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얼쑤', 우리 문학 최고의 단편소설 뮤지컬로 만남
상태바
[리뷰] 뮤지컬 '얼쑤', 우리 문학 최고의 단편소설 뮤지컬로 만남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9.05.04 23:39
  • 수정 2019.06.03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밀꽃 필 무렵' '봄봄' '고무신'... '엿장수와 남이'의 애틋한 사랑 눈물샘 자극
▲ 지난 4월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S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얼쑤>가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4일 밤 공연된 뮤지컬 <얼쑤>의 한 장면.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보리밭 이랑에 모이를 줍는 낮닭 울음만이 이따금씩 들려오는 고요한 산기슭 마을에 젊은 엿장수가 찾아온다

무료하게 생활하는 마을 아이들이 순식간에 엿장수의 엿판 주변으로 모여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말(4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S씨어터)에서 뮤지컬 <얼쑤>의 막이 올랐다.

지난 4월 17일 막을 올린 뒤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뮤지컬 <얼쑤>는 잊혀져가는 우리 단편소설을 90년 만에 되살려낸 극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봄봄'. 오영수의 '고무신' 등 우리 문학 최고의 단편소설을 살아 있는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야기꾼 역할을 하는 판소리 당나귀(판당)들이 등장해 각 작품의 시대에 맞는 민요와 한국 무용을 활용해 재치 있고 구성지게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게 이채로웠다.

한국의 정서를 재해석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흥미롭고, 어른들에게는 추억과 감성을 자극하며 한국적 뮤지컬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해줬다.

특히 오영수의 단편소설 '고무신'을 원작으로 극화한 청춘 남녀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가 눈물나게 가슴에 와닿았다.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난다."

 

▲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난다."
ⓒ 데일리중앙

'메밀꽃 필 무렵' '봄봄'에 이어 오후 7시10분께 세번째 이야기 '고무신' 무대의 막이 오르자 엿판을 든 엿장수가 객석에서 등장했다. 큰 함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고무신'은 1940년대 멀리 바다를 끼고 있는 고요한 산기슭 마을에 찾아온 봄을 배경으로 식모살이를 하는 남이(박한들 분)와 마을에 들어오는 엿장수(이원민 분) 청년의 애틋한 연분홍 사랑을 다뤘다.

어느날 마을로 찾아온 엿장수에게 남이가 식모로 일하는 주인집 아이인 영이와 윤이가 사건을 일으킨다. 녀석들은 주인 내외가 남이에게 추석치레로 사준 옥색 고무신을 엿장수에게 갖다 주고 엿과 바꿔 먹는다.

자기가 애지중지하는 옥색 고무신을 아이들이 엿장수에게 갖다 준 것을 알게 된 남이는 다시 마을을 찾은 엿장수에게 당장 옥색 고무신을 돌려 달라고 한다.

 

▲ 4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S씨어터)에서 공연된 뮤지컬 <얼쑤>가 공연이 끝난 뒤 모든 출연 배우들이 나와 커튼콜을 하며 객석에 인사하고 있다.
ⓒ 데일리중앙

엿장수는 고무신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보고 없으면 새 옥색 고무신이라도 사다 주겠다 하고 마침 남이의 옷섶에 붙은 벌을 쫓으려다 그만 남이의 가슴을 만지게 되는데...

그 뒤로 순박한 시골 청년 엿장수의 심장에 연정의 불꽃이 타올랐고 그는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한다.

열 여덟 살 처녀 남이 또한 엿장수에게 마음이 끌리지만 봉건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을 고향 마을 총각한테 시집보내려는 아버지를 따라나서고 만다.

엿장수는 자신이 사준 옥색 고무신을 신고 아버지를 따라 고향 마을로 떠나는 남이를 울음 고개에서 바라보며 목놓아 부르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남이는 끝내 돌아보지 않고 훌쩍이며 아버지에 이끌려 앞만 바라보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긴 여운을 남기며 작품은 막을 내렸다.

극중 엿장수 역을 맡은 배우 이원민씨의 남이를 부르며 울부짖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실에서도 저런 기막힌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심장이 터질 듯 서로 연모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고백도 못한 채 영영 헤어지는... 살감나는 두 청춘 배우의 호소력 짙은 연기에 객석에서 잇따라 박수가 터졌다.

한편으론 두 젊은 남녀 사이의 순수하고 애틋한 연정에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공연이 끝난 뒤 10여 분 간 커튼콜이 이어졌고 이날 뮤지컬 <얼쑤>는 오후 8시에 완전히 막을 내렸다.

뮤지컬 <얼쑤>는 5월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