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과 황교안
상태바
이회창과 황교안
  • 데일리중앙 기자
  • 승인 2019.06.28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동근 민주당 국회의원

이 글은 신동근 민주당 국회의원이 28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것으로 의원실의 양해를 얻어 가공 없이 전문을 그대로 싣는다. - 편집자 주

신동근 민주당 국회의원copyright 데일리중앙
신동근 민주당 국회의원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기자] 이회창 전 총재와 황교안 대표는 곧잘 비교가 되곤 합니다. 고위 법조인 출신, 국무총리 역임, 총리직을 마치고 정치계에 입문해 곧바로 당권 획득, 지지자들에게 안정감 있는 이미지 어필 등이 공통점입니다.

이회창 전 총재는 '대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군사 정권 시절 법관으로 정권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 판결을 한 것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YS 집권 시절 감사원장으로 율곡사업 등에 대한 성역 없는 특별감사를 진행하면서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국무총리 시절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다 YS와 갈등이 생겨 5개월도 안 돼 사임했습니다.

이회창 전 총재가 정계에 입문했을 때 인기는 대단해 '창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런 인기 덕에 단기필마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급속히 당을 장악했고 2002년 대선 패배로 정계은퇴 선언을 할 때까지 7년 동안 흔들림 없이 당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2000년 총선에서는 당시 중진이었던 김윤환, 조순 등을 공천에서 배제해 물갈이 공천에 성공하는 뚝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이 총재도 두 번이나 대선 패배를 겪었습니다.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시민들은 민주화의 의미를 체감했습니다. 민권 의식이 높아졌고, 권위주의 타파 의식이 높아졌습니다. 특권 의식에 대한 거부와 '공정과 정의'에 대한 갈망이 심화됐습니다. 이 전 총재는 이런 시대 변화에 둔감했습니다. '권위주의적 엘리트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아들의 병역 의혹, 세풍, 총풍 등으로 대쪽 이미지가 훼손됐습니다. 사과와 반성에 인색해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미스터 국보법'으로 불리듯이 공안 검사 출신으로 국보법 전문가이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 이력은 별로 없습니다. 이 전 총재처럼 최고 권력자에 맞서 원칙과 소신을 펼쳤던 것이 아니라 박근혜 국정 농단에 연루됐다는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습니다. 당 대표가 되는 과정에서 당내 친박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돼 친박이 당내 주류로 다시 등장하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이 전 총재는 높은 인기에 힘입어 '강력한 대안'의 지위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황 대표는 이 전 총재에 비해 '자산은 적고 부채는 많은' 상황입니다. 황 대표는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수위를 다툰다지만 '강력한 대안'이라기보
다는 '대안 부재론'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 전 총재에 비견할 수 없는, 상당히 불안한 지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총재가 극복하지 못했던 부정적 이미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수의 혁신이 요구되는 이 때 황 대표 스스로 보수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할 때입니다.

데일리중앙 기자 shyeol@dailiang.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