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문의 대신 '신음소리'... 악성민원에 골병드는 131기상콜센터 상담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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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문의 대신 '신음소리'... 악성민원에 골병드는 131기상콜센터 상담사들
  • 김용숙 기자
  • 승인 2022.09.18 1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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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만 1차 경고 후 차단… 욕설‧폭언, 업무방해는 3차까지 경고 뒤 차단
이은주 의원 "모든 악성민원, 1차나 2차 경고 뒤 차단해야”... 제도개선 주문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은 18일 악성민원에 골병드는 131기상콜센터 상담사들의 고충을 얘기하며 "모든 악성민원에 대해 1차나 2차 경고 뒤에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제도개선을 주문했다.copyright 데일리중앙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은 18일 악성민원에 골병드는 131기상콜센터 상담사들의 고충을 얘기하며 "모든 악성민원에 대해 1차나 2차 경고 뒤에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제도개선을 주문했다.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김용숙 기자] 국번 없이 131을 누르면 연결되는 기상콜센터 상담사들 사이에서 민원인 A씨는 피하고 싶은 존재다. 

특히 날씨 문의 대신 신음소리를 내는 등 악성 민원에 131기상콜센터 상담사들이 정신적으로 골병들고 있다.

A씨의 경우 매일 1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 날씨 문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상담사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A씨가 성희롱성 발언은 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끊을 수도 없다. 

기상청 악성 민원인 인입 차단 처리 단계에 따르면 업무방해성 전화는 3차 경고까지 하고 나서야 차단할 수 있다. 상담사 보호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8일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이 기상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131기상콜센터에선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2482건, 연간 90만5000여 건에 달하는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관리자(7명) 포함 49명의 상담사들이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담사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와 압박을 주는 악성 민원(폭언·욕설, 성희롱, 업무방해)은 최근 5년(2018~2022년 8월) 간 모두 2749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폭언·욕설이 1569건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업무방해(901건), 성희롱(279건) 순으로 이어졌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738건이었던 악성 민원은 2019년 603건, 2020년 523건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다 2021년 다시 609건으로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는 8개월 간 총 276건의 악성 민원이 접수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예보에 대한 불만으로 다짜고짜 상담사들에게 욕설이나 폭언을 퍼붓는 민원인이 많다. 

날씨와 관련 없는 문의를 한 뒤 대답을 잘못하면 욕설을 퍼붓기 일쑤다. 

비정상적인 질문으로 상담사를 비난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직업을 비하하거나 심지어 상담사의 목소리까지 트집잡는 민원인도 있다. 

특히 수화기 너머로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여성 상담사에게 신음소리를 낸다거나 남성 상담사가 콜을 받으면 여성 상담사 연결을 요구하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성희롱은 2018년 36건에서 2019년 81건으로 늘었다가 2020년 57건, 2021년 72건으로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 올해는 8월까지 33건의 성희롱 민원이 집계됐다.  

앞서 A씨 같이 매일 1시간 간격의 날씨 문의와 상관없는 민원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장시간 통화를 요구하거나 '결혼은 했냐' '나이는 몇이냐' '어디 사느냐' 등 사적인 질문을 던지며 장시간 상담을 지속하는 민원인도 있다. 

2019년 정부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부터 건강장해 예방조치를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따라 공공기관 콜센터에서 민원전화를 받는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한 응대 표준안을 마련했다.

기상청도 민원인들에게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음성안내를 내보내고 있다. 매뉴얼에 따라 민원인이 상담사에게 성희롱을 하면 1차 경고 후 바로 차단할 수 있다. 

반면 욕설‧폭언이나 업무방해성 민원인의 경우에는 1차 경고 뒤 차단할 수 없고 2차 경고, 3차 경고까지 해야 비로소 민원인을 차단할 수 있다.

하루 3회 이상 재인입 민원인은 24시간 차단된다. 단, 성희롱의 경우 1회 인입 이후 즉시 차단된다. 24시간 차단되고도 5일 이내 동일 내용으로 재인입 때는 7일 간 차단된다. 7일 차단 이후에도 5일 이내 같은 내용을 반복할 경우 한 달 간 차단된다.  

하지만 상담사들이 단계별로 악성 민원인을 대응하고 인입 차단과 해제가 반복된 이후에야 법적조치를 알리고 시행할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기상청이 악성민원인을 상대로 고소 또는 고발조치를 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악성민원인에 노출된 상담사 보호조치는 △30분 힐링시간 제공(악성 민원으로 인해 상담업무 수행 불가시 실시) △과천정부청사 내 1시간30분 힐링프로그램 참여 △반복적인 민원콜 발생 시 즉시 귀가조치 정도다. 

하지만 상담사 1명당 하루 평균 59건(2021년 기준)의 상담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담사가 오롯이 30분~1시간30분용 힐링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즉시 집으로 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은주 의원은 "악성민원인에 노출된 상담사에 즉각적인 휴식을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선제적으로 악성민원인에 노출되는 시간 자체를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욕설‧폭언을 하거나 업무방해를 하는 악성민원인들에 대해서도 성희롱 대응처럼 1차나 2차 경고 후 차단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응 방안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숙 기자 news7703@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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