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호 생존자 "배 폭침 직전, 일본인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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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생존자 "배 폭침 직전, 일본인은 떠났다"
  • 송정은 기자
  • 승인 2019.08.14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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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생존자 "당시 우키시마호 사건 증언에 대한 보도는 전 일본의 많은 신문, 일본의 라디오 단 한 마디, 단 한 글자도 발표가 안 됐다"
우키시마호 한 생존자는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배 폭침 직전, 일본인은 떠났다"고 밝혔다. (사진=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홈페이지 화면 캡처)copyright 데일리중앙
우키시마호 한 생존자는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배 폭침 직전, 일본인은 떠났다"고 밝혔다. (사진=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홈페이지 화면 캡처)ⓒ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송정은 기자] 오는 2020년 8월 15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할 예정이다.

과거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했다.

이로부터 1주일 후 8월 22일 일본에 끌려갔던 강제 징용자들, 일본에 살고 있던 교민들은 고향으로 가고자 부산행 배에 탔다고.

이 배는 우키시마호로 알려졌다.

당시 부산으로 향하던 이 배에서 의문의 폭발이 생겼다고.

이 안에 탔던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74년이 흘렀는데도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아 의문을 자아낸다.

그러나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단순 사고가 아니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우키시마호 한 생존자는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배 폭침 직전, 일본인은 떠났다"고 밝혔다.

장영도 씨는 현재 87세라고.

그렇다면 배를 탔을 때 그는 몇 살이었을까?

장영도 씨는 "13살이었다"고 말했다.

그 당시 가족을 따라서 일본을 갔던 걸까?.

장영도 씨는 "네, 그렇다. 이제 해방돼서 기쁨에 들뜨고 있었던 한국 교포들, 강제 징용자들이 부산으로 배를 태워주겠다고 하니까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죠"라고 말했다.

이어 "다 환영을 했고. 나중에 이제 이상한 소문 돌기 시작하니까 안 타려고 했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무슨 이상한 소문이었을까?

장영도 씨는 "그 사람들이 만약 이 배가 부산으로 가는 마지막 배다. 이 배를 타지 않으면 귀국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배에 탄 것이 되고"라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입추의 여지없이 여러 수천 명의 한국인들이 타기 위해서 기다렸던 그런 광경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고 설명했다.

무슨 이상한 소문이 돌았을까?

장영도 씨는 "저는 잘 모른다. 왜냐하면 어려서. 그런데 나중에 살아서 나온 증언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말을 증언한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무슨 이상한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렸기 때문에. 흉흉한 소문이 지금 생각하니까 아마 이런 폭발 사고와 관련된 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그런 게 돌면서 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라는 진행자 말이 이어졌다.

'이상하게도 일본은 이게 마지막 배다, 하면서 막 억지로 태웠다'는 진행자 말이 덧붙여졌다.

장영도 씨는 "맞다. 그러니까 모든 증언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이라 말했다.

그 배에 몇 명이 탔는지 기억할까?

장영도 씨는 "그런데 문제는 일본 사람들은 승선자 명부가 없어서 정확한 명수는 모른다"며 "다만 우키시마호 폭침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이 524명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증언한 사람들, 살아나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2000명 내지 3000명이 죽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니까 너무나 수적인 차이가 많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승선자가 한 7000-8000명 정도 되고 죽은 사람은 2000 내지 3000명이다. 그렇게 증언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정원을 훌쩍 넘어서 탔으니까 배 안에 빽빽하게 탔던 그 기억이 나냐?'는 진행자 질문에 장 씨는 "네"라도 답했다.

진행자는 '배가 부산을 향해서 출항을 하고 이틀을 갔는데 갑자기 뱃머리를 일본 쪽으로 돌린다. 부산 가는 항로를 벗어난 거다'라고 말을 이었다.

'대형 폭발이 벌어지는데 그 당시 상황 혹시 기억나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장영도 씨는 "기억이 정확하다. 그 배에 승선할 때 소위 노약자, 부인들은. 여자와 노약자들은 배 밑에다 태우고 젊은 사람, 남자들은 배 위쪽에다 태웠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하고 누나하고 여동생하고 나는 그때 어렸으니까 배 밑에 타고 아버지하고 형님은 배 위쪽에 탔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8월 22일 출항한 이후로 침몰할 때까지 같은 배에 탔어도 따로따로 타고 왔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갑자기 '육지가 가까이 왔다, 육지가 보인다' 라는 소리가 들려서 배에 밑에 있었던 내가 육지를 구경하기 위해서 배 위로 올라오려고 하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여동생이 따라오려고 하는 거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만약에 그때 여동생이 나 따라왔으면 혹시 살았는지도 몰라요"라고 설명했다.

장 씨는 "그리고 어머니가 위험하니까 올라가지 말아라 하는 거 어머니 말 듣지 않고 갑판 위로 올라왔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데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겠다"라고 말을 이었다.

장 씨는 "그리고 갑판 위에서 육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냥 펑 하는 소리가 났다"며 "소리가 남과 동시에 배가 그냥, 그 큰 배가 두 동강으로 딱 쪼개졌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에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군이 투하한 기뢰에 의해서 배가 파손됐다면 앉아 있던 내가 앞이나 뒤로 넘어져야죠. 그런데 물로 딱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살아나온 증인들 말에 의하면 물기둥을 봤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덧붙였다.

장 씨는 "그것은 결국 무엇인가 하면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투하한 기뢰에 의해서 폭파한 것이 아니고 배 내부에서 폭파시켰다고 하는 것이 증명이 되는 거다"라고 밝혔다.

'배가 폭발하기 전에 배에 탔던 일본인 승무원들 중에 고위층은 작은 배를 타고 이미 떠났었다면서요?'라는 진행자 질문이 나왔다.

장영도 씨는 "맞다. 그것은 고위층이 누군지는 잘 몰라요. 갑판에서 육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그 구명보트가 내려와요"라고 말했다.

그는 "구명보트가 내려와서 구명보트에 사람이 몇이 타고 구명보트가 막 모선을 출발하자마자 펑 하고 터졌다"고 밝혔다.

'그 당시 폭발이 일어나고 아수라장이 됐을 텐데 그 장면도 기억나냐?'는 질문이 나왔다.

장영도 씨는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폭발함과 동시에 살기 위해서 배 밑에서 갑판으로 다 올라올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어 "왜냐하면 폭발과 동시에 바로 침몰한 것은 아니니까. 보니까 이제 갑판 위에 그야말로 참 개미떼처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갑판에 있었는데"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갑판이 배가 한가운데로 딱 잘라지니까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며 "그때 갑판에 있었던 그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배가 뒤집어질 것 같으니까"라고 밝혔다.

이어 "뒤집어지면 다 죽으니까 물에 다 뛰어들었다"며 "그때 배가 파손되면서 등유가 한 10cm 정도로 두껍게 깔렸다"고 말했다.

장 씨는 "그럼과 동시에 사람은 사람대로, 짐은 짐대로 등유 깔려 있는 바다에서 그냥 말처럼 아비규환 그대로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니까 바다에 빠진 사람들은 한번 물에 빠졌다가 올라오면 얼굴에 등유가 묻어서.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고"라고 말했다.

그는 "서로 또 엉켜가지고 수영 칠 수 있는 사람이나 수영 못 치는 사람들이나 서로 잡고 엉켜가지고는 뛰어내렸던 사람들은 거의 즉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광경을 제가 지금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 씨는 "배가 기우려고 하는 그 순간 다 뛰어내리니까 나도 뛰어내리려고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딱 잡아요. 보니까 이제 아버지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뒤에서 나를 보고 뛰어내리면 죽는다, 서로 엉켜가지고 죽는다. 그러니까 그냥 죽어도 여기 가만히 있자 하고 아버지가 잡고 있어서 뛰어내리지 못했는데"라고 밝혔다.

그는 "그런데 그 무렵에 일본 사람들이 소위 노 젓는, 조그만 고기 잡는 배 있잖아요. 동네 사람들이 노 젓는 배"라며 "거기 타서 살아남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저하고 아버지하고 둘이만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이제 한 이틀 지난 이후에 배에서 침몰했던 짐이나 혹은 시체가 해변가로 떠내려온 것이 많았다"며 "아버지가 가서 일일이 시체도 찾는다고"라고 말했다.

이어 "시체를 갖다가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어머니를 찾고 다녔던 그것을 지금 기억하고 있다. 결국에는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우키시마호 사건 증언에 대한 보도는 전 일본의 많은 신문, 일본의 라디오 단 한 마디, 단 한 글자도 발표가 안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저희 선친께서 부산으로 상륙하자마자 이 사실을 고발을 했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거기에 아버지가 증언한 내용이 처음으로 기사화돼서 발표된 것"이라며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이 어떤 저의가 있으니까 이것을, 매스컴을 통제한 것이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 큰 재난사고를 갖다가 보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송정은 기자 beatriceeuni@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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