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월광주... 쿠데타와 학살 그리고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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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월광주... 쿠데타와 학살 그리고 저항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9.05.1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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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광주민중항쟁 39돌- 오월광주, 정의를 세우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피의 광주!
1980년 5월 17일 밤 12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뒤 총검으로 완전 무장한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내로 시가행진하며 진출하고 있다. '피의 광주'를 예고하고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12.12 군사 반란으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밤 12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총검과 곤봉으로 완전 무장한 특전사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시내로 시가행진하며 진출했다.

민주화의 봄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하며 '피의 광주'를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5월 18일(일요일, 맑음) 오전 10시 전남대 앞. "계엄 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고 외치는 학생들과 공수부대의 첫 대치가 벌어졌다.

5월 19일(월요일, 오후부터 비) 새벽 3시 공수부대 11여단 병력이 광주역에 도착하는 등 계엄군이 광주에 증파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금남로, 수만명의 시위대와 공수부대가 대치했다.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긴 침묵을 깨고 누군가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쳤다. 동시에 '탕, 탕탕탕...' 공수부대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피의 광주가 시작된 것이다.

▲ 980년 5월 18일 민주화 요구 시위대를 향한 계엄군의 유혈 진압이 시작되면서 공수부대원이 대학생을 곤봉으로 무차별 내리치며 공격하고 있다. (사진=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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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봄. 쿠데타와 학살. 그리고 저항···. 한국의 80년은 그렇게 시작됐고 어느새 '오월광주'는 한국 민주화의 정신적 고향이 되어 있었다.

핏빛 진달래와 함께 찾아온 반도의 5월은 언제나 그렇게 80년대 청춘들에게 원죄의 무게를 더해줬고 눈물과 분노, 새로운 결의와 다짐 그리고 투쟁이 늘 함께했다.

돌이켜보면 84년 이후 전국의 대학가가 들끓기 시작하고 캠퍼스가 온통 몸살을 앓으면서 드디어 '광주'가 신열을 토해내며 그 나신을 드러냈다. 투쟁의 서막을 알리는 대학가의 해오름식은 이후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캠퍼스는 단 하루도 영일이 없었다.

그렇게 광주는 그때 청춘들에겐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으며 스스로의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멍에였다. 어느 누구도 광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오직 광주만이 그들의 영감과 사상적 전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듯 민주화 여정은 거칠었고 힘겨웠으며 이따금 몸져 누웠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과 5월. '5.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고 광주 망월묘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방송3사 합동 실황 중계방송이 열렸다.

▲ 항쟁의 중심지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는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열고 대대적인 횃불행진을 벌였다. (사진=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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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에는 5.18광주민중항쟁이 정부행사로 승격됐다. 이후 5.18 공식 기념식 본 행사 때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2004년 5월 18일 광주 망월동 5.18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5.18 24돌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불렀다. 대통령은 이 땅의 참민주를 위해 먼저 가신 임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듬해인 2009년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본 행사에서 내쳤다. 역사와 상식을 뒤엎은 것이다.

이후 5.18을 앞두고 해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둘러싸고 국론이 둘로 갈라져 논란이 격화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이유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국론분열'을 언급했다. 하지만 1980년 이후 28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생겼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오월광주의 상징적인 노래라는 것은 국민의 상식이다.

다행히 촛불시민혁명으로 2017년 정권을 교체했고 그해 광주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 등 1만여 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18일 5.18광주항쟁 37돌 기념식에서 절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읽은 뒤 눈물을 흘리는 유족을 안아주며 함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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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정신 계승, 정의가 승리하는 대한민국' 주제로 열린 37돌 5.18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추모했다.

대통령은 이어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받았지만 서슬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갔다"면서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있다"고 선언했다.

광주항쟁 39돌을 맞은 올해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18일 오전 10시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유족과 시민, 학생 등 5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국가보훈처 주최로 '오월광주, 정의로운 대한민국' 주제로 열린다.

2년 전 감동적인 연설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다.

기념식은 오프닝공연, 국민의례, 경과보고, 기념공연, 기념사, 기념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60분 간 진행된다.

오프닝공연은 5.18의 역사적 현장인 옛 전남도청에서 5.18때 고인이 된 당시 고등학생의 일기를 바탕으로 작곡한 '마지막 일기'로 시작된다.

기념공연은 5.18 당시 도청 앞에서 가두방송을 진행했던 박영순씨의 스토리텔링과 고등학교 1학년 신분으로 5월 27일 새벽 최후의 항전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고 안종필의 어머니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당시 5.18을 기억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는 내용을 담는다.

특히 이번 기념식에서는 최초로 당시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인 옛 전남도청에서 이뤄지는 오프닝공연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이원생중계해 역사성과 현장감을 동시에 제공할 예정이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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