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DJ)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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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DJ) 서거
  • 데일리중앙 기자
  • 승인 2009.08.18 14:19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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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3김 시대' 막내려... 정치권 모든 일정 중단, 국민장으로 치러질 듯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18일 오후 서거했다. 한국 현대사의 큰 별이 진 것이다. 온 나라가 슬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날 오후 1시 43분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향년 85세(1924~2009).

이로써 40여 년 간 한국정치를 움직여온 이른바 '3김(金)시대'도 막을 내렸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으며 병마와 필사적으로 싸워왔다.

증세가 다소 호전돼 지난달 22일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1925년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의 4남2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난 DJ는 목포 북교초등학교와 목포상고를 나와 목포일보 사장을 지내는 등 사업으로 일가를 이뤘다.

이후 19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뒤 7, 8,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한 김대중 후보가 부산 영도에서 선거유세를 펼치고 있다. (데일리중앙 자료사진)
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으나 당시 공화당 후보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석패한 뒤 87년, 92년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했다. 인동초라는 별명답게 그는 절치부심 4수끝에 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잇따라 투옥, 수감되고 해외 망명생활을 하는 등 숱한 정치 박해를 받았다.

80년에는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때 학생 소요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국제사회의 압력 덕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82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기약없는 망명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민주화운동을 계속하던 그는 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필생의 동지이자 경쟁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만들어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

87년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민정당 노태우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92년 14대 대선에서는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 패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95년 이를 번복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네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역사적인 남북정상 상봉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1948년 남북 분단 이후 52년 만에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대면한 것이다.
ⓒ 데일리중앙
그는 이듬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야권 공조를 앞세워 9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건국 후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 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평양을 방문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친인척 비리와 인사 편중 시비, 대북 햇볕정책을 둘러싼 보수층과의 갈등으로 임기 내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60년대부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사람이 현실 정치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이른바 '3김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씨 등을 두고 있다.

데일리중앙 기자 webmaster@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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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쇼 2009-08-20 00:34:40
하늘나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빨리 해후하시길 바랍니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얼마나 반갑겠수, 국민으로서는 지도자를 잃어 안됐지만
고통없고 고문없는 곳으로 훨훨 날아갔으면 하고 기원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차미 2009-08-19 19:30:54
보다 좋은데로 가시길 빕니다.

까리오 2009-08-19 01:52:07
많은 숙제를 남기고 가셨군.
잇따라 전직 대통령이, 그것도 이 나라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분이 가셨다니
하늘이 울고 땅이 울 일이다. 국민들은 참 운이 없는 사람들인것 같다.
두세달 사이에 한꺼번에 이렇게 나라의 지도자를 잃어버리다니 말이다.
국장으로 치러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었으면 좋겠다.

김교훈 2009-08-19 00:19:35
우리나라에 지금만큼의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신 분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깊이 존경합니다.
평안하고 고통없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소서.

고강도 2009-08-18 23:12:55
아, 슬프다.
오호 통재라.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어찌 이런 황망한 일이
온국민이 애도하고 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