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대평 특별기고]숭례문지묘(崇禮門之墓)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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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대평 특별기고]숭례문지묘(崇禮門之墓)를 만들자
  • 데일리중앙
  • 승인 2008.02.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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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의 눈물은 우리 모두의 오만에 대한 준엄한 경고

▲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최고위원 캐리커쳐.
숭례문의 피눈물을 보았는가?

숭례문의 뜨거운 절규를 들었는가?
600여년의 장구한 역사가 우리 눈 앞에서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참으로 죄스럽다.
참으로 통탄스런 일이다. 숭례문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건립 이래 도성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오가는 사람은 물론, 문명과 물질이 지나는 통로였으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온 우리네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숭례문은 우리의 역사, 생명이었다.
이 생명의 불씨를 꺼트린 우리 모두는
역사의 죄인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누구를 탓할 것인가.

숭례문을 불태우고도 복원하면 된다는 방화범의 한마디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국민세금 200억원을 들여 ‘새로 지어 주겠다’는 정부의 무심한 발표나
국민성금을 모금해 복원하자는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말 역시
지금 우리가 정신공황상태에 살아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600여년 숨결을 잃고 복원될 숭례문은, 후대에 교육적 가치로 남을지언정
우리 국보 1호가 지녔던 역사성을 잃어 이미 문화재가 될 수 없는 것을...
시대의식도, 역사의식도 없다.
생명도 철학도 없이 오로지 외형적 형체만 존중되는 물질만능의 나라가 돼버렸다.
우리의 이런 의식부재는 이번 참사의 사후처리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숭례문의 재 한줌도 그 자체가 유물이고 역사인 것을...
화재직후 현장에 들이닥친 것은 다름 아닌 불도저였다.
불탄 나뭇조각, 깨진 기왓장, 하나하나를 털어내고 닦아내는 정성은 고사하고
숭례문의 잔해를 폐기물 취급하는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숭례문의 불도저를 바라보면서 지사시절 방문했던 이태리가 생각난다.
7년째 호미로 긁어내고 붓으로 털어내고 있던 유적발굴 현장이 떠오르면서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불타 무너져 내리는 숭례문, 그 현장에 들이닥친 불도저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갈 나라가 겨우 이런 나라였던가.
숭례문의 화재는 단순한 방화사고일 수 없다.
바로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 대한 엄중한 경고인 것이다.
온 몸이 불에 타면서 우리에게 소리치는 숭례문의 절규를 들었는가!
TV 화면을 통해 불 타는 숭례문을 바라보며 우리는 울었다.
숭례문의 무너져 내리는 기왓장과 함께 우리 국민의 자존심도 와르르 무너졌고
활활 타오르는 숭례문의 눈물은 우리 모두의 눈물이었다.
무너진 민족정신을 통탄하고 오만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숭례문의 경고였다.
스스로 불타 대한민국의 액운을 막아내려는 헌신이었으며,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어달라는 준엄한 가르침이었다.
숭례문의 준엄한 경고와 가르침을 한 겹 휘장막으로 가리고 불도저로 걷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유적을 7년째 붓으로 털어내는 이태리처럼,

1400년된 고찰 호류지(法隆寺)에 큰 불이 나 많은 보물을 잃었으나
타다 남은 금당벽화 등 문화재의 잔해를 모두 수장고에 보관하는 일본처럼,
우선 불에 탄 숭례문의 잔해를 정성껏 모아야 한다.
한줌의 재까지 성심으로 모아 ‘숭례문지묘(崇禮門之墓)’를 만들자.
불탄 숭례문을 추모하자는 의미보다 대오각성을 하자는 뜻이다.
‘숭례문지묘’ 앞에서 가장 먼저 책임져야할 우리 정치인, 공직자들이 먼저 석고대죄를 하자.
숭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 바탕위에서 우리 모두가 제대로 서야한다.
이미 우리는 역사 앞에 죄인이다.
우리가 더 큰 죄인이 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숭례문이 우리에게 남긴 경고와 가르침을 실천해가는 일이다.
지금도 숭례문은 우리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숭례문의 눈물이 우리 역사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의미 있는 희생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2008.   2.   22.
자유선진당 대표최고위원 심대평

데일리중앙 webmaster@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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