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테러발생 직후 2분과 세월호 침몰 후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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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테러발생 직후 2분과 세월호 침몰 후 7시간
  • 최인숙 기자
  • 승인 2015.01.3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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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기'에 대처하는 프랑스 올랑드와 박근혜 대통령의 차이는...?

프랑스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 정치학 박사이자 미래연 회원인 최인숙 박사가 프랑스의 대통령·정치인과 정치 그리고 미디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교·분석하는 칼럼을 미래연 홈페이지에 기고하고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프랑스의 여러 사례들은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정치를 향한 따끔한 질책과 좋은 교훈을 줄 것이다. 이번 칼럼은 최근 테러사건을 겪은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과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통해 국가위기를 풀어가는 두 정상의 태도를 비교볼 수 있는 내용이다. /편집자

▲ 테러 발생 당일 오후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이 비상 국무회의를 열어 "급선무는 테러리스트를 신속하게 체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왼쪽). 올랑드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수상과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등에게 사태의 추이를 보고받으며 "테러리스트들을 두 곳으로 기습해 진압하라"는 방안을 말하고 있다(오른쪽). (프랑스TV 화면 캡쳐)
ⓒ 데일리중앙
2015년 새해 벽두부터 프랑스는 테러의 공포에 휩싸였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1177호가 발간된 지난 7일 이슬람 극단주의자 두 명이 이 잡지사에 총기를 난사하는 테러를 자행했다. 테러범의 총격으로 <샤를리 에브도>의 만화가와 편집자들, 그리고 정신분석가, 경제학자, 경찰 등 11명이 사망했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어 총 22명이 희생되었다. 이 테러는 프랑스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건이 일어난 오전 11시 30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엘리제궁 집무실에서 여비서로부터 국가가 비상사태에 처했음을 보고받았다. 2분 후 올랑드 대통령은 <샤를리 에브도>에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바로 그 곳으로 가겠다"라고 전하며 신속한 행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발스(Manuel Valls) 수상에게 전화를 걸어 두 가지 일을 요청했다. 하나는 테러리즘에 대한 대책 수단을 총동원해 줄 것, 다른 하나는 사건 발생 2시간 반이 경과한 오후 2시 국가 비상사태 국무회의를 소집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대통령은 경찰관·소방관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이 테러의 상징적 파급력을 감지해 냈다.

테러 보고받고 2분 후 현장에 전화... 대책방안 총동원하고 국무회의 소집

올랑드 대통령은 곧바로 텔레비전에 출연해 국민들에게 "내일(8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정한다"고 공포했다. 이어 시시각각 내각의 장관-비서관들과 함께 사태진압을 위한 릴레이 회의를 진행했다. 대통령은 발스 수상과 까즈뇌브(Bernard Cazeneuve) 내무부장관, 토비라(Christiane Taubira) 법무부장관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에서 실시간으로 사태의 추이를 보고받으며 테러진압 전략을 짰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범들을 조속히 소탕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하고 테러범들을 엄습하기로 결정했다. 대통령의 전략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두 명의 테러범들은 사살되었고 전 프랑스인들을 충격에 빠뜨린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은 막을 내렸다.

이게 끝이 아니다. 테러가 진압된 뒤에도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의 지도자들을 파리로 초대하여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역사적인 '대행진'(grande marche)을 국가차원에서 조직했다. 2015년 1월 11일 일요일 파리 시내는 전 세계로부터 초대된 각국 지도자들과 시민이 손에 손을 잡고 행진하는 물결로 출렁였고, 프랑스 전역에서도 시위행진이 줄을 이었다. 테러에 대항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온 300만 인파의 연대 행렬은 프랑스를 세계사 속에 또 한 번 기록으로 남게 했다.

올랑드 대통령 리더십에 프랑스 국민 환호... 지지율 10일만에 21%p 급반등

국가위기에 직면해 올랑드 대통령이 보여 준 리더십은 프랑스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는 대통령 지지율 급등으로 나타났다. 올랑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취임 당시인 지난 2012년 5월과 6월 53%였다가 2013년 11월 21%로 하락했고, 2014년 12월에는 10%대인 18%까지 떨어져 프랑스 제 5공화국 역대 대통령 중 최하위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샤를리 에브도> 테러진압 직후인 2015년 1월 16일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38%로 급반전하면서 무려 21%포인트나 올랐다.

올랑드 대통령이 불과 10여일 만에 지지율의 대전환을 이룬 비결은 리더로서의 위기대처 능력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의연한 모습으로 신속하고도 적절한 조처를 취했고 공포에 떨던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국민들은 올랑드를 '좌파만의 대통령'이 아닌 전 국민의 대통령, "우리들(nous)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프랑스2> 텔레비전의 인터뷰에 응한 한 프랑스인은 "대통령의 진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신속 대처는커녕 7시간 '행방묘연'... 정부, 구조활동도 안해

▲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 전후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에 대책본부에 나타나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왼쪽).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관련해 일본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은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에..누구와 만나고 있었나"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오른쪽).
ⓒ 데일리중앙
지난해 한국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국가 위기상황이 벌어졌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고 3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아직 다 피지도 못한 꽃 같은 10대 고교생들이었다. 300여 명의 아이들이 갇혀있는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있던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 국가적 난국에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언론은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정부는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가 배안에 갇힌 탑승자를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이런 정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에 바빴던 기자와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사상최악의 오보를 남겼다. 이로 인하여 세월호 사건은 전대미문의 참사로 변했다.

더욱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이다. 참사를 넘어 국가위기로 치닫던 7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우리 국민들은 전혀 모른다.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대통령의 최측근 비서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아직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시중에 낯 뜨거운 루머만 맴돌 뿐이다.

*참고로 '잃어버린 7시간'은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대통령 행적을 일컫는다.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던 300여 명의 국민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던 이른바 '골든타임'이다. (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그날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전 10시 서면으로만 사고 보고를 받은 뒤 7시간이 지나도록 단 한차례도 회의도 열지 않고 계속 서면?유선보고만 받고 있었다고 한다. ‘행방불명’된 7시간이 지난 뒤에야 대책본부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학생들을)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는 황당한 질문을 공무원들에게 던졌다.

하루가 지나서야 현장을 찾아온 박 대통령은 절망에 빠진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이 약속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세월호는 가족과 전 국민이 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바닷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어갔고, 이후 군?해경을 포함한 정부는 바닷속 배안에 갇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구조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도 충격이었지만, 아무런 구조작업도 벌이지 않으면서 마치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거짓 쇼를 벌인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에 국민들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아야 했다.

국가-국민 위기 빠졌을 때 대통령 리더십이 다른 결과 가져와

▲ 칼럼리스트 최인숙 박사
ⓒ 데일리중앙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보고를 받은 뒤 단 2분 만에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을 둘러본 뒤 2시간여 만에 내각을 불러 회의를 열고 테러진압 작전을 짰다. 테러가 진압되자 해외 지도자들까지 불러 자국 국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거리로 나선 프랑스 국민들의 손을 잡아주며 국민 통합을 이뤄냈다.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는 충격과 허탈 그리고 분열로 치닫고 있다. 테러의 피해로 충격과 위기에 빠졌던 나라를 오히려 국민 대통합의 기회로 전환했던 프랑스 사회와는 정반대의 풍경이다.

프랑스와 한국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사회통합을 가져오기도 하고 거꾸로 사회분열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생생한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물론 한국은 후자의 경우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국민이 스스로 돌아보고 물어봐야 할 골든타임이다. 

최인숙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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