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41돌... 유신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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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41돌... 유신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
  • 석희열 기자
  • 승인 2020.10.16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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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전 오늘 부산·마산 시민들, '유신철폐' '독재타도' 외치며 유신독재에 '항거'
부마항쟁 무력진압 엿새 만에 18년 박정희 유신체제 막 내리며 역사 속에 사라져
문 대통령 "부마항쟁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유신독재를 끝내는 기폭제"
유신정권이 종말을 향하고 있던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유신독재에 저항해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바로 부마민중항쟁이다. (사진=부마항쟁기념사업회)copyright 데일리중앙
유신정권이 종말을 향하고 있던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유신독재에 저항해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바로 부마민중항쟁이다. (사진=부마항쟁기념사업회)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41년 전 오늘 부산과 마산에서 시민들이 떨쳐 일어나 박정희 유신 종말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바로 부마민중항쟁이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닷새 간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에서 박정희 유신 독재체제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그해 10월 4일 야당인 신민당 김영삼 총재를 박정희 정권이 국회에서 제명한 것이 부마항쟁의 배경이 됐다.

항쟁의 불길이 치솟자 박 정권은 부산과 마산에 위수령을 내리고 공수부대원들을 진주시켜 시위를 진압했다. 

군은 매일 도심에서 시가행진하며 시민들을 위협했으며 오후 5시 통행금지를 실시했다. 

당시 수만명의 시민들은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군과 곳곳에서 대치하며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의 시민이 다치고 경찰서로 끌려갔다. 1500여 명이 구속됐다.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 정권 종말의 신호탄이 됐다.

실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부마항쟁 무력진압 엿새 만인 그해 10월 26일 밤 만찬장에서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18년 군사독재정권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부마민주항쟁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유신독재를 끝내는 기폭제였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운동사의 큰 획이었으며 시민과 노동자가 함께 민주주의가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알린 대규모 항쟁이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부마민주항쟁이 살아 있는 역사로 오래도록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전해주고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부산과 창원(마산) 시민들에게 용기가 되길 바란다"며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 배상과 보상, 기념사업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도 41년 전 유신독재를 무너뜨린 부마항쟁의 뜻을 기리고 오늘에 되새겼다.

특히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부마민주항쟁 41주년 메시지를 통해 "평등하고 존엄한 내일로 계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41년 전 오늘은 부산과 마산지역의 학생과 시민들이 박정희 유신 독재체제에 저항하여 박정희 정권이 최후를 맞이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역사적인 날"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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