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빈곤없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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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빈곤없는 세상을 꿈꾼다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3.09.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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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기] '도심속의 외딴섬' 포이동 266번지

포이동 266번지 판자촌... 서울 양재천 건너 멀리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곳이 3000여 세대가 산다고 하는 우리나라최고층 아파트 타워팰리스다.
ⓒ 데일리중앙
한 채당 수십억원짜리 펜트하우스(pent-house) 타워팰리스가 있는 곳. 우리나라 고급 외제차의 절반이 굴러다닌다는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동네 서울 강남구. 그 속에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포이동 266번지 사람들의 기막힌 인생유전이 있다.

"이 양아치 새끼들, 조용히 못해?"

고물 수집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는 포이동 266번지 사람들을 향해 근처 고급 빌라에서는 이처럼 반말로 윽박지르는 것이 예사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쪽방촌에서 나오는 소음과 먼지로 인해 주변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빈곤의 대물림... 주민 잇따라 자살

도심 속의 '외딴섬' 포이동 266번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만성적인 가난과 질병에 신음하며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린 50대 넝마주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받은 것은 꼭두새벽이었다.

나는 현장에 도착해 경찰로부터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곧바로 주민들을 상대로 보강 취재를 시작했다. 숨진 김아무개씨의 아내와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에 따른 큰 충격 속에서도 부인은 침침착성을 잃지 않았고, 언론 대응을 적절히 잘하는 듯했다.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현장에서 기사를 작성해 데스크에 넘겼다. 단순 스트레이트가 아닌 피처 기사였다. 반응이 폭발했다. 누리꾼들은 당시 노무현 정부와 서울시, 강남구를 싸잡아 비난하며 넝마주이를 살려내라고 거칠게 공격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다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김씨의 부인마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끊은 것이다. 가난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한 부부가 한 달 간격으로 동반 자살(?)을 한 셈이다.

그로부터 1년 뒤 강남구청 앞. 섭씨 30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에 정태춘의 명상곡 <더 이상 죽이지 마라>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빈곤의 굴레에서 발버둥치다 죽어간 포이동 넝마주이 부부 제단에 꽃을 바쳤다. 이들 부부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절규는 "자식에게만은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였다.

절망의 빈곤... 희망의 연대는 어디에

"가난한 자들, 가지지 못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원히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김씨 부부는 생전에 천형처럼 따라다니며 짓눌러온 빚더미를 끝내 다 털지 못한 채 이승을 떠났다. 토지 변상금 4668만원과 자동차세 1200만원 등 7000만원의 빚을 두 아들에게 남겼다. 서울시 체비지인 포이동 266번지의 주민들에게 강남구가 1990년 이후 해마다 꼬박꼬박 물려온 변상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은 것. 두 아들은 당시 군 복무 중이었고, 현재는 이 마을을 떠났다.

규모 6.0 이상의 강진에서도 끄떡없이 견딘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초고층 아파트 타워팰리스. 그 화려함 뒤로 포이동 266번지 판자촌 주민들은 오늘도 고물더미를 뒤지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학원이 달나라만큼 가고 싶다는 아이들이 사는 이곳에 언제쯤 따스한 햇살이 비칠까?

"가난한 자들, 가지지 못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원히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한 말이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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