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김형오 국회의장 2009 정기국회 개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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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김형오 국회의장 2009 정기국회 개회사
  • 데일리중앙 기자
  • 승인 2009.09.01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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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틀과 국회문화를 바꿔 선진국회로 거듭납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용훈 대법원장,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한승수 국무총리, 양승태 중앙선거관리 위원장,
국무위원과 동료 의원 여러분,

우리는 최근 몇 달 만에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잃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은 애도와 조의를 표합니다.

특히 고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을 맞아
빈소와 분향소는 물론, 영결식까지
이곳 국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의회주의자였던 그분은 그가 사랑하는
국회에서 마지막 길을 떠났습니다.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또 화해와 통합의 용광로로서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습니다.

북한조문단의 국회의장 방문을 비롯
국장을 계기로 ‘화해와 통합‘의 바람은
과거와 현재, 동과 서, 남과 북,
그리고 여야관계에도 일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야 의원 여러분,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습니다.
일본도 5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중국은 초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국민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고자
지구촌 곳곳의 지도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직권상정, 물리적 저지와 몸싸움,
헌재제소, 장외투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여야 공수만 바뀌었을 뿐
정권에 관계없이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여당은 야당을 국정의 한 축으로 인정했는지,
야당은국정의 또 다른 한 축이라는 인식이 있었는지
냉정히 돌아봅시다.

상호 배려와 책임의식이 없는 한
정치가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국회개혁의 출발은 국회를 ‘정당의 각축장’이 아니라
국정을 논하는 ‘국민의 토론장’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에게 정당의 족쇄를 풀어
최대한의 자율권을 부여해야 합니다.

헌법기관으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책임과 권한을 스스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야 지도부에게 요청합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강제당론을 자제해 주십시오.
의원에게 자율과 독립의 권한을 돌려주십시오.
상임위에서 대화하고 타협이 될 수 있도록
정당의 간섭과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여주십시오.

동료 의원 여러분,

이번 정기국회는
18대 국회의 위상과 업적을 결정하는
중요한 100일간의 대장정입니다.

이번 정기국회는
다음의 3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개편하는
국회가 되어야 합니다.

개헌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미래를 위한 국가비전을 제시하여
나라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특히 그동안 개헌은 집권세력에 의해
비정상적인 절차로 추진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번 개헌은 국민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국회에서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가장 민주적 헌법이 될 것입니다.

여야 지도부에게 다시 한번 요구합니다.
여야가 원칙적으로 개헌에 반대하지 않는 만큼
조속히 개헌특위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가능한 한 정기국회 기간 중에
개헌안을 마련해주기를 요청합니다.

개헌특위를 통해 시기와 방법,
절차와 논의과정, 권력구조와 개헌내용을
백지상태에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수고한 헌법연구자문위원회의 건의안은
개헌특위의 활동을 위해 참고로 제시된 것입니다.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지 맙시다.
언제까지 정권투쟁으로 날 새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정치구조를 이대로 놔둘 것입니까.

개헌은 국면전환용도 아니고 정략적 산물도 아닙니다.
반드시 가야할 국가의 대사이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대역사(大役事)입니다.

개헌의 큰 그림을 그리면 선거제도개혁과 지방행정개편도
국민의 동의 속에서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국회여야 합니다.

우리는 국회법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법입니다.
유리할 때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불리할 때도 수용해야 합니다.

더 이상의 의사일정 문제로 국회 전체가
파행, 지연되는 구태는 사라져야 합니다.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준비한
국회법 개정과 윤리규칙 등은
이미 제출된 지 8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번 회기 중에는 반드시 처리,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마무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화보다는 직권상정에 의존하려는 편의적인 정치,
타협보다는 직권상정만 막겠다는 투쟁적인 정치,
이제는 끝을 내야 합니다.

저는 정상적으로 토론과 논의가 보장되고 다수결 원칙이 지켜진다면
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폐기할 용의가 있습니다.

국회폭력은 어떤 선진국에도 없는후진적이고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국회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회폭력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하겠습니다.

셋째, 민생과 서민을 위한 국회여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제 위기에서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는 하나
아직 서민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제는 썰렁합니다.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문제, 세제개편, 일자리 창출 등
각종 민생현안이 산적해 있습니다.
특히 신종플루에 대비해서 만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국민의 아픈 가슴을 보듬어주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해결해야겠습니다.
민생은 국민통합을 위한 구체적 수단입니다.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와 교류하고 협력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미FTA, 한EU FTA, 인도와의 CEPA 등의
비준동의안도 꼼꼼히 대책을 마련하여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야의원 여러분,

지난 미디어관련법 처리과정에서 보여드린 국회 모습에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국회의 문제가
국회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헌재로 넘어갔습니다.

소위 ‘정치의 사법화’는 해를 거듭할수록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 저를 비롯 입법부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은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저부터 자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헌재가 미디어법 처리를 무효라고 판단할 경우
분명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습니다.

다만 헌재의 최종판단이 나올 때까지
이와 관련한 정쟁을 중단하도록 합시다.

국회의 일, 정치로 해결해야 할 일을
사법판단에 맡기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정치는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약속과 원칙은 지켜져야 하고
결과에는 승복해야 합니다.
합의를 뒤집으면 민주주의는 흔들리게 됩니다.

말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입니다.
막말 정치는 상대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자기 스스로의 인격도 파괴합니다.
말이 달라져야 정치가 달라집니다.

여야 의원 여러분,

여야는 적이 아니라 경쟁자이면서 협조자입니다.
여당은 야당을 국정파트너로서 존중해야 하고
야당은 여당이 국정을 이끄는 실체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당은 다수고 야당은 소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소수 의견이 묵살당해서도, 의석비율이 무시되어서도
안되는 것이 국회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정해진 룰에 따라 열심히 일해 봅시다.

시대가 무섭게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열심히 앞으로 가는데 우리 정치만
뒷걸음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후진국들조차 한국 국회를 깔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정기국회기간 동안에
여야가 싸우지 않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상적으로 국회가 운영되었다는 평가를
한번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해봅시다.

의장으로서 의원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데일리중앙 기자 webmaster@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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