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어기고 생매장, 피로 물든 하천... 정부의 ASF 방역 문제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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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어기고 생매장, 피로 물든 하천... 정부의 ASF 방역 문제 심각
  • 이성훈 기자
  • 승인 2019.11.14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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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병 농가 행정구역 역학조사 없이 '싹쓸이' 살처분... 살아있는 돼지들 '몰살'
카라 "아프리카돼지열병 무조건 죽이는 방역 반성하고 과학적으로 대응하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비과학적 방역 대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동물권행동 카라)copyright 데일리중앙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비과학적 방역 대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동물권행동 카라)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이성훈 기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방역 대책이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살처분 현장에서 규정을 어기고 생매장되는 돼지들의 몸부림을 지켜보는 동물보호단체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피로 오염된 하천과 식용되는 사체, 위험 가중하는 '비과학적' 방역의 악순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동물권행동 카라에 따르면 최근 연천군 민통선 안 군부지에 돼지 수만 마리 사체가 처리되지도 못해 산처럼 쌓인 채로 트럭에서 부패됐다. 

돼지 사체에서 흘러내린 혈액과 분비물은 이미 토양과 하천을 오염시켰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혈액 안에서 15주까지도 생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감염 혈액은 강물을 통해서도 전염이 가능하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돼지 사체더미와 그 혈액 등 침출수가 이미 하천으로도 흘러들어가는 현실에서 과연 '방역'이라는 것이 기대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연천군 안에서만도 약 12만 마리 돼지들이 과학적 근거 없이 싹쓸이 살처분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처럼 비과학적 방역 속에 사후 처리 역시 소홀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최초 발병 이후 역학조사에 근거한 방역대 설정이 아닌 무조건적으로 발병 농가 반경 3km 이내 '예방적' 살처분을 시작했다. 

이후 추가 발병 농가가 발생하자 10km까지 살처분 범위를 늘린 것도 모자라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살처분 지역을 설정해 해당 지역 안 살아있는 돼지들을 사실상 몰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물권행동 카라는 "유례없는 행정구역 기준 살처분은 매우 비과학적인 대응이며 심지어 발병하지 않은 지역도 살처분하라는 명령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정부의 비과학적 방역 대책을 비판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은 살처분 집행도 중요하지만 뒤처리는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불가피하게 살처분 시행된 돼지 사체의 완벽한 후처리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후처리 역시 소홀로 일관함으로써 방역의 허점을 더욱 크게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에 침출수가 유출된 민통선 안 임진강 상류 하천인 마거천은 연천군 주민 등 7만여 명에게 하루 총 5만톤의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보호구역이다. 이번 오염 사태로 현재 수질검사가 진행 중이다. 

연천군은 살처분 과정에 돼지 사체를 소독 처리했기 때문에 침출수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입장이지만 누가 이를 믿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동물권행동 카라 김현지 팀장은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중앙정부의 책임이 막중하다. 감염경로를 밝히거나 체계적인 역학조사를 수행하지 못하며 살처분에만 급급한 '비과학적' 방역을 펼치면서도 지자체에 무조건 빨리 돼지들을 모두 죽이라고만 몰아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방향을 잃은 방역으로 무분별한 생명 희생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또한 후처리 소홀 등 정부의 '비과학적' 방역의 악순환 문제는 멧돼지에 대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김현지 팀장은 "무차별 대량학살은 답이 아니며 총기포획과 사냥개 동원은 방역에 위배된다고 해왔건만 방역당국은 과학적 근거 없이 사육돼지를 살처분으로 몰아갔던 것처럼 멧돼지들도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멧돼지 사체는 통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충청북도는 도내 11개 시군에서 엽사들이 포획한 멧돼지의 70%가 자체적으로 '식용' 소비되
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감염 멧돼지가 추가 보고 되고 있어 방역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서 멧돼지 사체를 엽사들이 제멋대로 자가 소비하고 있다면 이것이 어찌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방역이며 이를 어찌 방역이라 명명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살처분 범위만 과학적 근거 없이 확대해 동물들의 희생만 가중해 왔을 뿐 감염 경로를 밝히기 위한 노력이나 현장 역학조사 등은 하지 않았다. 특히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요소들에 대한 조사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무조건 죽이는 방역을 반성하고 사체와 음식쓰레기로 인한 전염병 확산을 막아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김현지 팀장은 "하천이 살처분당한 돼지들의 피로 오염되고 있는 터에 이미 늦은 게 아닌가 싶지만 당국은 살처분에 급급하는 대신 이제라도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방역 정책 수립과 시행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성훈 기자 hoonls@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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