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칼럼] 검찰의 변호사 공격, 변협이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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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칼럼] 검찰의 변호사 공격, 변협이 막아야
  • 김인회 기자
  • 승인 2015.02.03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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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기소는 부당... 국가 관점 아닌 시민 관점에서 징계 시도 철회해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회 교수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웹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는 '단비칼럼 50'의 전문을 미래연의 동의를 얻어 데일리중앙에 싣는다. '단비칼럼'은 '단숨에 읽는 비평 칼럼'의 줄임말이다. 필자인 김인회 교수는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미래연 부원장을 맡고 있다. - 편집자 주

▲ 검찰에 의해 부당하게 기소된 변호사들에 대한 대한변협의 징계가 시작돼 논란을 낳고 있다. 검찰은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대한변협에 징계개시를 신청했고, 변협은 검찰이 신청한 8명 중 6명에 대해 징계위원회에 징계개시를 청구했다.
ⓒ 데일리중앙
검찰에 의해 부당하게 기소된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가 시작되었다. 대한변협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잘못된 결정이다.

대한변협은 지난 1월 27일 검찰이 징계개시 신청을 한 변호사 8명 중 6명에 대해 징계위원회에 징계개시를 청구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쌍용자동차 사태 관련 집회 현장에서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집시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이다. 변호사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검찰은 대한변협에 징계개시를 신청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들 변호사들은 애초에 검찰에 의하여 부당하게 기소된 변호사들이다. 대한변협 스스로 인정한 바와 같이 문제가 된 집회 당시 경찰관들이 행한 공무집행이 적법한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검찰의 변호사 기소는 부당... 대한변협은 부당한 기소 알면서 징계개시 청구

경찰의 질서유지선과 경찰력 배치 때문에 합법적인 집회를 개최할 수 없었다는 점, 따라서 경찰의 집회 방해 행위는 정당한 공무집행행위가 아니었다는 점, 변호사들이 위법한 공무집행행위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상해가 발생했다는 점 등의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가 있을 때 시민들의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은 많이 있다.

대한변협은 검찰의 기소와 징계신청이 부당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단 징계개시를 청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들 변호사에 대한 유무죄 판결이 나오면 징계 여부 및 그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어정쩡한 결정이다.

징계개시 및 징계결정은 대한변협의 고유권한이다. 수사기관인 검찰이나 재판기관인 법원과 다른 대한변협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국가기관인 검찰이나 법원은 아무리 공정한 외피를 쓰고 있더라도 국가중심의 판단을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검찰은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국가정책을 반영하고 관철한다. 요즈음의 검찰이 공안부 중심의 검찰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검찰의 결정을 항상 비판적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대한변협은 시민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 국가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속 변호사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확대시켰다면 검찰과 법원이 어떤 결정을 하든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만일 소속 변호사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했다면 검찰에 앞서서 엄격하게 징계해야 한다.

이번 결정에서 대한변협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다. 자신의 결정을 검찰과 법원의 결정으로 대체해 버렸다. 사실은 시민의 관점을 포기한 것이다. 아직도 대한변협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 인권과 안전을 지켜주는 조직이 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진술거부권 권고한 변호사들에게 징계신청 기각한 것은 다행

그나마 다행스러운 결정도 있다. 대한변협이 검찰이 진술거부권을 권고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신청한 2명의 변호사에 대하여 징계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원래 진술거부권은 아무리 많이 행사해도 남용되지 않는 것이다. 진술거부권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이다. 즉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진술을 하지 않는 것은 남용될 수 없다. 가만히 아무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래야 침해할 수 없다.

따라서 진술거부권의 행사를 아무리 권고해도 그 권고는 남용이 될 수 없다. 남용할 수 없는 권리의 행사를 권고한 것이 남용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진술거부권을 행사를 강요한 것도 될 수 없다. 진술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진술을 하지 않도록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법칙이다. 조금이라도 상식적이라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그리고 진술거부권은 최후의 방어권이다. 경찰과 검찰, 법원이 자신의 죄를 추궁할 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침묵이다. 사람은 자신의 처지가 해명되지 않을 때 침묵으로 대응한다. 침묵은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진술거부권은 최후의 방어권이므로 역시 남용될 수 없다. 권리는 차고 넘칠 때 남용할 수 있는 것이지 마지막 남은 권리는 남용될 수 없다. 이것 역시 논리적인 결론이다.

그런데 검찰은 변호사가 수사를 받는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 행사를 권고했다고 징계를 신청했다. 아마 자신들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위법한 공무집행에 저항했다고 하여 공무집행방해로 기소한 것이 부당한 만큼 이 징계신청 역시 부당하다. 검찰이 수사와 재판을 받는 시민의 관점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검찰 스스로도 무리한 징계신청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검찰의 징계신청이 간첩사건에서 주로 변호를 맡은 민변 변호사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변협이 진술거부권 행사에 대한 검찰의 징계신청을 기각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너무 당연한 결정이기 때문에 그렇게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대한변협은 오히려 공무집행방해로 부당하게 기소된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신청을 검찰과 법원의 관점이 아닌 시민의 관점으로 기각했어야 했다.

검찰의 ‘변호권 남용론’ 뿌리는 시대착오적인 국가 중심 사고방식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에 의해 부당하게 기소된 변호사들에 대한 대한 징계는 잘못된 것이라며 대한변협이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데일리중앙
일반 시민이나 변호인의 방어권이 남용될 수 있다는 생각은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뿌리는 깊다. 철학적으로는 국가 중심의 사고방식이 그 뿌리이다. 역사적으로는 국가가 아무런 견제 없이 시민이 아닌 백성을 통치하던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국가가 개인의 주체성과 권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국가 중심의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국가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라 신하이자 백성이다. 백성들은 국가의 업무에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국가가 범죄를 처벌하려고 하는 경우 이에 대해 협조해야 하는 것이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말은 이런 의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국가가 마음대로 범죄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범죄자를 만들기 위해서 고문하고 조작할 수도 있다. 근대 시민혁명 이전의 국가가 이러했다. 근대 시민혁명 이후에도 독일의 나치시대,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의 경우에는 일제 식민시대, 군부독재시절 이러한 현실을 겪었다. 고문과 불법구금으로 인권은 땅에 떨어졌고 인간의 존엄성은 부정되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시민에게 침묵할 수 있는 권리인 진술거부권과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시민으로 구성된 국회가 국가로부터 시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침묵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고문과 가혹행위, 불법구금을 추방하려고 했다. 그리고 위법한 국가공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국가공권력을 견제함으로써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수사와 재판에 피고인이 협조할 필요가 없다는 철학을 전제로 한다. 범죄를 밝혀내고 이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하지만 여기에 피고인은 협조할 필요가 없다. 물론 적극적으로 범인을 은닉하거나 증거를 인멸하고, 위증을 하는 등의 범죄행위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범죄행위 이외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피고인의 방어권에는 제한이 없다.

변호인 역시 경찰, 검찰, 법원에 협조할 의무는 없다. 피고인을 돕는 존재인 변호인이 국가기관에 협조하면 피고인을 돕는 것이 아니다. 피고인을 더욱 열악한 지위로 빠뜨리게 된다. 변호인은 자신의 모든 지식과 열의를 동원하여 피고인을 도와야 한다. 국가공권력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 물론 한계는 있다. 변호인 역시 적극적인 범인은닉, 증거인멸, 위증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변호인이 피고인을 돕지 않고 국가에 협조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 남아 있다. 변호인 중에서도 아직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일부 있다. 이것은 과거 변호사들이 모두 법관이나 검사 출신이었던 때 형성된 고정관념 때문이다. 변호사들이 모두 법관과 검사 출신이었으니 당연히 법원, 검찰과 사이좋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사법시험이라는 같은 시험, 사법연수원이라는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기 보다는 서로 협조하는 것이 체질화되었다. 변호사들도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된 것이다. 대한변협이 그동안 시민의 편에 서서 국가공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했던 근본 이유이다. 대한변협이 지금도 시민의 자유와 권리, 인권과 안전을 위하여, 시민의 법치주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하여 싸우지 않는 근본 이유이다.

대한변협 가능성과 한계 함께 노출... '시민 관점'으로 거듭나길

이번 변호사 징계신청에서 대한변협은 가능성과 함께 한계를 보였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 인권과 안전을 위한 대한변협으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과 한계이다.

가능성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힘든 검찰의 징계신청을 일부 거부했다는 점이다. 한계는 독자적인 판단기준을 포기하고 검찰의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신청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가능성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한계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변협과 같은 전문가 조직은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일반인의 이익집단이 아니라 법치주의라는 공적인 역할을 하는 전문가 조직은 비판에 더욱 민감해야 한다.

마침 대한변협은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했다. 새로운 집행부는 국가의 관점이 아닌 시민의 관점에서 우리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공안부 중심의 검찰행정, 눈치보기식의 법원 판결, 시민과 변호사에 대한 공격,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한변협이 자신의 위상에 맞는 행보를 할 것을 기대한다.

부당하게 기소된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는 아직 진행형이다. 부디 시민의 관점에서, 그리고 대한변협의 독자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 이 기대가 현실화될 때까지 시민들의 비판은 계속될 것이다.

김인회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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