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12년 만에 새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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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12년 만에 새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펴내
  • 석희열 기자
  • 승인 2022.05.13 10: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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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래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12년 만에 3000여 편의 육필 원고 중 301편 묶어
밤하늘의 북두칠성처럼 우리에게 길을 밝혀줄 301편의 시에는 주옥같은 시어들로 가득
별빛 쏟아지는 이 푸른빛의 시집을 아이들 곁에 꼭 놓아주면 좋겠다... 느린걸음에서 출간
박노해 시인이 수많은 독자들의 '인생 시집'이 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12년 만에 새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13일 펴냈다. (자료=느린걸음) copyright 데일리중앙
박노해 시인이 수많은 독자들의 '인생 시집'이 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12년 만에 새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13일 펴냈다. (책 표지=느린걸음)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가슴에 벼락 같이 꽂히는 한 줄의 시를 만난 적이 있는가. 내 안의 나를 흔들어 깨우는 목소리, 어둑한 앞길을 비춰주는 빛과 같은 문장을. 때로 그 한 줄에 기대어 힘겨운 날들을 버텨내고, 나를 다시 살게 하는 그런 시를···.

박노해 시인이 새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13일 펴냈다. 수많은 독자들의 '인생 시집'이 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12년 만이다.

3000여 편의 육필 원고 가운데 301편을 묶어 펴낸 이번 시집에는 그동안 입에서 입으로 낭송되고 사랑받은 시들, 그러나 책으로는 처음 출간되는 '너의 하늘을 보아' '별은 너에게로' '살아서 돌아온 자' '경계' '이별은 차마 못했네' '동그란 길로 가다' 등의 시도 함께 담겨 있다.

스스로를 "저주받은 시인이고/ 실패한 혁명가이며/ 추방당한 유랑자"(「취한 밤의 독백」)라 독백한 박노해. 그는 가난한 청년 노동자 시절을 지나 민주화 운동으로 사형 구형과 무기징역 감옥살이, 석방 뒤에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새로운 혁명의 길을 걸어왔다. 

그의 길은 어둠이었으나 그는 언제나 ‘빛을 찾아가는 여정’에 자신을 두었다.

반도 남쪽의 젊은 청춘들이 누구나 혁명을 꿈꾸던 시기, 『노동의 새벽』(1984)을 썼던 27살의 '얼굴 없는 시인'은 이제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려앉은 70을 바라보는 성상이 됐다. 

그럼에도 『너의 하늘을 보아』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온 '푸른 마음'의 앳되고 순수한 소년을 마주하는 것 같다. 

박노해 시인은 "그 약속이 나를 지켰다"고 말한다. "널 지켜줄게/ 그 말 한 마디 지키느라/ 크게 다치고 말았다/ 비틀거리며 걸어온 내 인생// 세월이 흐르고서 나는 안다/ 젊은 날의 무모한 약속,/ 그 순정한 사랑의 언약이/ 날 지켜주었음을"(「그 약속이 나를 지켰다」). 

변함없는 '첫마음의 길'을 걸어온 그의 힘은 바로 그 '약속'이었음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너의 하늘을 보아』에는 "오직 나 자신만이 증인"인 그의 삶과 사랑, 투쟁과 상처의 고백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이 푸른빛의 시집은 잊고 있던 '내 안의 소년 소녀'를 일깨운다.밤하늘의 북두칠성처럼 언제나 나의 길을 밝혀줄 301편의 시를 건네며 박노해 시인은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하늘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빚어낸 이 시들은 이제 그대의 시이자 우리의 시라고. 

"나의 시는 어둠과 눈물 속에서 암시받은 암시일 뿐, 이 시는 그대의 것이다. 그대가 말하라.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삶으로, 자신이 싸워낸 진실로."

이처럼 박노해 시집에는 내 영혼을 맑게 하는 시, 인생의 고비마다 꺼내 읽고 인용하고 싶은 시들로 가득하다.

특히 이 땅의 청춘에게 보내는 애정과 격려의 시편들이 많다. 흔한 위로가 아닌 정신이 번쩍 나는 직언을 건넨다.

"젊음은, 조심하라// 젊은 너의 마음을 얻으려/ 온갖 위로와 재미를 바치며/ 화려한 유행의 분방함으로/ 고귀한 젊음을 탕진케 하리니"(「젊음은, 조심하라」).

젊음을 위로하고 젊음에 편승하는 시대, 박노해 시인은 뜨거운 믿음으로 말한다. "청년을 위한다며 동정하고 위로하는 건/ 청년에 대한 최고의 모독이다/ 젊음은 젊음 그 자체로 힘이다// (...) 젊음은 위로가 아닌 활로가 필요하다"(「젊음에 대한 모독」). 

어쩌면 아프고 불편하기까지 한 박노해의 시는 바로 그렇기에 우리 영혼을 강인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독자들은 말한다.

박노해 시인의 시는 쉽다. 난해한 의미를 해석하느라 복잡하게 머리를 맴돌지 않고 바로 가슴으로 꽂히는 시이다. 기교와 장식 없이 시퍼렇게 벼린 시어들은 단순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리듬감에 흡입력이 있다. 마침표 한 번 찍지 않고 끝까지 휘몰아치며 빠져들게 한다.

내면의 심연에서 우주의 대서사시까지, 그 시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단숨에 이끌며 시를 읽는 순간 그것을 '체험'시켜 버린다. 

박노해의 시는 생생히 살아 있다. 눈물이 터지는 시, 웃음이 나오는 시, 가슴에 불을 붙이는 시, 고요히 잠겨드는 시, 그렇게 시를 읽는 동안 제대로 웃고 제대로 울면서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내가 살아 있었구나'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시인은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하늘이 있다며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라고 말한다.

"가난이 서러울 땐 하늘을 보았어요/ 죽은 아빠가 그리울 땐 하늘을 보았어요/ 억울하고 따돌림당하고 외로운 날엔/ 홀로 먼 길을 돌아가며 하늘을 보았어요// (...) 나는 하늘을 보는소년이었어요// (...) 나에겐 하늘이 있었어요/ 하늘이 눈에 담은 내가 있었어요/ 오늘도 난하늘을 보는 소년이에요"(「하늘을 보는 소년」).

박노해 시인이 12년 만에 우리에게 건네는 신작 『너의 하늘을 보아』. 어느 쪽을 펴 보아도 삶으로 살아낸 지혜를 기꺼이 나눠주고 나만의 길을 찾아갈 용기가 돼 줄 것이다.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너의 하늘을 보아」). 별빛 쏟아지는 이 푸른빛의 시집을 아이들 곁에 꼭 놓아주면 좋겠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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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샌 2022-05-13 10:47:58
이땅의 진정한 혁명가는 박노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