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에 일렬로 세워 기관총으로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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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일렬로 세워 기관총으로 위협했다"
  • 석희열 기자
  • 승인 2007.09.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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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자 카불에서 기자회견... 납치당시 상황 생생히 증언

▲ 아프간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43일 만에 모두 풀려난 한국인 피랍자 19명은 2일 새벽 비행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 데일리중앙
"7월 19일 북부 마자리 샤리프에서 버스로 칸다하르로 갔다. 가즈니주를 지나면서 운전사가 아는 사람인 현지인 2명을 태웠다. 그 뒤 20~30분 만에 총소리가 났다. 탈레반은 버스를 강제로 세워 우리를 내리게 한 뒤 어디론가 끌고 갔다."
 

아프간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43일 만에 풀려난 유경식(55), 서명화(29)씨는 31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끔찍했던 피랍생활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피랍자 19명을 대표해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온 두 사람은 먼저 "(피랍사태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온 국민이 42~43일 간이나 염려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피랍 당시 상황에 대해 "19일 아침 카불에 도착해 한국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난 뒤 버스 운전사가 자기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새 운전사를 소개시켜 줬고 이날 밤 칸다하르로 갔다"며 "그런데 가즈니주를 지나면서 운전사가 현지인 2명을 태웠다. '왜 태우느냐'고 했더니 '가면서 내려주면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유경식씨는 "2명을 태운 뒤 20~30분 가다가 총소리가 났다. 차 앞에서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총을 겨누면서 정지 수신호를 했는데 운전사가 무시하니까 발포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차가 멈춰서자 차 바퀴에 총을 쏘며 무장한 두 사람이 올라 타 운전사를 구타하며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을 모두 내리게 했다. 이때 배형규 목사는 실신했다. 탈레반 무장세력이 미리 계획한 외국인 납치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무장세력은 한국인들을 오토바이와 승합차 등에 나눠 태워 비포장도로를 달려 어느 한 마을로 끌고 갔다. 거기에는 RPG로켓포와 기관총이 거치돼 있었고 AK 소총을 든 10여 명이 피랍자들을 회당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무장세력은 피랍자들의 몸을 수색하며 배낭과 휴대전화, 카메라, 노트북 등 소지품을 압수했다.

이때 현지어인 다리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 "왜 그러냐"고 묻자 탈레반은 "(자신들은) 정부의 사복 경찰인데 너희들을 알 카에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런다"며 피랍자들을 안심시켰다.

''7월 21일 트럭으로 이동, 30명 탐, 11~12명 분리이동, 창고로 이동->헛간서 잠. 예배시작. 7월 26일 감자 2개 식사, 오토바이+걸어서 중간에 2번 세우고. 7월 31일 혜진, 연화 머리 감음. 8월 1일 벼룩으로 잠 설침. 배고프고 벼룩에 시달리고. 8월 29일 아침 8:30~9:10 예배(경석기도)."
"3~4명씩 5팀으로 나눠져 각각 달리 움직였고 주로 민가를 돌아다니면서 12곳을 옮겨 다녔다. (탈레반은 우리들을) 야간에 달이 없을 때 오토바이에 태워서 헤드라이트를 끄고 불빛 신호를 주면서 갔다. 걸어서 이동한 적도 몇번 있다."

탈레반은 피랍자들을 닷새째 되는 날부터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이 과정에서 탈레반이 남자들은 모두 죽일 것이라는 말에 피랍자들은 극도의 불안(패닉)과 긴장감 속에서 억류생활을 견뎠다.

유씨는 "초창기에는 한꺼번에 이동한 적이 있었는데 경운기 짐칸에 한번에 짐짝처럼 태우고 비포장도로로 달빛 없는 곳으로 데려 갔다"며 "나흘 밤을 자고 4박5일 만에 분산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탈레반이) 전체를 집합시켜 일렬로 세운 뒤 담벼락 앞에 기관총 소총으로 위협했고 한 사람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다"며 "이 사람들이 남자는 죽인다는 걸 듣고 매우 애를 많이 먹었다. 거의 패닉 상태였다"고 악몽같은 당시 상황을 털어 놓았다.

탈레반은 또 한국인 피랍자들을 자신들의 비상구로 사용하는 토굴 속에 밀어넣어 감금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서명화씨는 "마당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토굴이 있었는데 4미터 끝엔 T자로 25미터 크기였고 절반은 비상구였다"며 "(탈레반은) 수틀리면 몸집 작은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이 토굴에 감금할 수 있다는 식으로 손짓 발짓으로 위협했다"고 말했다.

특히 서씨는 43일간의 억류생활을 자신의 흰 바지 안쪽에 깨알같이 빼곡히 기록한 일지도 공개했다. 서씨는 이 일지에 43일간의 이동 경로와 주요 사건, 자산의 심경 등을 적었다.

''7월 21일 트럭으로 이동, 30명 탐, 11~12명 분리이동, 창고로 이동->헛간서 잠. 예배시작. 7월 26일 감자 2개 식사, 오토바이+걸어서 중간에 2번 세우고. 7월 31일 혜진, 연화 머리 감음. 8월 1일 벼룩으로 잠 설침. 배고프고 벼룩에 시달리고. 8월 29일 아침 8:30~9:10 예배(경석기도)."

그는 "(처음에는) 필기도구가 있어서 각자 일기를 썼는데 중간에 그런 것들이 다 압수당해 바지에 적게 됐다"고 말했다.

탈레반 무장세력으로부터 풀려난 피랍자 19명은 1일 카불을 출발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대한항공 편으로 2일 오전 6시30분께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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