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드라마 발레 '오네긴'... 엇갈린 운명적 사랑이 준 큰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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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드라마 발레 '오네긴'... 엇갈린 운명적 사랑이 준 큰 울림
  • 석희열 기자
  • 승인 2020.07.25 22:0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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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향해 치닫는 두 남녀 비극적 사랑... 푸쉬킨의 문학 감성과 차이콥스키의 서정성 빛나
천재 안무가 존 프랑코, 1인무와 2인무 전면에 배치... 서정성과 심리 묘사 잘 드러나 돋보여
3막 6장의 완벽 무대에 객석에서 10여 차례 박수갈채 쏟아져... 차이콥스키 음악 몰입도 높여
문훈숙"푸쉬킨도 프랑스 장교에게 결투 신청해 짧은 생 마감... 우리에게 큰 공감과 깊은 울림"
드라마 발레 '오네긴'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10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채운 가운데 공연됐다.copyright 데일리중앙
드라마 발레 '오네긴'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10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채운 가운데 공연됐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격정적인 드라마 발레 <오네긴>의 막이 오르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2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코로나19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발레 <오네긴>을 보러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이 1000명을 헤아렸다.

객석에 불이 꺼지자 먼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 등장했다.

문 단장은 드라마 발레 <오네긴>에 대해 "천재적인 안무가 존 프랑코의 대표작"이라며 "존 프랑코의 천재성은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원작의 영감을 받아 빛을 발한다. 이 작품에 사용되는 음악과 안무가 정말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고 소개했다.

문 단장은 "발레는 모든 동작이 배우의 대사와 같다"면서 "천재적인 안무가 존 프랑코는 내면적인 감성을 춤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고 말했다.

발레 공연은 대사가 없이 음악과 무용(춤) 동작으로만 서사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필요한 장르다.

이런 의미에서 문훈숙 단장의 해설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5분 간의 해설이 끝나자 130분(쉬는 시간 30분 포함) 간의 막이 올랐다.

1막 1장, 1820년대 제정 러시아의 한적한 시골 영주의 정원

막이 올라가자 미망인 라리나 부인은 장녀 타티아나와 차녀 올가, 그리고 유모와 함께 다가올 타티아나의 생일파티에서 입을 드레스를 마무리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고 타티아나는 정원에 누워 책을 읽고 있다.

이윽고 마을 소녀들이 찾아오고 타티아나는 거울을 통해 결혼할 남자를 보는 러시아 여성들의 전통놀이인 거울점을 본다. 때마침 올가의 약혼자이자 젊은 시인 렌스키의 친구 오네긴이 거울점을 치고 있던 타티아나에게 장난을 건다. 평소 사랑에 대한 로맨스를 꿈꾸고 있던 순수한 시골 소녀 타티아나는 거울 너머에 비친 오네긴을 보고 강렬하게 끌린다.

1막 2장, 타티아나의 침실 

첫사랑에 빠진 타티아나는 오네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편지를 여러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잠든다. 꿈 속에서 타티아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오네긴이 자신의 사랑에 화답하자 함께 아름다운 사랑의 파드되를 춘다. 꿈에서 깬 타티아나는 오네긴에게 고백 편지를 쓴 뒤 유모를 통해 오네긴에게 전달한다.

2막 1장, 타티아나의 생일파티 

타티아나의 생일에 많은 귀족들로 넘쳐나고 손님 중에는 타티아나의 먼 친척인 그레민 공작도 있다. 그레민 공작은 타티아나에 대한 마음을 키워나가는 중인데 라리나 부인 역시 딸이 그레민 공작과 맺어지길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타티아나의 눈에는 오네긴만 보인다. 하지만 오네긴은 타티아나의 고백 편지를 찢어 그녀의 손에 쥐어주며 모욕적으로 거절한다. 

어린 타티아나는 상처를 받게 되고 무례하고 오만한 오네긴은 맑고 순수한 젊은 시인이자 친구인 렌스키의 약혼녀 올가에게 접근해 유혹한다. 올가의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무례한 행동을 목격한 렌스키는 이성을 잃고 질투심이 폭발해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2막 2장, 결투 

드라마 발레 '오네긴'에서 타티아나와 올가 자매가 오네긴과 렌스키의 결투를 말리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으며 결국 한밤중 결투장에서 오네긴이 쏜 총에 올가의 약혼자 렌스키가 쓰러진다. copyright 데일리중앙
드라마 발레 '오네긴'에서 타티아나와 올가 자매가 오네긴과 렌스키의 결투를 말리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으며 결국 한밤중 결투장에서 오네긴이 쏜 총에 올가의 약혼자 렌스키가 쓰러진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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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티아나와 올가가 두 사람의 결투를 말리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붉은 달이 뜬 한밤중에 두 사람은 결투장으로 향하고... 거칠고 무례한 오네긴이 친구 렌스키를 향해 총을 쏘아 쓰러 뜨린다.

약혼자의 죽음에 올가는 무너지고 타티아나는 증오의 눈으로 오네긴과 마주한다. 오네긴은 뒤늦은 후회와 자책감에 빠져 러시아를 떠난다.

3막 1장,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무도회

긴세월 방황하며 세계를 떠돌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오네긴은 한 무도회에 참석해 그곳에서 그레민 공작의 부인이 된 타티아나를 다시 보게 되는데... 

그 옛날 자신이 외면했던 타티아나가 아름답고 품위 있는 여인으로 성장한 걸 보고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된다.

3막 2장, 타티아나의 침실

오만하고 무례한 오네긴은 순수하고 천진한 시골 소녀였던 타티아나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 꽃으로 성장한 걸 보고 뒤늦게 사랑을 구걸해보지만 끝내 거절당하자 절망하며 무너진다. copyright 데일리중앙
오만하고 무례한 오네긴은 순수하고 천진한 시골 소녀였던 타티아나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 꽃으로 성장한 걸 보고 뒤늦게 사랑을 구걸해보지만 끝내 거절당하자 절망하며 무너진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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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긴에게 뒤늦은 편지를 받은 타티아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날 밤 남편 그레민 공작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출장을 가고 기회를 엿본 오네긴은 타티아나를 찾아와 발밑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구걸하며 애원한다. 

타티아나는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음을 깨닫고 번민하지만 끝내 오네긴의 사랑을 외면하고 남편에게 충실한 삶을 택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때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회한의 파드되가 펼쳐지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흐른다.

어긋난 사랑의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네긴은 계속해서 타티아나에게 매달리지만 그녀는 '너무 늦었다'면서 그가 보낸 편지를 오네긴이 예전에 그랬던 것 처럼 찢어 보이며 영원히 떠나달라고 한다. 사랑의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절망한 오네긴이 도망치듯 떠나고 혼자 남겨진 타티아나는 엇갈린 운명에 목놓아 울부짖으며 무너진다. 

오후 4시11분 드라마 발레 <오네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130분 간 한 순간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서사는 격정적이었고 무용수들의 춤은 완벽했으며 서정적이고 감수성짙은 음악이 이를 뒷받침했다.

이후 모든 출연 무용수들이 무대 위로 다시 나와 객석에 인사하는 커튼콜이 7분 간 이어졌고 관객들은 큰 함성과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 드라마 '발레'가 막을 내리자 객석의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지자 출연자들이 다시 무대로 나와 인사(커튼컬)를 하고 있다.copyright 데일리중앙
25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 드라마 '발레'가 막을 내리자 객석의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지자 출연자들이 다시 무대로 나와 인사(커튼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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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대 제정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한적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이처럼 오만하고 무례하고 거친 도시 귀족 오네긴(이현준 분)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시골 소녀 타티아나(손유희 분)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다. 

여기에 타티아나의 여동생 올가(김나은 분)와 약혼자 렌스키(간토지 오콤비얀바 분)와의 파국까지 얽히고설키며 두 주인공의 어긋난 사랑의 비극을 극대화시켰다. 

3막 6장으로 이뤄진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1막과 3막에 선보인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파드되(pas de deux·남녀 두 무용수가 함께 추는 춤). 주인공 이현준씨와 손유희씨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다. 

드라마 발레 <오네긴>은 1965년 존 크랑코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위해 만든 작품이다. 

러시아의 문장가 푸쉬킨의 운문체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원작으로 한 문학성과 차이콥스키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 위에 탄생한 이 작품은 20세기 최고의 명품 드라마 발레로 꼽힌다.

푸쉬킨의 풍성한 문학적 감수성과 차이콥스키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이 만나 20세기 최고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한 푸쉬킨은 "러시아의 모든 것" "러시아는 푸쉬킨의 공동체"라고 할 정도로 러시안 국민들에게는 최고로 추앙받는 대문호다.

2인무의 대가인 존 프랑코는 이 작품에서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낸 1인무와 2인무를 전면에 배치해 서정성과 심리 묘사가 잘 드러나도록 한 것이 돋보였다.

25일 오후 드라마 발레 '오네긴'이 공연된 서울 충마아트센터 대극장에는 1000여 명의 관객이 두 남녀의 격정적인 엇갈린 사랑 이야기를 지켜봤다. copyright 데일리중앙
25일 오후 드라마 발레 '오네긴'이 공연된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는 1000여 명의 관객이 두 남녀의 격정적인 엇갈린 사랑 이야기를 지켜봤다.
ⓒ 데일리중앙

주역 무용수들의 극적인 연기와 공중 고난도 춤을 포함해 유니버설발레단 소속 70여 명의 출연진이 시종 무대를 압도했다.

특히 풍부한 문학적 감수성에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차이콥스키 음악 28곡이 공연 내내 객석의 몰입도를 끌어 올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문훈숙 단장은 두 남녀의 절망을 향해 질주하는 어긋난 사랑을 얘기하며 "(이 작품의 원작자) 푸쉬킨도 공교롭게도 부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해 서른 여덟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며 "이 작품은 우리에게 정말 커다란 공감과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절망을 향해 내달리는 두 남녀의 엇갈린 운명적 사랑이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큰 공감과 울림을 줬다는 얘기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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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 2020-07-26 08:12:54
발레 드라마 처음이다. 러시아 문학과 음악이 우리나라 정서와 비슷한 모양일세.

사노라면 2020-07-26 07:20:43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은 어렵나 보다. 엇갈린 비극적이어야
작품이 되는 것도 동서양이 같나 보다. 푸쉬킨 대단한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