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4.19, 자유여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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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4.19, 자유여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
  • 석희열 기자
  • 승인 2020.04.19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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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60주년 기념식 열려... '아, 총탄에 뚫린 4월 그 가슴 위로 자유여 만세'
문재인 대통령 "독재에 맞선 치열한 저항"... 이후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박목월 "죽어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 '피의 화요일'에 스러져간 4월 영령들 추도
19일 오전 10시 서울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역에서는 '아! 민주주의' 주제로 4.19혁명 기념식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4.19혁명을 "독재에 맞선 치열한 저항"이라고 평가하고 "그날 이후 해마다 4월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진달래 꽃잎이 흩날릴 때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영혼들을 기억했다"고 4월영령들을 추모했다. copyright 데일리중앙
19일 오전 10시 서울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역에서는 '아! 민주주의' 주제로 4.19혁명 기념식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4.19혁명을 "독재에 맞선 치열한 저항"이라고 평가하고 "그날 이후 해마다 4월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진달래 꽃잎이 흩날릴 때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영혼들을 기억했다"고 4월영령들을 추모했다.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이젠 우리 폭정에 견딜 수 없어/ 자유의 그리움으로 분노를 뱉는다/ 아, 총탄에 뚫린 4월 그 가슴 위로/ 넋이 되어 허공에 출렁이는 아 자유여 만세" (서울대 메아리, '4월 그 가슴 위로' 중에서)

오늘은 4.19혁명 60돌.스러져스19혁명은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의 불의에 항거해 압제의 사슬을 끊고 분노의 불길을 터뜨린 민족사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민주주의 횃불이다.

'피의 화요일'로 불리던 그날의 함성으로 우리는 단번에 절망의 질곡에서 희망의 기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새벽을 틈타 한강을 건넌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무장해제당해야 했다.

실패한 혁명이 다음에 결과할 반동의 역사를 한 치만 내다보았던들 4월혁명은 그때 그처럼 그렇게 속절없이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을-.

면면히 이어져 온 4월혁명 정신은 이후 87년 6월항쟁으로 2016~2017년 촛불항쟁으로 되살아났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역에서는 국가보훈처 주최로 시민과 4.19혁명 유공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 민주주의' 주제로 60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은 도입 영상을 시작으로 헌화 및 분향, 국민의례, 4.19혁명 유공자 포상, 기념사, 기념공연, '4.19의 노래' 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4.19혁명 60주년 기념식 기념사에서 4.19혁명을 "독재에 맞선 치열한 저항"이라고 평가하고 "4.19혁명으로 우리는 함께하면 정의가 살아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더 큰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하는 민주주의자가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그날 이후 해마다 4월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진달래 꽃잎이 흩날릴 때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간 영혼들을 기억했다"고 4월영령들을 추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가슴에는 독재에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와 멈출 수 없는 희망이 자랐다"며 4.19혁명 정신은 이후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졌음을 상기시켰다.

이어 기념공연에서는 제60주년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대한민국 대표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상록수 2020'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고 진달래 피는 그 언덕으로 4월영령들의 무덤 앞에는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다.

1960년 4월 19일 서울 신설동 네거리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이 쏜 총탄에 쓰러진 곽종한(당시 19세)씨의 유족은 언젠가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젊은 주검들이 아스팔트 위에 꽃잎처럼 나뒹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서울대 문리대 김치호. 그의 비석에는 '평북 신의주 출생. 서울대 문리대 3년 재학.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 시위 중 총상. 같은 날 수도육군병원에서 사망.' 이라고 적혀 있다. 묘역에는 작은 무덤과 함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안병채. 경북 영풍 출생. 당시 동신국민학교 4학년에 다니던 그는 1960년 4월 19일 신설동 네거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묘역에는 비석만 세워져 59년 전의 그날을 증언하고 있다.

무덤이 있는 묘역은 유족의 뜻에 따라 시신 안장을 한 경우이고, 비석만 세워져 있는 묘역은 마찬가지로 유족의 뜻에 따라 유골 안장이라고 한다.

265명의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4.19민주묘역에는 먼저 가신 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듯 산 허리의 높은 잎들이 햇볕을 받아 소리없이 반짝였다.

시인 박목월은 언젠가 4월영령들을 "죽어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추도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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