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 재개발지역, 충돌하나... 용산참사 10년이 지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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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음동 재개발지역, 충돌하나... 용산참사 10년이 지났지만
  • 석희열 기자·진용석 기자
  • 승인 2019.09.01 00:10
  • 수정 2019.09.08 06:4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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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음역세권재개발구역 강제철거 앞두고 정면충돌 우려
조합 쪽, 명도소송 결과 나오는대로 빈집부터 헐 계획
주민대책위, 육탄저지 입장... "굴착기 밑에 드러눕겠다"
서울 길음동에 '개발광풍'이 덮치면서 길음동 542-1번지 일대 4000여 평의 고급 아파트 건설 예정지에 대한 철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세입자들이 이주를 거부하고 있어 강제 철거 과정에 물리적인 충돌이 우려된다.copyright 데일리중앙 진용석
서울 길음동에 '개발광풍'이 덮치면서 길음동 542-1번지 일대 4000여 평의 고급 아파트 건설 예정지에 대한 철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세입자들이 이주를 거부하고 있어 강제 철거 과정에 물리적인 충돌이 우려된다.
ⓒ 데일리중앙 진용석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진용석 기자] 31일 오후 서울지하철 4호선 길음역 7번 출구 앞 한 주택가. 마을 곳곳이 폭격을 맞은 듯 깨지고 부서진 건물 잔해들로 넘쳤다.

사람들이 떠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빈 건물 외벽엔 듬성듬성 큰 구멍이 뻥 뚫렸고 쓰레기 더미에서는 뜯겨나간 문짝들이 나뒹굴었다.

얼마 전까지 영업을 하던 빈 상가엔 붉은 페인트로 철거, 엑스(X), 공가 등의 큰 글씨가 쓰여져 이곳이 철거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또 골목으로 들어가는 어귀에는 통행을 제한한다는 종이 딱지가 나붙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이처럼 폐허처럼 변해버린 위태로운 철거 현장에서도 몇 몇 상가에서는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390여 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이곳은 지난 2017년부터 불어 닥친 개발의 칼바람에 폐허가 됐다.

길음 역세권주택재개발구역인 이곳에 길음1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구성되고 동네 주택을 하나둘씩 사들이면서 재개발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여기에 철거 용역업체가 들어오면서 마을 분위기가 변했다.

지난 봄부터 집집마다 상가마다 언제까지(1차 4월 20일) 자진해서 이주를 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하겠다는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542-1번지 일대 4000여 평 자리에는 오는 2024년 봄 롯데캐슬 클라시아 395세대(2동, 지하 5층~지상 35층)가 들어설 예정이다. 롯데건설이 시공업체다.

길음역 일대가 거대 건설자본의 먹잇감이 되면서 말 그대로 그들에게 황금어장이 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길음동 508-16번지 일대에 롯데건설이 짓는 롯데캐슬 클라시아 2029세대(19동, 지하 6층~지상 37층)의 분양을 마쳤다.

도심 재개발 현장인 길음동 542-1번지 일대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0여 명 넘게 살았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 마을을 떠났다. 텅 빈 마을엔 세입자 등 17가구만 남아 영업보상권과 주거권을 요구하며 버티고 있다. 이 가운데 4가구는 대책위를 꾸려 사업 시행자인 조합 쪽과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대책위는 영업보상비든 이주비든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손주연 주민대책위 위원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지금의 가게와 유사한 가게를 얻어 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부터 16평짜리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 위원장은 12년 전 권리금 5000만원, 인테리어 비용 7000만원 등 1억2000만원이 들어갔다고 했다. 같은 평수의 가하자게 현재 주변 시세는 권리금만 1억1500만~1억3000만원 선이라고 한다. 조합 쪽이 제시한 영업보상비는 4000만~5000만원 선.

손 위원장은 "조합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제시받은 영업보상비는 2481만원"이라고 밝혔다.

조합 쪽은 모든 것은 법적 근거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지 그 범위를 벗어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더욱이 유사한 가게를 얻어 달라는 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조합 관계자는 <데일리중앙>과 통화에서 "보상금을 우리가 정하는 것도 아니고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인 서울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복수 감정평가를 통해 정하는 것"이라며 "조합은 토지수용위원회가 제시하는 금액을 줄 것"이라 말했다. 서울토지수용위원회가 지난 23일 의결한 사항은 9월 2일께 각 가구에 전달될 예정.

이 관계자는 주민대책위에 들어 있는 네 가구 가운데 위원장 가게 포함 두 가구만 영업보상 대상이고 나머지 두 가구는 보상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근거가 뭐냐'고 묻자 그는 "영업보상 대상이 되려면 사업시행인가 이전에 들어와야 한다. 영업보상 기준일이 2010년 4월 30일인데 나머지 두 가구는 그 이후에 들어왔기 때문에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재개발구역임을 분명히 알고 들어왔고 이주 철거 시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이사를 가겠다고 특약사항에 다 달았다. 위원장도 계약서에 그렇게 썼다. 대신 재개발 구역이니까 임대료를 싸게 해서 영업하게 해줬다. 그런데 지금와서 이 돈 갖고 어떻게 나가냐며 버티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주민대책위는 그러나 사업시행인가가 2010년 4월 28일 난 뒤 2017년 6월 1일 사업시행변경인가가 다시 났다는 점을 들어 대책위 소속 4가구 모두 영업보상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양쪽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사업 시행자인 조합 쪽은 사업을 무작정 미룰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명도소송 결과가 나오는 10월 중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부터 헐 계획이지만 세입자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합 관계자는 "우리는 주민들과 충분히 협의를 했다. 대화도 많이 했다. 무작정 기다릴 순 없다. 옛날처럼 강압적으로 내보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10월부터 부분 철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4월 공사를 시작(착공)한다는 일정표를 짜고 있다. 물리적인 충돌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강제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주민대책위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다. 결전의 날이 오면 굴착기 앞에 드러눕겠다고 했다. 강제철거에 맞서 육탄저지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손주연 위원장은 "만약에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지 않고 저쪽에서 중장비를 동원해 강제로 우리를 끌어내려 한다면 굴착기 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어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거대한 건설자본과 시행자 쪽의 강제철거를 반드시 실력으로 막겠다는 얘기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542-1번지 일대 도심 재개발 현장에 마치 폭격을 맞은 듯 건물 잔해들과 쓰레기들로 어지럽게 널려 있다. 철거 현장 골목마다 넘쳐나는 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하지만 관할구청에선 주민들의 민원에도 나 몰라라하고 있다.copyright 데일리중앙 진용석
서울 성북구 길음동 542-1번지 일대 도심 재개발 현장에 마치 폭격을 맞은 듯 건물 잔해들과 쓰레기들로 어지럽게 널려 있다. 철거 현장 골목마다 넘쳐나는 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하지만 관할구청에선 주민들의 민원에도 나 몰라라하고 있다.
ⓒ 데일리중앙 진용석

사정이 이렇듯 양쪽이 정면 충돌로 치닫고 있는데도 관할구청은 나 몰라라며 뒷짐지고 있다. 골목마다 쓰레기 더미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구청에 치워줄 것을 요구해도 깜깜 무소식이다.

지난 7월 29일 주민들이 성북구청에 직접 찾아가 민원을 제기하자 구청 관계자는 청소과와 협의를 해야 한다고 답변하고는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고 한다.

한 주민은 "성북구청 공무원들의 태도를 보면 울화통이 터지고 복장이 터진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6명의 생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도심 재개발 현장의 풍경은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석희열 기자·진용석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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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2019-09-04 07:49:40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으로 기사를 쓰지마세요....양쪽의 의견을 들어보고 써야하는것 아닌가요?
이러니까 기레기라고 하는겁니다...

손승연 2019-08-31 23:28:13
재건축이나 재개발 사업은 도시주거환경정비 계획단계부터 조합설립 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매 단계마다 특별시나 광역시, 시장의 승인을 받아야 진행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님은 평소에도 무분별한 재개발이나, 뉴타운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의견을 자주 내시는 분이니, 현실에 맞는 보상과 처우가 이루어 질거라 믿습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