반짝였다.

▲ 시인 박목월은 4월 혁명 영령들을 '죽어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추모했다. 또 시인 유안인은 해마다 4월이면 꽃으로 살아온다고 4월 혁명 넋을 추억했다.
ⓒ 데일리중앙

시인 박목월은 언젠가 4월 영령들을 "죽어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추도했다.

또 유안진 시인은 "지금쯤 장년고개 올라섰을 우리 오빠는 꽃잎처럼 깃발처럼 나부끼다 졌다"면서 "해마다 4월이 오면 새잎으로 꽃으로 다시 살아오신다"고 추모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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