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오늘의 민주주의는 열사들의 피와 목숨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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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오늘의 민주주의는 열사들의 피와 목숨의 대가"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1.01.14 16: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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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 기념관 방문... 당시 끔찍했던 대공분실 고문치사 사건 생생하게 증언

"목이 눌려 질식사한 것을 어떻게 밝혀냈는가 하면 목 부분에 눌린 흔적이 이 욕조 턱과 같았다. 그리고 폐에 물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물을 마셔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폐에 공기가 못 들어가서 질식사한 것이다. 용산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사망한 채였다.

제가 용산병원에서 부검을 한다고 했는데도 경찰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기들 마음대로 한양대병원에 박종철 열사의 사채를 옮겨 놓았다. 할 수 없이 한양대병원으로 갔다. 제가 서울대병원 의사를 지정했는데도 들어가서 보니까 서울대병원 의사는 오지도 않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분이 바로 유명한 황적준 박사다."  

"오늘날 우리가 완전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도 박종철 열사 같은 수많은 희생과 이분들의 피의 대가, 목숨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14일 서울 용산구 갈월동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안에 있는 박종철 열사 기념관을 방문해 열사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고 황천모 부대변인이 전했다.

안상수 대표는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 출신이다.

안 대표는 박종철 열사 24주기를 맞아 기념관을 찾기에 앞서 "예전에 현장검증을 하러 왔을 때 욕조가 있는데 그대로 보존하도록 했다"고 말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24년이 지났다. 점점 잊혀져서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한 젊은 영혼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는데 숭고한 뜻이 너무 빨리 잊혀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기념사업관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안 대표는 "그 당시 대공분실이 무서운 곳이었다. 여기 들어오면 무조건 고문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에 조사하고 자백을 받았다. 자백을 하면 자백하는 대로, 부인하면 부인하는 대로 과거 5공 말기에 고문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날 낮 11시20분께, 과거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리던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5층에 보존된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현장을 찾아 열사의 영정 앞에 꽃을 바치고 묵념했다.

안 대표는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로서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안 대표는 "여기서 조한경 경위가 앉아서 조사를 하고 박종철 열사가 조사를 받았다. 경찰 보고는 '조사를 받던 중에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쓰러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박종운이 어디 있느냐'고 소재를 대라면서 고문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목이 눌려 질식사한 것을 어떻게 밝혀냈는가 하면 목 부분에 눌린 흔적이 이 욕조 턱과 같았다. 그리고 폐에 물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물을 마셔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폐에 공기가 못 들어가서 질식사한 것이다. 용산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사망한 채였다.

제가 용산병원에서 부검을 한다고 했는데도 경찰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기들 마음대로 한양대병원에 박종철 열사의 사채를 옮겨 놓았다. 할 수 없이 한양대병원으로 갔다. 제가 서울대병원 의사를 지정했는데도 들어가서 보니까 서울대병원 의사는 오지도 않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분이 바로 유명한 황적준 박사다."  

 

안 대표는 "부검을 하면서 피멍이 든 자리 등 하나하나 사진을 찍었다. 두 시간 가량 부검을 했다. 부검을 한 뒤 물고문하다가 욕조에 턱이 받혀 사망을 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바로 부검의로부터 진술 조사를 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부검실에 경찰이 하도 많이 들어와 있어서 묵념을 한 후, 전부 다 내보냈다. 부검실에는 저하고 부검의인 황적준 박사, 조수, 사진사 등 4명이 남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증인을 참여시켰다. 그 두 사람이 바로 박종철 열사의 삼촌인 박월길씨와 당시 한양대병원 당직 의사다."
"부검실에 경찰이 하도 많이 들어와 있어서 묵념을 한 후, 전부 다 내보냈다. 부검실에는 저하고 부검의인 황적준 박사, 조수, 사진사 등 4명이 남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증인을 참여시켰다. 그 두 사람이 바로 박종철 열사의 삼촌인 박월길씨와 당시 한양대병원 당직 의사다."

부검이 끝난 뒤 황적준 박사는 당시 치안본부에 가서 심장마비로 하라는 압력을 계속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였던 안 대표도 안기부(국정원의 전신)의 호출을 받았다고 했다.

안 대표는 "저는 돌아와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 같다고 상부에 보고를 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부검을 열심히 잘한다고 해도 5공 말기에는 진실을 밝힐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틀림없이 심장마비로 하라고 제가 압력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목격자 두 사람을 참여시키고 경찰을 다 내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안 대표의 예상대로 박월길씨와 당시 한양대병원 당직 의사는 부검이 끝난 뒤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본 대로 거짓없이 전부 알렸다. 진실이 참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조간 신문에는 '모두 피멍이 들었다. 박종철군 온몸에 피멍' 등의 제목으로 대서특필됐다. 이로써 박종철 열사 죽음의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게 됐다.

안 대표는 "그것이 바로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되고 또 6.29선언을 가져오고 군사정권이 몰락하게 된 그런 계기가 되었다"며 당시 이 사건의 진실을 가감없이 보도한 언론에 고마워했다.

그는 이어 "오늘날 우리가 완전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도 박종철 열사 같은 수많은 희생과 이분들의 피의 대가, 목숨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 감사 이런 것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날 안 대표의 박종철 열사 기념관 방문에는 원희목 대표비서실장,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 열사의 형인 박종부씨, 당시 선배였던 박종운씨, 박종준 경찰청 차장, 장신중 경찰청 인권보호 담당관, 김일태 경찰청 감사관이 함께했다.

김주미 기자 kjsk@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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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살 2011-01-14 19:16:33
그런일이 있었구나
안상수가 괜한 안상수가 아니구만
대단한 일을 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