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관련 사료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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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관련 사료 공개
  • 석희열 기자
  • 승인 2020.05.14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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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도서관, 김대중이 사형수 시절 친필로 작성한 옥중수필과 법정 최후진술문 공개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된 김대중은 80년 5월 17일 연행돼 넉 달 만인 9월 17일 사형선고
김대중 최후진술 끝나자 박수... 가족들 '우리 승리하리라' 합창하며 '민주주의 만세' 외쳐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육군교도소에서 청주교도소로 옮겨져 수감 중 독서하는 김대중. 1981년 1월 31일. (사진=연세대 김대중도서관)copyright 데일리중앙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육군교도소에서 청주교도소로 옮겨져 수감 중 독서하는 김대중. 1981년 1월 31일. (사진=연세대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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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관련 사료가 공개됐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광주민주화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관련 사료를 14일 공개한 것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정권을 강탈하기 위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라는 모략극을 꾸몄다. 

신군부는 이 사건 조작을 위해서 김대중, 문익환, 예춘호, 이문영, 한완상, 조성우, 이해동, 이해찬 등 민주화 운동 인사들을 상대로 가혹한 고문을 했다.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된 김대중은 그해 5월 17일에 연행돼 넉 달 만인 9월 17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김대중 구명운동의 영향으로 1981년 1월 23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직후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되기까지 4개월여 동안 김대중은 사형수로 지냈다. 

김대중도서관은 김대중이 사형수 시절 친필로 작성한 옥중수필과 문성근(문익환 목사의 아들)이 작성한 최후진술문 등의 사료를 이날 공개했다.

공개된 사료에 따르면 김대중은 1980년 9월 17일부터 1981년 1월 23일까지 사형수로 있었는데 1980년 11월 25일부터 1981년 1월 5일까지 14편의 옥중수필을 썼다. 

친필 옥중수필 중에서 김대중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전두환, 박정희 등 독재자들에 대한 용서를 강조하고 있다. 

김대중도서관은 "이번에 공개하는 옥중수필은 사형수 시절 친필로 작성됐다는 점에서 김대중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관용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14일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광주민주화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관련 사료를 전격 공개했다. 당시 문성근씨가 작성한 김대중 최후진술문 중 일부.copyright 데일리중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14일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광주민주화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관련 사료를 전격 공개했다. 당시 문성근씨가 작성한 김대중 최후진술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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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1980년 9월 13일 군사법정에서 이뤄진 18회 공판에서 1시간 45분 동안 최후진술을 했는데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당시 공판정에는 녹음기나 필기도구 등을 들고 갈 수 없어 방청석에 있던 가족들이 민주 인사들의 진술 내용을 외웠고 재판이 끝난 뒤 함께 모여 기억을 되살리면서 진술한 내용을 글로 작성했다고 한다.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의근, 문성근이 주로 글을 작성했으며 김대중의 최후진술문은 문성근이 작성한 것이다.

언젠가 문성근씨는 김대중을 살리기 위해서 한 줄이라도 더 외우기 위해서 혼신을 다했다고 증언한 적 있다.

80년 9월 13일 오전 10시에 시작한 김대중의 최후진술이 오전 11시45분 끝나자 방청석의 가족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고 김대중은 가족들을 향해 인사했다.

김대중, 문익환, 예춘호 등 피고들이 가족석을 향해 돌아볼 때 송건호, 이호철씨 등은 눈물을 보였다.

피고들에게 수갑이 채워지자 문익환 목사 처의 선창으로 방청석의 가족들은 '우리 승리하리라'를 합창했다. 그러자 장내 정리요원들이 달려들어 가족들을 강제로 바깥으로 끌어냈다.

온 몸이 들린 채 밖으로 끌려나온 문 목사 처는 바닥에 드러누워 노래를 계속 불렀고 버스에 태워진 뒤에는 군사법정을 향해 "조작극이다"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다.

김대중도서관은 "김대중은 과거청산에 있어 진실화해 모델을 주장하고 관철시킨 정치지도자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과거청산 방식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는데 하나는 진실화해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 모델이다. 

진실화해 모델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인 인적 청산보다는 화해와 용서를 통한 관용의 정신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고 정의 모델은 법적 차원에서의 인적 청산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한국은 과거청산에 있어 진실화해 모델을 취하고 있는데 김대중은 이 노선을 관철시켰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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