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65일 목하열애 중인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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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목하열애 중인 내 친구
  • 데일리중앙 기자
  • 승인 2019.06.02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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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친구가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강원도 영월에 장미와 들꽃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눈에 반짝였다. copyright 데일리중앙
1일 친구가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강원도 영월에 장미와 들꽃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눈에 반짝였다.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보리밭 넘어온 6월 아침,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나는 강원도 영월로 차를 몰았다.

세 시간 만에 도착한 영월, 그곳에는 내 친구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중학 동창인 그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곧잘 했고 나하고는 절친 중에 절친이었다.

특히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 때문에 그는 친구들 사이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 친구는 1년 365일 언제 만나도 목하 열애 중이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수감생활을 하는 신세가 됐다.

주말(6월 1일) 오후 영월에서 30여 분 간 그를 면회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나를 보자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하며 웃었다.

하루 일과가 병영생활 처럼 이뤄지는 그곳에서 내 친구는 반장인지 뭔지 하면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 나가면서 그는 내게 "인자 안 오도 된다(이제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웃었다.

주옥 같은 그의 볼우물은 여전히 멋있었다.

단종의 애환이 머물러 있는 청령포

 

단종의 애환이 서려 있는 강원도 영월 청령포. copyright 데일리중앙
단종의 애환이 서려 있는 강원도 영월 청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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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단종의 한이 서려 있는 청령포에 다시 들렀다.

명승 제50호인 청령포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1457년(세조 3년)에 노산군으로 강등돼 처음으로 유배됐던 곳이라고 청령포 입구 안내 판에 적혀 있었다.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곳이다.

청령포 울창한 송림 속에는 유배된 단종의 생활상을 보고 들었다 하여 이름붙여진 관음송이 눈길을 끈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다.

또 영조 2년(1726년)에 세운 금표비와 영조 39년(1763년) 단종이 유배돼 거처하던 곳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비석인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址碑)가 서 있었다.

송림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청령포 서쪽 절벽인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에 망향탑이 나온다.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할 때 이곳에 올라 한양 땅을 바라보며 쌓았다는 돌탑이다.

가파른 절벽을 오르며 한양에 홀로 남겨진 부인 정순왕후 송씨를 그리워했을 어린 단종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노산대는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돼 청령포로 유배된 뒤 해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으로 여겨진다.

단종은 1457년 6월 28일부터 두 달 동안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 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해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그해 10월 1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청령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사람들은 돌탑에 하나 둘 돌을 쌓았다. 아마도 어린 단종의 애달팠던 심정을 헤아리며 돌을 얹었을 게다. 

나도 돌을 하나 얹어 공덕을 쌓았다.

1일 오후 청령포에 해가 지고 있다. copyright 데일리중앙
1일 오후 청령포에 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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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에서 배를 타고 나와 동강 막국수로 허기를 채우고 창밖을 바라보니 서산에 해가 지고 있었다.

데일리중앙 기자 webmaster@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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