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기 때마다 '꼬뮈니까시옹', 프랑스 대통령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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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기 때마다 '꼬뮈니까시옹', 프랑스 대통령을 보라
  • 최인숙 기자
  • 승인 2014.12.17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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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리더의 기본 자질"... MB·박근혜, '명박산성''불통의 여왕' 오명

프랑스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 정치학 박사이자 미래연 회원인 최인숙 박사가 프랑스의 대통령·정치인과 정치 그리고 미디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교·분석하는 칼럼을 미래연 홈페이지에 기고하고 있다. 제1편은 정치인의 '전문능력' 또는 '경쟁력'을 뜻하는 프랑스어 '꽁뻬땅스'(competence)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래연의 동의를 얻어 최인숙 박사의 칼럼 전문을 여기에 싣는다. - 편집자 주

▲ 칼럼리스트 최인숙 박사.
ⓒ 데일리중앙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은 탁월한 소통(communication;꼬뮈니까시옹) 능력을 가진 리더였다.

알제리 문제, 제 4공화국의 무능 등에 분노한 프랑스 국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정국이 뒤숭숭하고 혼란에 빠졌을 때, 드골은 TV출현을 통해 프랑스 국민들에게 "그만 진정하고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맡기라. 그만 집에 돌아가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호소는 프랑스 국민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드골은 대중 매체를 잘 이용해 여론정치와 미디어정치의 모델을 만든 훌륭한 지도자로 프랑스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열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프랑스 대통령들의 '꼬뮈니까시옹' 능력

소통의 정치를 구가한 것은 드골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1979년 지스카르 데스탱(Valéry Giscard D'Estaing)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임기 도중 대여섯 가지 정치적 악재가 겹쳐서 프랑스가 또 한 번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돌파구를 찾고자 궁리하던 대통령은 그 당시 600만 명 이상의 높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던 텔레비전 문학 대담 프로그램인 '아뽀스트로프(Apostrophes)'에 게스트로 출연해 모빠쌍에 대해 토론했다.

지스카르 데스탱이 점잖고 온화하고 학식 있는 모습으로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 모빠쌍을 이야기했고 이를 지켜 본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해 다시 신망을 하게 됐다. 그 결과 지스카르 데스탱 정부는 파국을 모면하고 대통령의 지위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대통령은 매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에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두 명의 기자를 엘리제궁으로 초대하여 40분 간 생중계로 공개토론을 벌인다. 이 두 명은 프랑스인의 신망을 받는 프랑스의 대표적 민영 텔레비전 방송인 <TF1>과 공영 텔레비전 <France2>의 기자다.

이들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대통령과 그 동안의 국정활동에 대한 총결산과 앞으로의 개혁문제, 그리고 경제정책 등에 대해 토론한다. 이러한 공식적 토론 이외에도 국정을 둘러싸고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을 때마다 대통령은 텔레비전을 통해 10분 정도의 짧은 담화(allocution: 알로뀌시옹)를 발표한다.

국민과의 소통은 프랑스 대통령의 '의무'이자 '기본'

2012년 6월 취임한 올랑드(François Hollande) 현 대통령은 개각을 하거나 선거에 참패했을 때, 불황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경제정책을 내놓았을 때 등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텔레비전 알로뀌시옹으로 국민들에게 국정을 얘기했다. 대통령의 이러한 담화가 끝나면 프랑스 미디어와 국민들은 대통령 담화가 설득력이 있었는지(convaincant;꽁벵깡) 없었는지 열렬히 평가하고 이 평가를 대통령은 귀담아 듣는 피드백이 이뤄진다.

이처럼 프랑스 지도자들은 꼬뮈니까시옹 능력을 리더의 필수자질로 구비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문화가 형성된 주요 요인은 프랑스 국민들이다.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리더가 '높은 문화적 수준'을 지니길 염원한다. 높은 문화적 수준이란 논쟁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을 말하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꼬뮈니까시옹 능력을 필수로 배양해야만 한다.

프랑스 지도자만이 소통 능력을 겸비하고 있는 것일까? 세계 역사 속의 리더들을 보면 훌륭한 지도자들은 하나 같이 탁월한 꼬뮈니까시옹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와 한비자의 통치술을 보라.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 중 가장 중요한 자질이 소통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왜 우리 대통령은 리더의 필수 자질인 꼬뮈니까시옹 능력이 이다지도 결핍되어 있는 걸까?

꼬뮈니까시옹과 거리가 먼 한국 대통령들과 한국의 언론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의 여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세월호 침몰로 나라가 안보 위기에 빠지고 국민들은 슬픔과 불안에 휩싸여 대통령과의 소통을 애타게 기다려봤지만 허사였다. 세월호 참사 직후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 '대통령이 책임지겠다' '희생자에게 모든 지원을 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말은 '허언'이었고 대통령이 보인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명박산성'을 쌓아놓고 국민과 소통을 거부했다. 혼자 말하고 쌍방향 소통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체이탈 화법'이란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은 공개 장소에 나와 국민과 꼬뮈니까시옹 하시는 것을 거부하셨다. 국민은 국가가 위기에 빠져 불안하고 절망스러울 때 지도자의 명연설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지도자 상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을 헤아리고 소통하는 리더의 기본 자질을 갖추지 못한 권위적인 분이 21세기 한국의 통치자라는 사실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한국 언론도 문제다. 대통령이 꼬뮈니까시옹의 자질을 갖추고 노력을 보이고 있는지 검증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앵무새처럼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적기에 바쁘거나 '말꼬리잡기'에 매달린다. 대통령과 국민의 쌍방향 소통을 매개(media)하기보다는 일방적 소통에 더 익숙하다.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편향적이어서 소통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불신·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인터넷과 더불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쌍방향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 대통령은 불통 아니면 일방향이니 시대착오라 아니할 수 없다. 소통 능력을 갖춘, 높은 문화적 수준의 리더가 대통령으로 선출돼 선진화된 민주주의 정치가 하루빨리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최인숙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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