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참여정부 경제실패' 뭇매, 공정한 평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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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참여정부 경제실패' 뭇매, 공정한 평가 아니다
  • 이정우 기자
  • 승인 2015.01.0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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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한 경제환경 속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저성장·양극화와 싸우며 개혁 향해 도전
경제성장·개방(FTA)·금융·부동산 등에 관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임기 중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보수진영과 일부 언론은 '경제실패' '경제파탄'이란 극단적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참여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정말 실패한 정책인가? 지난 정부 경제정책의 공과 과를 정확하고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한국 경제와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미래연 웹사이트에 연재되고 있는 참여정부의 경제철학을 되짚어보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의 칼럼 전문을 미래연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정책실장·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지냈다. - 편집자

▲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2월 과천청사 재경부 회의실에서 열린 제 4차 경제·민생 점검회의와 제 1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합동회의를 주재하며 경제정책 과제 추진 실적과 내년도 경제 운영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체감경기 회복, 성장잠재력 배양과 경쟁력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내년도 경제운용 방향에 대해 참석자들과 자유토론을 벌였다. (사진=노무현 사료관)
ⓒ 데일리중앙
참여정부가 지향했던 한국경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방향을 우리는 경제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의 경제철학은 그 이전이나 이후의 정부와 크게 달랐다. 참여정부의 경제철학은 워낙 복잡다기해서 한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큰 줄기만 파악할 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종래의 성장지상주의를 지양하고 그 대신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꾀한 점, 둘째, 개혁과 개방을 동시에 추구한 점, 셋째, 공간적 차원에서 보자면 종래의 서울 일극주의를 지양하고 지방과 수도권의 균형발전을 추구한 점, 넷째, 시간적 차원에서 보자면 종래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던 단기주의를 과감히 버리고 장기주의를 지향한 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하나씩 설명해 보자.

참여정부 경제철학(1):  성장-분배의 조화를 꾀하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은 성장 일변도에 빠지지 않고, 분배?복지를 성장과 함께 생각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참여정부는 기본적으로 개혁과 개방, 성장을 지향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약자, 패배자들이 사회적으로 도태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경제적 성과에 상관없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역대 정권들이 오직 경제성장만을 중시하여 오랫동안 사회통합을 도외시하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참여정부가 사회통합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 내건 것은 큰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또한 역대 정권은 사회통합을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종의 군더더기 혹은 사치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던 데 반해 참여정부는 사회통합 그 자체를 중요하게 보았을 뿐 아니라 개혁?개방?성장을 촉진하는 상보적 관계로 파악했다. 이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역대 정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철학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광범위한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메우려 노력한 점, '희망사회 투자계획'이란 이름의 빈곤아동·청소년 종합대책, 그리고 참여정부가 도입한 근로장려세제(EITC) 등은 새로운 발상이었다. 부동산대책이나 사교육비 축소 정책도 성장과 분배, 효율과 공평을 동시에 도모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과잉복지로 인해 복지병이 발생하는 일부 선진 복지국가와는 달리 한국과 같이 낮은 복지 수준에서는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든지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 참여정부의 관점이었다.

참여정부 경제철학(2): 개혁과 개방을 동시에 추진한 첫 정부

둘째, 참여정부는 개혁과 개방을 동시에 추구했다. 19세기 후반 대원군 시대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를 본다면 개혁 혹은 개방을 추구했던 정권은 더러 있었으나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한 정권은 찾기 힘들다. 개혁과 개방을 동시에 추구한 점이 참여정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원군은 서원 철폐, 기득권 타파 등 과감한 개혁을 추진한 공적이 있으나,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집한 결정적 오류를 범했다. 그리하여 동북아를 둘러싼 열강의 침탈 경쟁이 벌어진 19세기 후반 우리로서는 발전하느냐 식민지가 되느냐 하는 결정적 국면에서 대원군이 개방을 거부한 대가는 컸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와 거의 발전 수준이 비슷했던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문명개화’ 정책을 취함으로써 서양문명을 적극 수용했고, 그 결과 불과 몇 십 년 만에 근대화를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세력의 마지막 회원으로서 이웃 나라인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중국을 반식민지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 점에서 대원군의 정책은 개혁이란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것이 있으나 개방을 거부한 실책은 엄중한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반대로 개방에는 적극적이었으나 개혁을 거부한 정권도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수출주도형 개발전략을 채택한다든가, 자본시장을 개방한다든가 하는 개방전략을 적극적으로 채택했으나 개혁을 거부한 독재정권이었다. 개혁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민주화를 철저히 거부하고 극단적으로 탄압함으로써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역사적으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 이렇게 볼 때 개혁과 개방,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했던 정권은 우리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데, 참여정부는 이 둘을 동시에 추구했던 최초의 정권이었다고 특징지을 수 있다.

참여정부 경제철학(3): 서울과 지방의 균형있는 발전을 꿈꾸다

▲ 이정우 경북대 교수.
ⓒ 데일리중앙
셋째, 참여정부의 정책을 공간적으로 특징짓는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 정책은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수도권 과밀 현상을 타개하면서 각 지역의 특성과 장점을 극대화하여 국가경쟁력을 극대화하자는 전략이었다.

지방분권특별법(2003), 균형발전특별법(2003),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2005)이라는 균형발전 3대 입법이 그 근간이었다.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금융·물류허브는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구체적 모습들이었다. 지방과 서울이 서로 발목을 잡는 형국을 타파하고 상생·발전으로 나아가려는 거대한 지방화 역사(役事)를 시작한 것이 참여정부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 경제철학(4): 인기 좇는 단기부양책 버리고 장기적 체질강화

넷째로 장기주의는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시간적 차원의 특징이다. 과거 역대 정권의 단골 메뉴였던 단기주의 정책은 반짝 경기는 호전시켰지만 부작용이 컸다. 경제체질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가까운 예를 찾자면 2000년 이후 카드 및 부동산 대란이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눈앞의 성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고도성장 과정에 너무나 익숙해 있어서 일종의 '빨리빨리병'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런 국민들에게 참고 기다려달라고 요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당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손쉬운 경기부양책을 동원하는 것을 지양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구조개혁 및 경제의 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예를 들면 10.29, 8.31 등 부동산 대책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들 대책은 보유세 강화,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인상,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 확대를 기조로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를 최초로 옳은 방향으로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거품이 꺼지는 과정의 고통을 덜고자 당장 약발이 듣는 건설경기라도 부양하자는 달콤한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부동산투기라는 망국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장기적 시야를 가진 정책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성장잠재력 뿌리째 훼손한 박정희, 경제대통령 순위 맨 뒤에 서야

결국 참여정부는 이상 네 개의 큰 원칙을 통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양대 문제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우리 경제, 사회 곳곳에 장기적으로 누적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불투명과 불공정, 불로소득, 부정부패를 걷어내고 만인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혁신주도형 경제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수십 년 내려오던 경제운용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라 할 수 있다. 해방 후 한국에서 이런 철학을 가진 정권은 일찍이 없었으므로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의의가 발견된다.

흔히 박정희를 가리켜 정치적으로 독재는 했지만 경제성장을 잘 했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발 더 나아가 박정희를 경제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겉만 보고 속을 못 본 데서 오는 소치다. 박정희는 눈앞의 경제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해서 수많은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방치했고, 그런 부작용이 장기적으로 누적되어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내서 물가를 폭등시켰고, 전국을 난개발의 아수라장으로 몰아감으로써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현재 한국의 땅값을 세계 최고로 만든 장본인이 박정희다. 한국경제가 지금도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인 높은 물가와 높은 지가는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뿌리째 훼손하는 경제의 주범이므로 그 기초공사를 한 박정희에 대해서는 준엄하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된다.

요컨대 박정희는 당장 국민들 인기 얻을 만한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해서 우선 눈앞의 성장률은 높이긴 했으나, 그런 인기영합주의가 가져온 폐해는 컸고 오래갔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결국 그런 무리한 경제운용이 물가와 지가의 폭등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의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근본적으로 훼손하였고 앞으로도 오래 동안 훼손할 것이므로 그 해악은 참으로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만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경제대통령을 뽑는다면 박정희는 맨 끝에 가서 서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 경기 나빴던 것은 벤처·카드·부동산 거품 무너졌기 때문

참여정부 시절 경기가 나빴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참여정부가 별로 인기가 없었고 지금도 그런 평가가 상당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가리켜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지만 이는 참으로 악의적이고 진실과 거리가 먼 평가다.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당시 경기가 나빴던 것은 사실이나 그 이유는 참여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고, 참여정부가 등장하기 전에 경제관료들이 일으켰던 3대 거품(벤처 거품, 카드 거품, 부동산 거품)이 붕괴한 시기가 바로 참여정부 시기였기 때문이다. 3개의 거대한 거품이 동시에 꺼진 시기가 바로 참여정부 5년이었다.

그래도 불경기에 대한 모든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 변명 한 마디 없이 장기적 경제잠재력 제고에 노력했던 것이 참여정부였다. 참여정부를 평가할 때 이 점을 생각하지 않고는 정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평가는 이 점을 도외시하고 단지 나타난 결과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공정한 평가라고 볼 수 없다.

이정우 기자 shyeol@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