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비토론(veto론)과 유시민 비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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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비토론(veto론)과 유시민 비토론
  • 양순필 기자
  • 승인 2010.03.19 11: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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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순필 국민참여당 대변인

▲ 대중 감수성이 강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6.2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를 둘러싸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간 신경전이 오가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 '유시민은 안된다'는 이른바 '유시민 비토론'을 과거 군사정권 시절 '김대중은빨갱이'라는 '김대중 비토론'에 빗댄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왼쪽부터 양순필 국민참여당 대변인, 유시민 전 장관,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
ⓒ 데일리중앙
이미 오래 전에 잊혀졌고, '그'의 서거와 함께 완전히 사라진 줄로 알았던 '비토론(veto론)'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입니다. 비토론이란 "김대중은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아마 10대는 말할 것도 없고, 20대 30대 유권자 중에도 이 말을 처음 듣는 분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비토론, 영어와 한자를 섞어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말이지만 그 본질은 "철수는 싫어하는 애들이 많아서 반장이 될 수 없다"고 다른 반장 후보가 떠드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유치하지 않습니까?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돼"라며 '저질 정치 개그'라며 비웃어 넘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선거에 나왔던 1987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얼굴 좀 알려지고, 말 꾀나 하는 정치인들 중에 "김대중은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공공연히 떠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주로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그랬습니다. 노태우 후보 측과 안기부 등 정보기관은 이런 상황을 즐기며 뒤에서 더욱 부추기는 정치공작을 폈습니다. 

너그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김대중 후보의 선거 포스터에는 빠짐없이 빨간 매직으로 비토라고 쓴 낙서가 덧칠됐습니다. 마치 '추노'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도망치다 잡힌 노비들처럼 얼굴에 '비토'라고 낙인찍힌 포스터 속 김대중 대통령님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김대중 후보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도 '진짜 김대중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가봐', '역시 당선되긴 힘들겠지' 하며 두려움과 체념에 빠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후보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의 진실에 대해 알고 싶어 했던 국민들 중에는 끝내 비토론의 강을 건너오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비토론은 김대중과 국민을 갈라놓고 이간질하는 손쉬운 방법이었습니다. 그땐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김대중을 싫어한다'는 비토론은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색깔론과 함께 김대중 후보를 87년 대선에서 낙선시킨 유력한 선거 수단이 됐습니다. 네거티브의 최고봉이었죠. 

비토론은 1971년 대선 때부터 김대중의 정치인생 전반에 걸쳐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박정희와 전두환, 김영삼 등으로부터 받은 정치적 탄압과 공격은 물론 대통령 재임 중 한나라당과 족벌언론의 그에 대한 공격도 변형된 비토론이고,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가해졌던 후보교체론과 탄핵 등 정치적 음해도 비토론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드릴 말씀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고, 언제부터인가 비토론은 우리들 기억 속에서 잊혀졌습니다. 지난해 두 분 대통령님의 서거와 함께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다시 비토론을 들고 나와 정치적 동반자이며 경쟁자인 유시민 전 장관을 공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광경을 지켜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유시민은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 된다"는 말을 국민과 언론에 대고 서슴없이 말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는 정당에 속해 있고, 자신의 입으로 노무현 대통령님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과연 자신들의 주장이 김대중 대통령님을 그토록 괴롭혔던 음험한 정치공작의 산물인 비토론의 '유시민판 복제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참여당과 유시민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하지 마시고, 왜 자기 정당과 자신들이 돼야 하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득하십시오. 더 많은 국민들이 여러분의 주장을 받아들여 당신들을 선택하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은 비토론이 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발독재 시대의 제왕적 대통령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국민들도 그 시대로 돌아갔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이런 주장을 계속하시면 국민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뿐입니다.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만 웃음꺼리가 되는 게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것입니다. 특히 야권 전체의 힘을 떨어뜨려 결국 한나라당 이명박 독재 정권만 이롭게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20~30년 전으로 후퇴했다"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야당 정치인들도 똑 같은 논리로 현 정권을 공격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도 대한민국 정치를 1970~80년대로 돌려놓는 구태적 행태를 보여서야 되겠습니까. 

관 속에 영원히 잠들어 있던 비토론이라는 녹슨 칼까지 꺼내 휘두르며 유시민을 공격하는 정치인은 박정희, 김영삼의 계승자입니까? 김대중, 노무현의 후예입니까? 

       이 글을 쓴 양순필은

현재 국민참여당 대변인 겸 공보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무기획행정관으로 짧게 일했고, 이 기간에 노무현 대통령의 한국정치에 대한 생각을 담아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를 동료들과 함께 집필했다. 이 책은 노 대통령 서거 후 《노무현, "한국정치 이의있습니다"》로 재출간됐다.

최근에는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시민의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시티즌 오블리주》라는 책을 썼다. / 편집자

양순필 기자 webmaster@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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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호 2010-03-21 05:19:40
옛날 김대중 납치사건이 생각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