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올랑드 정부의 '빠리떼'와 박근혜정부의 '십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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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올랑드 정부의 '빠리떼'와 박근혜정부의 '십상시'
  • 최인숙 기자
  • 승인 2015.01.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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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정치 대 한국정치' ④... 시대변화 반영해 참신한 인물 기용해야
프랑스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 정치학 박사이자 미래연 회원인 최인숙 박사가 프랑스의 대통령·정치인과 정치 그리고 미디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교·분석하는 칼럼을 미래연 홈페이지에 기고하고 있다. 미래연의 동의를 얻어 최인숙 박사의 칼럼 전문을 여기에 싣는다. - 편집자 주

▲ 2014년 8월 말 발족된 발스(Manuel Valls)정부 II의 장관들과 정무차관들. 여성/남성의 균등 배분인 빠리떼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 (사진=최인숙)
ⓒ 데일리중앙
얼마 전 단행한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개각은 파격적이었다. 수상 발스(Manuel Valls)가 구성한 새 내각의 장관들은 총 16명이었는데, 이중 남성과 여성 장관이 각각 여덟명이었다. 요즘 정치학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빠리떼’(Parité, 성평등 배분)를 실현한 개각이었을 뿐 아니라, ‘빠리떼’를 공약으로 내건 올랑드(François Hollande) 대통령의 완벽한 약속 이행이었다.

장관들의 연령도 다양했다. 30대 3명, 40대 1명, 50대 4명, 60대 8명으로 프랑스의 유권자층을 가급적 모두 커버하려는 인사였다. 30대 장관으로 경제부 장관 마크롱(Emmanuel Macron, 36세)과 교육부 장관 발로-밸카?(Najat Vallaud-Belkacem, 36세), 그리고 국토부 장관 삐넬(Sylvia Pinel, 37세)을 기용하여 내각을 활기차게 만들고,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정치로 끌어 모으려는 사회당의 마케팅 전략이 엿보인다.

사회 변화 발빠르게 읽은 프랑스 사회당의 파격적 개각

이 가운데서도 발로-밸카?을 교육부 장관에 임명한 것은 프랑스 사회를 온통 들썩이게 했다. 야당은 이를 두고 ‘정치 마케팅’이라 비아냥거렸다. 프랑스 역사상 여성을 교육부장관에 임명한 것은 극히 이례적일 뿐 아니라 발로-밸카쌤은 교육계 무경험자였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인사에 있어 전문적 경험과 능력(compétence;꽁뻬땅스)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왜 사회당 정부는 ‘꽁뻬땅스’가 부족한 이 인물을 교육부 장관에 임명했을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 인사는 이민자들과 프랑스 여성을 존중하는 하나의 상징적 선택이었다. 프랑스 국립경제통계연구소(인세, Insee)에 의하면 프랑스의 이민자는 전 국민의 19%다. 그리고 프랑스 학생들은 15세가 되면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지르기 시작하고 대학진학률과 졸업률도 여학생이 더 높다. 교사 비율도 여성이 훨씬 높고 대학의 학장도 여성이 많다. 올랑드 정부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상징적 인물을 발굴하여 과감한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발로-밸카?은 공사판 노동자의 딸로 3살 때 모로코에서 이민을 왔고, 2000년 그랑제꼴(Grandes écoles)인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을 졸업함으로써 프랑스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캐릭터를 소유하고 있다. 2002년 사회당 활동을 시작으로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대통령 후보 세골렌 르와얄(Ségolène Royale)의 대변인을 맡았고, 올랑드 초기정부에서는 여성인권부 장관과 정부 대변인을 지냈다.

프랑스, 보수적인 남성위주 사회적 전통 무너지면서 '빠리떼' 의무화

▲ 빠리근교의 지방 빵뗑(Pantin)의 한 학교에서 초등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는 교육부장관 발로벨카? (사진=최인숙)
ⓒ 데일리중앙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남성위주의 사회였다. 여성들은 1944년에야 비로소 선거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1948년) 보다 약간 앞서긴 했지만, 미국(1920년), 영국(1928년) 같은 앵글로색슨 국가보다는 20년 이상 뒤졌다.

또한 프랑스 여성의 지위는 1970년대까지 매우 열악했다. 여성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남자와 동등하게 개인적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1990년대 여성들이 장관으로 등용되었고, 경제계 그리고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 직종에도 여성의 진출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정당들이 각종 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할 때 여성의 비중을 50% 이상으로 하는‘빠리떼’를 의무화했다. 이처럼 프랑스 여성들이 다방면에서 남성들의 영역을 무너뜨린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한국, 대통령은 여성이지만 정치는 고령 남성 중심의 ‘구닥다리’

프랑스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한국에서 지난 2012년 프랑스보다 먼저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자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정치와 행정부가 남성중심의 낡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얼마나 참신하게 변할 것인지 기대했다. 여성의 사회적 부상을 반영하고 젊은이들의 정치적 냉소를 해소하기 위해 여성 대통령이 젊은 장관, 여성 장관을 더 많이 기용할 것이란 기대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인사는 한마디로 ‘구닥다리’였다. 초기정부 때 임명된 장관 18명 중에서 여성장관은 2명에 불과했다. 장관들의 연령대도 50대 후반에서 70대까지로 오히려 그 어느 정권 때보다 더 늙은 정부가 되어버렸다.

낡은 70년대 유신독재 시절부터 정치와 관직에 몸담아와 이제 70대 고령의 나이에 접어든 인사들이 속속 청와대와 대통령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게다가 최근의 인사에서 여성장관은 1명 줄어들기까지 했다. 여성 대통령의 새 정부는 역대의 그 어느 정부보다 더 ‘고령의 남성’ 중심이었다.

십상시’ 논란 불러온 청와대, 사회는 퇴행하고 국민은 고통스럽다

▲ 최인숙 박사.
ⓒ 데일리중앙
최근 박근혜 정권의‘구중궁궐 십상시’논란이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뒤흔드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한심하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구리다.’ 낡고 불투명한 인사는 권력과 정치를 끝없는 미궁으로 치닫게 한다.

한국사회의 변화속도는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정치선진국 프랑스보다 빠르다.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증가하고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는 속도도 놀랄 만큼 빠르다. 그렇다면 젊은 계층의 관심과 참여를 늘려 정치를 더 젊고 참신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성과 젊은 인재들이 한국사회에는 많이 있다.

정치란 사회 변화를 신속하게 감지하고 실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낡은 정치는 그 ‘후진성’ 탓에 국가와 사회를 퇴행시킬 뿐 아니라 저만치 앞서가는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정치에 새로운 옷을 입히려면 프랑스의 사례처럼 시대변화에 걸맞은 인물을 찾아 기용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라고 그런 인물이 왜 없겠는가?

최인숙 기자 shyeol@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