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발레 'The Last Exit', 21세기 대한민국 시선으로 재탄생한 '백조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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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레 'The Last Exit', 21세기 대한민국 시선으로 재탄생한 '백조의 호수'
  • 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3.10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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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음악과 백조의 호수 모티브... '선과 악' 대신 '약자와 강자'로 대변되는 시대의 표현
사회적 약자 비정규직 오데트와 강자인 사장 로트바르트, 인간 나약함 드러내는 지그프리드
와이즈발레단 창작발레 'The Last Exit'가 오는 5월 20~21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포스터=와이즈발레단)copyright 데일리중앙
와이즈발레단 창작발레 'The Last Exit'가 오는 5월 20~21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포스터=와이즈발레단)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이지연 기자] 2021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된 와이즈발레단의 창작발레 <The Last Exit>가 오는 4월 20~21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지난 2015년 와이즈발레단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이 창작발레 작품은 초연 후 5년이 지난 현재 새로운 시각으로 수정돼서 무대에 올라간다. 

지난 2015년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전체 취업자의 40%를 넘은 첫 해였다. 이후 이 비율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현재 45%를 넘어서고 있고 남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현재 36.3%를 기록하고 있다. 

적지 않은 비율이지만 과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이나 퇴사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보장받고 있는가. 

이 작품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사회적 약자의 통칭이자 상징으로 세워놓고 이 시대의 자화상과 현주소를 발레로 풀어내고 있다.  

그 방식으로 고전발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고전발레가 갖는 구성과 체계, 음악의 특성은 살리고 무브먼트와 주제는 현대에 맞게 탄생시켰다. 즉 과거 고전발레에서 공주와 왕자, 혹은 신화나 동화 속 인물로 표현됐던 캐릭터들을 현실로 끌어당겨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주소에 맞는 상황으로 전환시켜 완성했다. 

특히 고전발레의 정수이자 대표주자로 불리는 <백조의 호수>를 모티브로 저주를 받아 백조로 살아가야 하는 백조의 여왕 오데트와 그를 견제하는 로트바르트, 오데트를 구하고자 하나 인간적인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던 지그프리드의 입장을 현대 사회에 투영시켰다. 장소도 호수와 왕궁이라는 판타지스러운 공간에서 회사라는 현실적 공간으로 옮겼다. 

누구나 오데트이자 지그프리드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며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물음을 던지게 된다.

오데트의 경우 고전발레에서는 저주를 받아 힘없는 백조로 살아가는데 <The Last Exit>에서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로 사내에서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주어진 근무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저주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백조처럼 그녀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나아가고 싶은 사람으로 표현된다. 

로트바르트는 이 모든 상황을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의 인물인 기업의 사장으로 등장하며 고전발레 속에서 오데트의 자존감과 존재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그런 인물로 군림한다. 

자료=와이즈발레단 copyright 데일리중앙
자료=와이즈발레단
ⓒ 데일리중앙

<The Last Exit>에서 지그프리드는 오데트와 연민과 사랑을 느끼지만 사장의 딸, 오딜의 유혹을 받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등장한다. 

과연 지그프리드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인물로 남아 로트바르트와 싸워 오데트를 구해낼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 타협하고 유혹을 받아들일 것인가. 

동화나 신화 속에서는 '그 후로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맺어지겠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 '그 후로 그들은 실업자가 되어 전전긍해야 했습니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이 상황에서 지그프리드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그를 마냥 응원하거나 반대로 비난할 수도 없다.

 <The Last Exit>는 고전발레 안에서 각 인물이 갖는 성격을 그대로 살리되 현대적인 상황에 맞게 적용함으로써 관객이 자신의 현실에 비춰 등장인물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즉 이런 현실적인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관객이 오데트, 지그프리드의 입장에 돼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물음표를 던진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시도를 벗어나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선'이라고 믿어왔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임을 드러낸다. 고전발레에서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다면 이 모던발레는 강자 앞에서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사회적 억압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까지 겪어야 했던 오데트는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 벼랑 끝에 몰린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어떤 결말도 내리지 않고 맺어지는 이 작품은 이 질문과 숙제의 해답이 개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논의도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한다.  

이지연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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