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 성희롱과 사적만남 거부하자 따돌림... 신고하자 "나가" 권고사직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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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상사 성희롱과 사적만남 거부하자 따돌림... 신고하자 "나가" 권고사직 강요
  • 김영민 기자
  • 승인 2021.03.21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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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김은주씨, 노동부 강남지청에 신고... 담당 근로감독관 연락두절-통보없이 종결-회사조사 강요-사건 미궁
근로감독관 갑질 '국민신문고' 신고 필요 …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직무유기 일벌백계 하고 지침 개정 절실
직장갑질119 "근로감독관에게 갑질을 당한 노동자들은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직무유기 국민신문고에 신고해야"
직장갑질119는 21일 "근로감독관에게 갑질을 당한 노동자들은 통화내용을 반드시 녹음하고 직무유기를 국민신문고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copyright 데일리중앙
직장갑질119는 21일 "근로감독관에게 갑질을 당한 노동자들은 통화내용을 반드시 녹음하고 직무유기를 국민신문고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김영민 기자] 김은주(가명)씨는 직장 상사의 성희롱과 괴롭힘을 신고한 뒤 동료들의 집단 따돌림과 직장의 보복갑질에 시달렸다.

지역 노동청에 직장 괴롭힘을 신고했지만 담당 근로감독관 역시 직장의 편에서 행동하는 모습에 회의를 느꼈고 회사의 보복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뒀다. 

김은주씨는 2019년 7월 서울 강남에 있는 회사에 입사해 기획팀에서 일을 했다. 

일주일 뒤 본부장이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너무 늦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틀 뒤 본부장이 퇴근 후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아프다며 거절했다. 

다음날 본부장이 또 저녁식사를 제안했는데, 그는 계속 거절할 경우 불편해질 것 같아 식사를 하러 갔다. 

본부장은 그에게 "허리가 몇 인치에요? 엄청 얇던데. 골반이 진짜 큰 거 같애. 골반 몇 인치에요? 남자들한테 인기 많을 거 같은데, 인기 많죠? 근데 왜 남자친구 없어요?”라며 성적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성희롱 발언을 계속했다. 

식사 뒤 본부장은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고 은주씨는 다음날 출근을 이유로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에도 본부장은 은주씨에게 여러 차례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고 은주씨는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거절했다. 

은주씨가 사적인 만남을 거부하자 본부장은 그를 신경질적인 태도로 대하기 시작했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후 다른 동료들도 은주씨를 피하며 집단따돌림이 시작됐다. 

은주씨는 일만 잘하자는 생각으로 버티며 출근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밥도 혼자 먹어야 했고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어느 날 은주씨가 휴게실 내 전자랜지를 이용하다가 전자랜지가 고장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장난 전자랜지를 치우는 은주씨에게 모두가 모여 기다렸다는 듯이 은주씨를 비아냥거리며 모욕감을 줬다. 

이런 방식으로 은주씨는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

은주씨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20년 4월29일 출근해서 팀장을 통해 이사에게 본부장의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을 신고했다. 

그러자 그날 오후 이사와 본부장이 그를 불렀고 본부장은 "이 상태에서는 더 길게 가봐야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은 들고요"라며 권고사직을 권했다. 이사도 "어때요?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라며 회사는 재차 그에게 퇴사를 요구했다. 

그는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저만 이렇게 나가는 것 자체가 받아들일 수 없어요"라며 권고사직을 거부했다. 이사와 본부장은 번갈아가며 그에게 퇴사를 강요했고 그는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은주씨의 동의 없이 기획팀에서 다른 부서로 강제로 발령을 내고, 하루종일 반복적으로 서 있게 만들었다. 한 달 뒤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종결했고 이어 피해자를 대상으로 점심시간 식대 내역을 조사하는 등 표적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회사는 은주씨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라는 사건이 접수됐다며 진상조사를 했다. 은주씨는 6월 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그러자 본부장은 6월 12일 은주씨를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회사는 은주씨를 감봉 및 시말서 징계 처분을 내렸고 그는 회사의 보복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고 말았다. 
 
은주씨가 강남지청에 신고한 사건은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두 달 넘게 연락이 없었고 감독관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노동부 인터넷에 들어가자 '임금 체불' 사건으로 되어 있었다. 

은주씨가 2020년 9월18일과 28일 두 차례 메일을 보내자 9월29일 노동청 담당 감독관이 전화를 해 "임금체불로 되어있는 건 전산 오류"라며 "10월 안에 처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달 동안 연락이 없었다. 

은주씨는 12월 3일 노동청을 방문해 사건이 10월13일 종결된 것을 확인하고 항의했다. 노동청은 진정처리결과통지서를 피해자가 받지 못한 점과 피해자가 신고한 내용이 누락돼 사건이 종결된 점을 시인해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

12월 7일 새로운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사건이 접수돼 은주씨는 다시 1차 출석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은 은주씨에게 회사 사용자에게 먼저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이미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났고 회사를 만나 조사를 받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얘기했지만 감독관은 사내 조사가 우선이라고 해 은주씨는 사내 조사를 서면으로 받았다. 

2021년 2월 3일 회사는 사내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혐의없음'으로 종결했다. 이어 은주씨는 담당 감독관이 부서를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고 항의하자 담당 감독관이 다시 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지침'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 위반에 대한 신고의 경우 근로감독관이 진정인, 피진정인, 목격자 등 참고인 조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 해당 여부 등을 직접 조사해야 한다. 또 신고 후 최대 60일 이내에 조사를 마쳐 조사 결과를 당사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강남지청은 피해자가 2020년 6월 신고한 사건을 7개월이 되도록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괴롭힘 신고 사건을 '체불 임금' 사건으로 둔갑시키도 했고 당사자에게 통보하지도 않고 자체 종결하기도 했다. 피해자에게 퇴사한 회사로부터 조사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쯤되면 고용노동부가 아니라 '고용사용부'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21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근로감독관의 직무유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상처받은 직장인들은 정부로부터 두 번, 세 번 상처를 받고 있다. 정부가 근로감독관의 직무유기를 일벌백계하고 근로감독관에 대한 일대 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51년 전 전태일이 노동청에서 겪은 고통을 반세기가 지난 2021년 노동자들이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직장갑질119 김한울 노무사는 "근로감독관에게 갑질을 당한 노동자들은 통화 내용을 반드시 녹음하고 직무유기나 소극행정에 대해 국민신문고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국민신문고에 신고하면 해당 감독관이 문제제기 내용에 대해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사건 처리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김한울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가해자와 피해자 양 당사자 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괴롭힘이 발생할 수 있었던 조직문화를 점검하고 피해자가 괴롭힘 신고 이후에도 직장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사용자들은 여전히 괴롭힘을 신고한 피해자를 사업장에서 내보내거나 피해자에게 징계를 하는 등 불이익처우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명백한 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의 제대로 된 조사 및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영민 기자 kymin@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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