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새 정부가 할 일은 새 정부에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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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새 정부가 할 일은 새 정부에서 하라"
  • 석희열 기자
  • 승인 2008.01.28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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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개정안 거부권 행사 공개적을 밝혀... "법에 정한 일만 하라" 인수위에 경고

"참여정부의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넘어왔을 때, 그때 재의를 요구한다면 새 정부는 아무 준비도 없이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만 믿고 새 정부 구성을 준비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그야말로 발목잡기를 했다고 온갖 비난을 다 퍼붓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리 예고를 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의 내용과 절차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인수위의 정부조직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도 공개적으로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참여정부에서 수년에 걸쳐 공들여 다듬은 정부조직에 대해 인수위 출범 20일 만에 개편안을 확정하고, 이를 불과 1∼2주 만에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한다"며 "이처럼 큰 일이 정말 토론이 필요 없는 일이냐"고 인수위에 따졌다.

노 대통령은 "국민들이 선거로 대통령을 뽑아 주었으니 이런 문제는 물어 볼 것 없이 백지로 밀어주어야 하는 것이냐. 지난 5년 한나라당은 그렇게 했느냐"며 "바쁠수록 둘러가라는 말이 있다. 충분한 토론을 거치고 문제가 있는 것은 고치고 다듬어서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가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특히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고, 민주적이고 신중한 토론 과정을 거쳐 만든 것"이라며 "굳이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떠나는 대통령이라 하여 소신과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을 요구하는 일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느냐"며 인수위 정부조직안이 국회를 통과해 넘어오더라도 공포하지 않고 재의를 요구(거부권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은 새 대통령이 알아서 하라는 것.

노 대통령은 인수위가 추진하는 부처 통폐합을 통한 대부처주의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했다. 또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아예 없어지거나 기능이 축소되는 등의 위원회 축소 조정 방침에 대해서도 강도높은 불만을 나타냈다.

노 대통령은 "대부처로 합치면 정부의 효율이 향상되고 대국민 서비스가 향상된다는 논리는 사실이냐. 그래서 대부처 하는 나라가 잘사는 선진국이고 소부처 하는 나라는 못사는 후진국이냐"며 "그렇게 검증됐고 인수위는 그렇게 알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부처 통폐합이 단지 일반적인 정책의 문제라면 떠나는 대통령이 굳이 나설 것 없이 국회에서 결정해 주는 대로 서명 공포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것이 참여정부가 공을 들여 만들고 가꾸어 온 철학과 가치를 허물고 부수는 것이라면, 여기에 서명하는 것은 그동안 참여정부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바꾸는 일에 동참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과학기술부는 참여정부가 철학과 전략을 가지고 만든 부처이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는 참여정부의 핵심가치가 담겨 있다. 예산처는 탑다운 예산제도를 도입하여 재정운용을 합리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 미래를 위한 예산을 늘려 왔다"면서 "이런 부처들을 통폐합한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의 요구를 거론한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위원회 축소 방침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위원회가 없으면, 학계, 업계, 시민사회의 전문지식과 여론을 수렴하고, 토론을 통해 타당성을 검증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정책의 오류와 장애를 줄이는 일은 어디에서 하느냐"며 "새 정부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지는 것인가. 대통령 혼자 다 하는 것인가. 그래도 민주주의가 되고 효율적 행정이 되는 것인가"고 숨가쁘게 되물었다.

"참여정부의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넘어왔을 때, 그때 재의를 요구한다면 새 정부는 아무 준비도 없이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만 믿고 새 정부 구성을 준비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그야말로 발목잡기를 했다고 온갖 비난을 다 퍼붓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리 예고를 한 것이다."

대통령은 또 인수위에 대해 법에서 정한 일만 하라고 충고했다. 속된 말로 인수위가 너무 나대는 바람에 현직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 그것도 공무원으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는 일은 새 정부 출범 후에 하기 바란다"며 "아직 현직 대통령의 지휘를 받아야 할 공무원에게 그런 일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야박한 일이다. 새 정부가 할 일은 새 정부에서 하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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