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주한미군 정보요원 "전두환, 계엄군 발포 직전 광주 내려와 사살명령"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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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한미군 정보요원 "전두환, 계엄군 발포 직전 광주 내려와 사살명령" 주장
  • 송정은 기자
  • 승인 2019.05.14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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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장 전 주한미군 정보요원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에 감사... 옳고 그름 판단에 관심가져주시면 하는 마음"
▲ 김용장 씨는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광주에서 과거에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말하고 갑론을박에 시달렸던 사건들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사진=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홈페이지 화면 캡처)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송정은 기자] 오는 18일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9주기이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전두환 씨가 광주에 내려가 군사회의를 하고 계엄군 집단 발포를 했다는 내용의 증언이 나왔다.

전 미군 군사정보관 김용장 씨는 지난 13일에 39년 만에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기자회견에서 밝히려 피지에서 한국으로 일부러 와서 밝혔다.

김용장 씨는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광주에서 과거에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말하고 갑론을박에 시달린 사건들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몇 년부터 몇 년까지 어디서 정확히 근무를 했을까?

김용장 씨는 "총 25년간을 근무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연도는 언제일까?

그는 "98년인가 99년까지 근무했고 그 당시 때가 김대중 대통령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때 이민을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리고 제가 근무는 501 정보여단. 광주 파견돼서 25년간 근무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과거 받았던 신분증이나 문서, 기록 등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을까?

김용장 씨는 "있다, 물론 있다"며 "그 당시 때 받은 표창장도 있고 군속 근무 기록도 있고 여러 가지 것이 많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어제 전두환 씨가 그 당시에 광주에 있었다라는 말을 했다.

이에 대해 "네, 저는 분명히 봤다"며 "또 거기서 회의를 했고 5월 21일"이라 설명했다.

또한 "낮 12시경에 본인 헬기로 왔다"며 "확실한 거다"라고 못박았다.

'헬기를 타고 왔다가 언제 돌아간 겁냐?'라는 진행자 질문에 그는 "1시간 후에 돌아갔다"고 증언했다.

'1시간 머물다가 간 동안 직접 목격을 하신 건 아니고 이건 소스. 그러니까 정보원을 통해 들으신 거라고 하셨다'라는 진행자 말에 그는 "네, 정보원을 통해서. 전화로 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제가 가서 그분을 만나뵙고 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받았다"며 "왔다는 얘기다. 전두환 씨가 왔다고"라 밝혔다.

이어 "이미 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전호용 전 사령관. 또 505보안대의 이재우 대령 그리고 또 한 분이 계신데 그분 이름은 나중에 그분 이름을 알게 됐지만 그 이후에 알게 된 내용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왜 그러냐 하면 그때 보고한 내용만 김현정 씨에게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인지한 내용들은 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 회의에서 아마 발포 명령, 발포 명령을 넘어서 사살 명령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건 무슨 말씀이냐?'라는 진행자 질문에 그는 "그건 제 사견이다"라며 "왜 그러냐면 그분이 서울로 돌아간 바로 직후에 광주 도청 앞에서 집단 사살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한 70명. 그렇게 집단 사살을 당했는데 그건 전두환 씨 명령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며 "전두환 씨가 사살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고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우리 정보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밝혔다.

'그날 집단 발포가 있었던, 발포 명령이 떨어진 날이 전두환 씨가 광주를 방문하고 간 그날... 같은 날이기 때문에 이건 추정해 보자면 결국 그 명령을 하고 간 것이 아닌가라고 공유를 하셨군요, 정보원들 사이에서는'이라는 진행자 말에 김용장 씨는 "제가 말하는 것은 그 발포는 그 이전에도 이루어졌는데 그렇게 집단 사살 행위는 전두환 씨가 광주에 온 이후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이런 것들은 위원회가 결성이 되면 거기서 밝혀져야 할 일이다"라고 밝혔다.

이것들을 보고한 정보원들은 그러면 군 내부 사람들일까?

김용장 씨는 "한 분이 있는 게 아니고. 복수의 정보원들이고"라며 "지금 다 살아계실 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분들 중 누군가가 양심 선언을 하고 공개적으로 말씀을 하실 수도 있겠다'라는 진행자 추측에 김용장 씨는 "그럴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분들이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 좀 회의적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 있다. 그 조직으로부터 잘못하면 속말로 왕따를 당할 수 있는. 특히 정보 기관에서는 배신자. 이런 낙인을 찍힐 가능성이 많다"며 "그리고 또 양심 선언을 해서 오는 여러 가지 불이익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감히 못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한 특수군이 존재했다. K57 광주 제1전투비행단 격납고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국군을 30-40명 목격했다. 맞냐?'는 진행자 말에 "네"라고 긍정했다.

그는 "편의대라고 부르죠, 그분들이... 그 편의대란 말은 편리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라는 뜻 아니냐?"며 "군인이 이런 민간인 복장을 하고 어떤 일을 수행하잖아요. 그걸 편의대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한 30-40명 왔다, 헬기를 타고"라고 설명했다.

이어 "광주를 가서 유언비어를 유포하기도 하고 또 시 군중들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또 과격한 시위를 해서 폭동하는 이런 일을 했다"며 "그건 보고를 제가 하지 않고 다만 편의대가 현장에 있었다. 그것만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진행자는 "이야기가 자연히 북한군 침투설로 얘기가 이어지는데 북한군이 광주로 내려와서 그러니까 시민이 아니고 그 사람들. 북한군이 내려와서 폭동 일으킨 거다라는 게 지금까지 지만원 씨의 주장 아니었냐?"며 "지만원 씨를 비롯한 일부 세력들의 주장. 선생님이 그러면 판단하시기에는 북한군이 와서 시민들 사이에 섞여서 했다라고 했던 그 행태들. 그것은 편의대, 사복 군인들, 침투된 사람들 명령을 받고, 지령을 받고 행동한 그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추정하고 계셨냐?"고 물었다.

김용장 씨는 "그렇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북한 특수군 600명이 광주시내에 침투를 했다. 그러면 바꿔서 얘기하면 왜 광주로 와요? 서울로 가지"라며 "그 사람들이 그 많은 사람들이 오면. 그러면 훨씬 더 잠복하기가 쉽지 않겠냐? 왜 하필 광주에 오냐? 그 먼 길을 통해서 잠수함 타고 또 태백산을 넘어서 문경을 지나 지리산을 또 넘고 광주로"라고 말했다.

그는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 얘깃거리가 안 돼요. 내가 만약에, 제가 만약에 지만원 씨라고 하면 그 스토리를 그렇게 안 만든다"며 "다르게 만든다. 그 양반이 정보에 대해서, 그분이 정보에 대해서 문외한이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진행자의 '지금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말에 김용장 씨는 "많이 있겠죠. 숫자는 모르지만 많이 있을 거다"라 답했다.

진행자는 "일부는 어디 묻혔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고 여러 이야기들이 들립니다마는 사실상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는데 그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은 광주 병원에서 소각이 됐다라고 말씀하셨네요? 이건 무슨 얘기냐?"라고 질문했다.

김용장 씨는 "그 시신을 소각했다는 거다. 첩보를 입수해서 보고한 내용이고 광주통합병원에 시신이 운반되고 거기에서 소각했다라 것까지 말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모르고 있다, 몇 구가 소각됐는지는"이라며 "나중에 들은 얘기들은 재 처리 문제다. 시신에서 나오는 재. 청소차를 이용해서 어딘가에 버렸다. 이런 얘기들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충격적인 일이 많이 있다. 밝혀지지 않는 얘기들이다"라 말했다.

'한 줄 한 줄씩, 한 줄 한 줄씩 팩트로 한 40건 정도를 보고하셨다고 들었다'라는 진행자 말에 김용장 씨는 "그렇다"라고 긍정했다.

그렇다면 그가 기억하는 다른 것들은 무엇일까?

김용장 씨는 "많이 있다. 공수부대 대원들에 의해서 성폭행 당한 것들도 있고...또 교도소 습격 사건. 습격 사건은 완전히 그건 허위다"라며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시위대들이 광주 외곽으로 나가려고 하는 그걸 교도소 습격했다고 이렇게 말을 바꾼 것"이라 말했다..

혹시 그가 증언한 내용들이 기록물로 남은 증거는 없을까?

김용장 씨는 "그건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안 되어 있다"라며 "우리 정보 기관에서는 사무실 일단 나가면 머릿속에 있는 걸 전부 다 지워버리고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심지어 우리 협조를 하는 그분들을 만나러 갈 때도 어떤 필기도구, 볼펜이나 아니면 수첩이나 이런 것을 가지고 나가도록 하지 않는다"며 "전부 다 머릿속에 기록을 해야 된다. 머리에다 기록을 해가지고 나중에 사무실에 와서 그걸 다시 영어로 디브리핑이라고 한다, 디브리핑. 다시 기록을 하는 그런 체제라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청취자들에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을까?

김용장 씨는 "감사하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우리가 옳고 그름. 이런 것을 우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이런 관심을 좀 가져주시면 하는 마음"이라 덧붙였다.

송정은 기자 beatriceeuni@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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