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35년 만에 국가가 첫 진실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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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35년 만에 국가가 첫 진실규명
  • 석희열 기자
  • 승인 2022.08.2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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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강제노역·가혹행위·성폭력 등 인간존엄성 침해 인정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 명 강제수용... 추가 105명 등 657명 사망 확인
정부의 사건 인지 및 조직적 축소‧은폐 밝혀내... 국가의 공식사과와 피해회복 조치 권고
국회는 6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해야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관련 업무 담당 조직을 위해 적합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해야
한국의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35년 만에 국가가 첫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4일 서울 중구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사진=진실화해위원회)copyright 데일리중앙
한국의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35년 만에 국가가 첫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4일 서울 중구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사진=진실화해위원회)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한국의 '아우슈비츠', 대한민국 '요덕수용소'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35년 만에 국가가 첫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부산시 주례동에 위치한 형제복지원(원장 박인근)에는 모두 3만8000여 명이 '부랑인' 등의 이름으로 강제수용됐다.

내무부훈령 제410호 등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강제노역과 폭력, 가혹행위, 성폭력, 실종, 죽음에 이르는 등 온갖 종류의 인간 존엄성 침해가 저질러졌음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657명의 사망이 확인됐다.

형제복지원은 1960년 7월 20일 전신인 형제육아원이 부산 감만동에서 처음 개소한 뒤 1962년 6월 9일 용당동으로 확장 이전, 1975년 7월 25일 주례동으로 확장 이전됐다. 1982년 이후 증축공사 등 운영 기간 내내 모든 건물 공사에 수용인들의 무급 노동력이 강제 동원됐다.

형제복지원은 아무런 보조금을 받지 않고 시설을 건설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국비‧시비를 지원받고 산림청에서 헐값에 부지를 불하받는 등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받았다.

한국의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1월 부산지검 울산지청(담당검사 김용원)의 수사로 세상(일반 국민)에 처음 알려졌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4일 서울 중구 퇴계로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정근식 진화위 위원장은 "늦었지만 오늘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게 돼서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화위는 사건이 1987년 검찰 수사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뒤 35년 만에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형제복지원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의료문제 및 사망자 처리 의혹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및 조직적 축소‧은폐 시도 등을 밝혀냈다. 

앞서 진화위는 2020년 12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접수했다. 지난해 5월 27일 조사 개시 이후 1년 3개월 동안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가 이뤄졌다. 이번 진실규명은 전체 신청자 544명 가운데 2021년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했다.

정근식 위원장은 "조사 결과 신청사건에 대한 국가의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규명됐고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므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제26조에 따라 신청사건에 대해 8월 23일 진실규명 결정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진화위는 먼저 사회통제적 부랑인정책, 사회복지 및 치안관계 법령, 내무부훈령 제410호, 부산시 부랑인 일시보호 위탁계약 등을 근거로 공권력이 직·간접적으로 부랑인으로 칭한 사람들을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해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또한 부랑인을 정의하고 단속과 강제수용의 근거로 삼은 관계 법령, 지침, 계약뿐만 아니라 실제 경찰 등의 단속 행위도 위헌·위법했다. 무차별한 부랑인 단속과 형제복지원 수용의 근거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1975. 12. 15. 제정)의 위헌‧위법성이 확인된 것. 

이에 따라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된 사람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 훼손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다. 

정 위원장은 "특히 형제복지원 운영과정에서 감금 상태에 있던 피수용자는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에 이르는 등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받았으며 국가가 형제복지원에 대한 관리 감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모두 3만8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1984년에는 한 해에만 최대 4355명이 강제 수용됐다.

수용자들이 강제노역한 대가로 자립적금을 형제복지원이 미지급하거나 착복한 사실도 드러났다. 1986년에 1인당 평균예입액은 55만819원인데 1인당 평균 지급액은 20만4729원이다. 1인당 34만6090원의 차이가 난다. 진화위는 원생들에게 자립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착복한 것으로 봤다. 당시 형제복지원 원장은 박아무개씨다.

진화위는 부산시와 경찰, 안기부 등 부산지역 모든 기관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한 것으로 확인했다. 특히 부산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소송을 회유하고 원장과 측근들이 다시 형제복지원 법인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국가가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진정을 묵살했고 사실을 인지했으나 조치하지 않았던 사실도 밝혀냈다. 

보건사회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사실 알고서도 묵인‧정당화한 문건. (자료=진실화해위원회) copyright 데일리중앙
보건사회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사실 알고서도 묵인‧정당화한 문건. (자료=진실화해위원회)
ⓒ 데일리중앙

1987년 1월 17일 형제복지원 원장 박○○ 등 6명에 대한 구속 수사 개시 이후 당시 보건사회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부랑인 시설 입‧퇴소 절차 개선 등을 담은 '부랑인시설운영개선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문건에서 보건사회부는 그간의 부랑인시설 운영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복지시설 수용이 합법적 경로를 우회하여 강제 구금하는 방식이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진화위는 이 사건을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해 1960년 7월 20일부터 1992년 8월 20일까지 운영된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결론을 냈다.

진화위는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각종 시설에서의 수용 및 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것을 주문했다.

국회에 대해서는 2022년 6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위해 적합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관계기관에 이번 권고사항을 통지하고 이번 진실규명에는 포함되지 않는 진실규명 신청자들에 대해서도 조속히 단계적으로 진실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정근식 위원장은 "오랜 시간 기다려온 형제복지원 사건의 인권침해 진실이 드러난 것은 피해자와 유가족, 사회단체 등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며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의 계기가 된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규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 등 이 사건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20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모인 '형제복지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는 논평을 내어 "늦게나마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폭력의 희생자임을 인정받고 자신들의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음을 환영한다"며 "정부와 국회는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 대한 실효적인 구제 및 명예회복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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