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 결정문, '위헌이다 아니다'가 아니라 '기본권 침해했다. 안했다' 작성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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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 결정문, '위헌이다 아니다'가 아니라 '기본권 침해했다. 안했다' 작성돼야
  • 김용숙 기자
  • 승인 2021.12.0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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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헌법학회와 헌법재판연구원, '법치주의의 진화와 헌법재판' 주제로 공동학술대회 열어
국민 관점에서 헌법재판 결정 주문 작성해줘야... 공익과 사익 형량도 객관적 지표화 지향돼야
한국헌법학회와 헌법재판연구원은 지난 3일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법치주의의 진화와 헌법재판'을 대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진=한국헌법학회)copyright 데일리중앙
한국헌법학회와 헌법재판연구원은 지난 3일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법치주의의 진화와 헌법재판'을 대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진=한국헌법학회)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김용숙 기자]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주문이 '위헌이다 아니다'가 아니라 '기본권을 침해했다. 안했다'로 국민 관점에서 작성돼야 한다는 주장이 학술대회에서 제기됐다.

공익과 사익의 형량도 추상적 비교 수준 아닌 객관적 지표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헌법학회(회장 임지봉)와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원장 이헌환)은 지난 3일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법치주의의 진화와 헌법재판'을 대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정주백 충남대 교수가 '헌법재판과 법, 그 사이의 거리'를 제1주제로 발제에 나섰고 권수진 성
균관대 박사, 강서영 헌법재판연구원 연구관이 토론을 맡았다.

이어 변해철 한국외대 교수가 '아시아 지역 국가의 헌법재판과 인권 현황'을 제2주제로 발제에 나섰으며 윤성현 한양대 교수와 차원일 헌법재판소 박사가 토론을 벌였다.

마지막으로 이노홍 홍익대 교수가 '코로나 시대 기본권 제한의 새로운 쟁점과 법치주의(미국의 백신접종정책을 중심으로)'를 제3주제로 발제했다. 이에 이병규 동의과학대 교수, 조영승 부산대 박사가 토론했다. 

종합토론자로는 정필운 한국교원대 교수, 김종현 헌법재판연구원 박사, 이한주 고려대 박사가 나섰으며 세션별 진행은 이종수 연세대 교수와 허진성 부산대 교수가 각각 나눠 맡았다.

먼저 '헌법재판과 법, 그 사이의 거리'를 발제한 정주백 충남대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내리는 최종적인 의사결정 주문은 '...은 위헌이다'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은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로 표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의 기능은 행정작용의 헌법 저촉 여부를 따져주는 것이 아니라 기본권 침해 확인 여부 등 국민의 관점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현재 헌법재판에서 대전제로 삼고 있는 과잉금지원칙, 본질침해금지원칙, 적법절차원칙, 평등권 등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튼튼한 이성적 사유의 결과물인지 의문스럽다. 이 원칙들이 헌법재판에서 나름 긍정적으로 기여해왔지만 한편으론 재판관들만의 세계관 내지 정의관이자 헌법학 이론에 익숙한 말들일 뿐인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원칙 이론을 전제로 한 본안 판단이 아니라 종합적인 사고로 본안에 대한 실체적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한 헌법재판에서 가장 많이 거치게 되는 법익의 균형성 판단과 관련해 "목적이 실현됐을 때 달성될 공익의 양과 그와 인과관계가 있는 사익 침해의 양이 정말 양적으로 측정돼야 한다"면서 "쉽지 않겠지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보를 획득하고 방대하게 축적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의 양적 형량을 객관화하고 지표화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강서영 헌법재판연구원 연구관은 "근래에 국민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입법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다수가 옹호한다고 해 그것이 곧장 공익이 되는 것이 아닌데도 개인의 의사를 손쉽게 표현하고 타인의 의사표현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수단들이 점점 진화하면서 다수의 지지가 공익으로 둔갑하거나 공익인 양 행세하는 경우들을 목격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다수가 옳다고 하여 그에 영향을 받아 헌법재판 결론이 도출돼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가 구체적이고 엄밀한 논증 없이 막연히 공익이나 질서, 윤리 개념을 내세워 자유와 권리가 실제로 침해되고 훼손되는 것을 눈감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은 입법자가 표방한 목적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강 연구관은 "오히려 헌법재판 과정에서 입법의 배후에 깔려 있는 사회적 경제적 의도가 실질적인 입법목적임을 객관적으로 확인시켜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여론이나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실체를 조명해가는 헌법재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아시아 지역 국가의 헌법재판과 인권 현황'을 발제한 변해철 한국외대 교수는 "국제사회에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강화 기조에 힘입어 아시아 지역에서도 아시아 헌법재판소연합이 설립됐다"며 "이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의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보장이 확대 강화가 기대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인권협약 체결과 인권재판소 설치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변 교수는 "우선 아시아 지역에서의 공통적 이상과 원칙, 상생과 공존 발전에 대한 공감대 형성 논의와 함께 실현 가능한 단계의 인권협약의 체결 및 이를 사법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재판제도의 수립을 위한 점진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성현 한양대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아시아 인권재판소를 설립한다는 것이 간단치만은 않다"며 "아시아의 경우 굉장히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 나아가 문화적, 인종적, 종교적, 법제도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다른 대륙과 같이 공통된 인권협약이나 인권재판소의 운용 경험이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이들을 모아 협력을 강화하고 종국적으로 인권재판소의 설립에 이르고자 한다면 우선 각국의 사회현실과 법제도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가 AACC 연구사무국을 통해 충분
히 축적될 필요가 있다"면서 "아시아 각 국가별 인권에 관한 판례들과 이론들, 그러한 판례와 법이론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들에 대해서 충실하게 연구하고 또 이들 간에 상호비교와 검증의 장을 마련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술세미나와 인적교류를 통해 비교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헀다.

'코로나 시대 기본권 제한의 새로운 쟁점과 법치주의'를 발제한 이노홍 홍익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예방접종의 확대에 따른 단계적 일상회복과 함께 도입한 백신 접종 여부를 근거로 한 방역 지침 등에 대한 법적 근거의 부재는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으며 또한, 백신 패스제 등을 통한 예방접종의 사실상 강제는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달성이라는 사회적 목적에는 부합할 수 있으나 코로나 상황의 추이나 개별 기본권 침해 상황의 차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충분히 고려한 후 차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한 "현재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백신 패스제 역시 매우 예외적 상황에서 실시되는 것으로 도입과 확대에 있어서는 국가의 상황을 고려하고 보건 위기의 정도, 백신 접종률과 효능, 미성년자 백신접종여부 문제 등에 따라 신중히 검토해 항상 공공 안전과 기본권이 조화를 견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병규 동의과학대 교수는 "정부의 백신 접종 등 방역 정책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코로나 상황에서 백신 접종을 하지 않거나 백신 미접종자가 다중집합장소에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 타자에게 위해를 가져와야 한다. 예컨대 백신 접종 의무화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타자나 사회에 대한 위해의 유무나 정도를 고려해야 하고 백신 접종에 의해 위해가 방지된다는 점은 과학적으로 검증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지봉 헌법학회 회장은 "헌법재판에서 가장 많이 거치게 되는 공정 가운데 하나가 공익 실현과 사익 침해의 비교형량 판단 과정인데 이를 최대한 객관적 지표화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기되는 등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주옥같은 의견들이 발굴돼 매우 고무적'이라면서 이번 학술대회의 성과를 평가했다. 

이 회장은 아울러 "해를 거듭할수록 이론, 해석, 사례 등 헌법에 관한 지식들이 그 깊이와 섬세함을 더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기존의 관념적 원칙들에 준거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구조에 더는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 상황 등 국민이 살아가는 생활현장의 크고 작은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관념적이고 주관적인 원칙에 끼워 맞추는 판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종합적으로 통찰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헌법재판의 진화 방향을 제시했다. 

김용숙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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