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목사 살해, 무작위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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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목사 살해, 무작위로 데려갔다"
  • 김원태 기자
  • 승인 2007.09.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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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피랍 유경식·서명화씨 기자회견 일문일답

- 석방 당일 상황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42~43일 만에 풀려난 유경식(55), 서명화(29)씨는 31일 카불에서 한국기자와 만나 배형규 목사 살해와 관련 "무작위로 데리고 나간 것이다. 본보기로 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피랍생활 동안 3~4명씩 5팀으로 나눠 따로따로 흩어져 있었으며 주로 민가 등 12곳을 돌아다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피랍자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다른 피랍자들의 소식은 전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경식씨는 "다른 피랍자 소식은 석방 때까지 아무 것도 몰랐다. 하지만 배 목사는 살해됐을 것으로 추측했다"며 "(나중에) 21명 가운데 여자 2명이 석방됐고 23명 가운데 2명은 살해된 것으로 뉴스를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기자들과 유경식·서명화씨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금 심경을 말해 달라.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석방 전에는 몰랐는데 너무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리고 정부 관계자들이 애를 많이 쓰시고 미군이나 정부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타격을 많이 입었다. 그것을 알고 기뻐할 수도 없었다. (유경식)

잡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몸이 쑤시고 잠이 안오고 기력이 없다. 설사 증세도 있지만 잡힐 때보다는 덜하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너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고 비단 저희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42~43일간이나 염려해 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 (서명화)"

- 납치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19일 북부 마자리 샤리프에서 칸다하르로 갔다. 밤엔 위험하지만 낮에 안전하다고 해 안전할 때 가려고 밤늦게 출발했다. 카불에서 아침에 도착해서 한국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먹고 버스 운전사가 수술을 받는다고 했다. (서)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운전사 믿을 만하니까 바꿔 타라고 해서 칸다하르로 갔다. 가즈니주를 지나면서 운전사가 아는 사람인 현지인 2명을 태웠다. 모르는 사람 왜 태우느냐고 했더니 가면서 내려주면 된다고 했고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두 사람 태운 뒤 20~30분 가다가 총소리가 2발 났다. 나는 뒤에 앉아서 잘 모르겠는데 앞에서 앉은 사람이 그러는데 버스 앞에서 누가 총을 겨누면서 정지 수신호를 했는데 운전사가 무시하니까 발포했다고 한다.

그러자 운전사가 정지를 했고 정지를 하니 탈레반이 차를 옆으로 빼라면서 차 바퀴에 한발을 쐈다. 차 안으로 무장한 2명이 올라와 운전사를 구타한 거 같고 전부 내리라고 했다.

배 목사님이 실신했다. 납치자들이 저하고 제창희 씨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10분 정도 질주했다. 마을 사이로 비포장도로를 가서 어떤 마을에 나무 밑에 높은 곳에 뚱뚱한 보스가 앉아 있고 옆엔 RPG 로켓포, 기관총을 거치해놓고 데리고 올라가서 홍차를 마시라고 했다.

어디서 왔는지 뭐하는 사람인지. 의사냐고 물었다. 의사는 아니다라고 대답했고 무슬림이냐고 물어 아니라고 답했다. 그 사람은 서툰 영어로 말했다. (유)"

- 선교나 종교 이야기도 했나.
"없었고 목적 이런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 뒤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승합차로 두 차례에 나눠 회당 안에 들어가라고 했다. AK 소총으로 무장한 사람들 10여 명이 RPG로 사람들을 집어넣었다. 갖고 있던 핸드캐리용 짐 배낭도 가운데로 몰아넣고.수색하면서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회수했다.

다리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정부의 사복 경찰인데 너희들을 알 카에다로부터 보호하려고 임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 억류 상황은 어땠나.
"3~4명씩 5팀으로 분산했다. 각각 달리 움직였다. 민가를 주로 돌아다니면서 12번을 옮겼다. 주로 야간에 달이 없을 때 오토바이에 태워서 헤드라이트를 끄고 불빛 신호를 주면서 갔다. 도보로 이동한 적도 몇번 있다.

초창기에는 한꺼번에 이동한 적이 있었는데 경운기 짐칸에 한번에 짐짝처럼 태우고 비포장도로로 달빛 없는 곳으로 데려 갔다. 6일쯤 지난 뒤 분산됐다. 나흘 밤을 자고 4박5일 만에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어젯 밤까지 소식을 몰랐다. 오리무중이었다. 이 사람들이 남자는 죽인다는 걸 듣고 매우 애를 많이 먹었다. 나머지 7명은 다시 3~4명으로 나눠서 그저께까지 따로 있었다 .(유)"

- 다른 피랍자들 소식은 몰랐나.
"석방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배 목사는 살해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12명이 돌아다니는 중간에 우리를 감금하는 집 주인이 탈레반인데 낮엔 잠궈 놓고 농사일을 하고 밤엔 소총 감시를 한다. 그 사람이 한국인 여자 2명이 아파서 돌아간다며 라디오 뉴스를 보란 듯이 크게 틀었다. 선심 쓰듯 2명을 내주는 것처럼 과시하는 것 같았다.

21명 가운데 여자 2명이 석방됐고, 23명 가운데 2명은 살해된 것으로 뉴스를 통해 들었다. 가슴철렁했지만 내색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속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를 숨기고 탈레반에게 23명 다 안전하냐고 물어봤다. 자기들끼리 얘기하는데 다 살아있는 척 하라는 것처럼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희생자가 누군지는 몰랐다. (유)"

- 육성통화는 어떻게 된 것인가.
"다른 팀에서 그 사람들이 안면이 있는 곳에 노출한 것 같다. '너희가 아프다고 해야 구출해 준다'고 탈레반이 말을 시키고 안하면 안 되게끔 시키는 것 같았다. (유)"

- 음식 등은 어땠나.
"갑상선 수술로 하루에 호르몬제 2알을 먹어야 하는데. 납치되고 나서 하루 2알을 1알로 줄였지만 1주일이 지나서 떨어졌다. 손짓 발짓으로 부탁을 했다. 하루 2알씩 먹어야 된다고 구해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면서도 없어서 안 된다고 하더라. 아프간에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국하고 협상하니까 얘기를 해 달라고 몇번 부탁했다. 그들은 '우리는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무전기로 주고받는다'며 '여기는 아프간이지 한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

- 단식했나.
"초반엔 민가에서 보호되면서 그 사람들도 못먹고 못살고 해서 적응이 안됐다. 비스킷 먹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 달라고 손짓 발짓했다. 감자 2개를 절반으로 쪼개서 4명이서 나눠 먹었다. 기운이 없어서 하루종일 잠자고 다시 자고 그랬다. 갈수록 적응을 해서 돌이 씹히면서도 감자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우리팀에는 단식한 사람은 없었고 단식이 아니라 초반에 잡혔을 때 빨리 구출해 달라고 금식 기도를 했었다. 사흘을 안 먹으니 그들이 보기엔 단식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유)"

- 탈레반이 위협을 가했나.
"토굴 같은 데가 있었는데 절반은 비상구였다. (서)

마당에 한 사람 겨우 들어갈 토굴이 있었는데 4m 깊이로 구멍이 파였고 끝엔 T자로 25m 크기였다. 몸집 작은 사람이 겨우 갈 정도였다. 첨엔 걸려서 못 들어갔는데 어떻게 해서 들어갈 수 있게 했다. 처음엔 수틀리면 거기 감금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손짓 발짓으로 위협했다. (유)"

- 살해 협박 있었나.
"맨처음 전체를 집합시켜 담벼락 앞에 일렬로 세우고 기관총, 소총으로 위협했다. 서너명이 무기로 위협하고 한 사람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다. 거의 패닉상태였다. 자기들이 알카에다라면서 그제서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서 돌변했다. '너희들 잘못하면 이렇게 (총쏘는 시늉을 하면서) 한다'고 위협했다. 감금한 곳이 반지하에 짐승 우리같은 창문도 없고 환기통 하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자라고 하고 자기들은 밖에서 잔다고 하더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무도 없었다. 출입문이 반쯤 열리길래 나가 보니 가축을 키우는 농가인데 할머니 1명이 앉아 있었다. 구조요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갔는데 갑자기 남자가 낫을 들고 쫓아오면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지르길래 황급히 들어갔다. (유)"

- 이지영씨 석방 양보설이 사실인가.
"저도 이제 관심이 있어서 석방 뒤 물어보았는데 다들 지금은 패닉상태다. 들어 보니 이지영씨가 굉장히 아팠다고 하더라. 설사하고 며칠 동안. 두 사람을 석방한다고 했는데 거기엔 김지나, 김경자, 이지영 씨 등 여자만 3명이 있었다.

남은 한 사람이 힘들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기가 막혀서 울고 이러니까 이지영씨가 자기는 회복이 됐다고 하면서 '나 대신 너가 가라'고 그 사람에게 얘기해서 김경자씨가 갔다. 이지영씨는 부모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길래 설마해서 간단히 썼다. 100% 석방을 믿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서)"

- 왜 배 목사가 살해됐나.
"무작위로 데리고 나간 것이다. 본보기로 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12명(6명씩 둘로 나뉨) 가운데 1조 6명 가운데 배 목사가, 2조(나중에 4명, 2명씩으로 나뉨) 가운데 4명 그룹에서 심성민 씨가 나갔다.

고세훈, 심성민씨 가운데 고씨를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너' 하고 여자 3명은 무조건 끌고 나가라고 그러더라. 두건을 씌워서 그 뒤론 모른다. (유+서)" 

- 석방 당일 상황은.
"탈레반이 2명 와서 '4일밤을 자면 석방된다'고 했다. 그때 탈레반이 휴대전화로 걸어서 정부와 5일 전쯤 통화했다. '건강 이상없느냐, 누구 있느냐'고 물어 '언제 나갈수 있느냐'고 했더니 '며칠만 참으라'고 했다.

29일 다른 사람들도 자고 있는데 탈레반이 와서 석방이라며 '2명 먼저 간다'고 하더라. 4명이 같이 나가게 해달라고 해서 탈레반에게 바꿔 달라고 했는데 그중 보스처럼 생긴 사람이 '너희 정부에서 다 보내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오후 4시쯤 서명화, 차혜진씨 2명을 탈레반이 오토바이로 접선장소에 떨어뜨려 놓고 (탈레반이) 망원경으로 살펴볼 때 둘러보니 적십자 차와 깃발이 눈에 띄었다. (유)"

김원태 기자 kwt610@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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