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직자 비리에 더 엄격해진 프랑스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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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직자 비리에 더 엄격해진 프랑스를 보라
  • 최인숙 기자
  • 승인 2015.02.26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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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인사 검증 더 강화... 한국은 '양파 후보' 인사 무한 반복

프랑스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 정치학 박사이자 미래연 회원인 최인숙 박사가 프랑스의 대통령·정치인과 정치 그리고 미디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교·분석하는 칼럼을 미래연 홈페이지에 기고하고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프랑스의 여러 사례들은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정치를 향한 따끔한 질책과 좋은 교훈을 줄 것이다. 이번 칼럼은 2012년 이후 더 엄격해진 프랑스의 고위공직자 인사에 관한 이야기다. - 편집자 주
 

▲ 지난 2015년 1월7일 아침 HATVP의 나달 의장이 엘리제궁에서 올랑드 대통령에게 인사검증을 위한 20개 제안이 들어있는 보고서를 전달하고 있는 모습. (허핑턴포스트, 2015.1.7)
ⓒ 데일리중앙
한국에서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는 전국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 대사건이다. 언론은 대통령 또는 정부의 잘못된 고위공직후보 지명을 큰 재해나 전쟁을 일컬을 때 쓰는 ‘참사’(慘事:비참하고 끔찍한 일)라고까지 부른다.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문창극 총리 후보 지명에서 후보자의 자진사퇴에 이르기까지 무려 열흘간 이 ‘참사’는 신문의 1면에 올랐다. 한 일간신문은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로 인해 대한민국이 ‘패닉(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고 적었다(<경향신문> 6월21일자). 당시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 역시 논문표절 등으로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올해 2월 초 이완구 총리 후보도 여지없는 판박이였다. 이완구 총리 지명자의 온갖 비리와 몰상식한 언론관은 거의 모든 일간지의 1면을 장장 1주일간이나 도배하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러나 국회의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위력으로 그는 총리의 월계관을 가까스로 썼다. 더 한심한 것은 우리나라의 총리-장관 임명과 관련된 이런 인사 ‘참사’는 속수무책으로 무한 반복을 거듭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고위 공직자나 후보들의 불법?비리를 어떻게 검증하고, 의혹과 문제가 드러날 경우 어떻게 대처할까?

올랑드 대통령, 두 번의 인사스캔들 뒤 장차관 해임하고 인사검증 기구 신설

프랑스에서는 전통적으로 장관 임명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은 아니다. 대통령은 수상이 제안한 장관들을 지명하고, 이 장관 후보들은 수상이 부서(副署)한 대통령령에 의해 임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 전통적인 인사 관례가 올랑드 정부에서 일어난 두 번의 인사파동으로 대변혁을 맞게 됐다.

첫 번째 파동은 올랑드 대통령이 엘리제궁 관저에 입성한지 6개월 남짓 된 지난 2012년 12월 일어난 ‘까위작 사건’ (Cahuzac Affaire)이다. 까위작(Je?rome Cahuzac) 예산담당 장관이 스위스와 싱가포르에 비밀계좌를 갖고 돈세탁을 해왔다는 정보를 인터넷신문 <메디아빠르트>가 폭로한 것이다. 까위작 장관은 고소를 당했고, 결국 올랑드 대통령은 그를 해임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올랑드 정부는 2013년 10월 '공적활동의 투명성에 관한 고등기관'(HATVP: Haute Autorite pour la Transparence de la Vie Publique)을 신설했다. HATVP는 독립된 행정기관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1인과 최고행정재판소?파기원(최고사법재판소)?회계감사원의 위원 중 각각 2인, 그리고 하원의장과 상원의장이 임명하는 각각 1인 등 총 9인이 총괄한다.

HATVP는 장관과 고위 공무원의 임명에 있어 '프랑스식 베팅'(Vetting a la francaise)이라는 특별심사를 실시한다. 즉 인사검증 절차에서 관계자들의 프로필을 철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장관들을 임명한 후 그들의 과오가 사후에 드러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인사 절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독립적 인사검증 기구 기능 보완하고 제재수위도 높여

두 번째 파동은 2014년 9월 초에 일어난 떼브누(Thomas Thevenoud) 스캔들이다. 해외무역 관광개발 차관 떼브누의 탈세 의혹이 언론을 통해 불거져 나와 올랑드 정부를 또 한 번 태풍으로 몰고 갔다. HATVP는 이 의혹을 재빠르고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떼브누는 임명된 지 9일 만에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 발생 4개월 후인 2015년 1월7일 HATVP 의장 나달(Jean-Louis Nadal)은 새로운 떼브누사건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HATVP의 기능을 보완할 20개의 제안을 올랑드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그 주요 내용은 대략 이렇다. ‘첫째, 행정고위책임 후보자들의 세무상황과 자산상황을 철저히 체크한다. 둘째, 국가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재정상황을 확인하고 고위책임자와 일부 공무원 그리고 사법관과 행정관 후보자들의 직업윤리심사를 사전에 실시한다. 셋째, 공적 청렴성에 있어 기준 수위를 넘을 경우 아예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형벌을 적용한다. 넷째, 대선자금에 대한 투명성을 높인다.’

나달 의장은 HATVP가 창설된 지 아직 초기 단계여서 앞으로 많은 보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HATVP의 제재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주간지<파리마치>(Paris Match)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공직자 후보 비리 양파처럼 벗겨져도 똑같은 인사 '무한반복'

▲ 칼럼리스트 최인숙 박사
ⓒ 데일리중앙
프랑스가 2012년 이후 두 번의 고위공직자의 불법?비리 스캔들을 겪으며 법?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정비해 나가는 동안, 대한민국은 어떠했을까?

한국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것은 2000년 6월 김대중 정부 때였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고 정부도 여러 번 바뀌었다. 독립적인 중앙인사위원회 제도가 만들어져 노무현 정부 시절 고위 공직자 후보에 대한 도덕성?자질 검증이 이뤄진 적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됐다. 또 노무현 정부에서는 인사 청문 대상 공직자 범위를 늘리고, 고위 공직자 비리를 전담 조사할 부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신설을 추진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된 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박근혜 정부에서도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청문회의 과정과 내용을 보면 매번 판에 박힌 레퍼토리다. 후보들의 온갖 추악한 불법?비리 의혹이 국회와 언론에 의해 불거져 나오고, 후보자들은 고개 숙인 죄인이 되어 변명하느라 정신이 없다. 차마 낯 뜨거워 지켜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후보들의 불법?비리와 파렴치한 행태가 양파껍질처럼 계속 벗겨지는 것을 보면 도대체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후보들에 대한 사전 검증작업을 거치기는 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반복되는 ‘인사 참사’에 국민들은 허탈하다 못해 혀를 차고 외면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낙마한 후보가 몇 명이었던가? 아마추어 정치도 이럴 순 없을 것이다.

공직후보 도덕성 검증,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쏟아져 나오는 불법?비리와 과거의 몰상식한 발언들이 폭탄이 되자 정부?여당과 언론은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신상털기’, ‘흠집내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식으로 호도한다. ‘자질과 능력이 되면 과거 불법?비리 정도는 눈감아도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고위직에 오를 인물들의 도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온갖 불법과 비리, 거짓말, 친일이나 친독재의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자가 어찌 일국의 총리직과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은 어쩌면 능력보다 더 중요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최우선의 요소일 것이다. 논어에서 자공이 공자에게 ‘식량과 군대와 백성의 믿음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공자는 ‘첫째는 군대요, 둘째는 식량이지만, 백성의 믿음(신뢰)을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무신불립, 無信不立)’고 답했다.

정부-국민 간 신뢰와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 검증을 철저히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간 고위 공직자들의 불법행위가 불러온 정부-국민 간 불신은 돈으로 계산조차 불가능할 만큼 막대한 사회적 희생을 지불하게 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원칙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든 경제든 바로 설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IMF사태는 정부의 잘못된 기업-금융정책과 해외 투기자본에 기인했지만 그 이면에는 관치금융의 비리와 부도덕한 기업의 문란한 경영이 숨어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국을 요동치게 하는 인사 참사의 무한반복을 피하고 정부-국민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고위 공직자에 대한 사전 인사검증을 강화하고 국회 이외의 독립적인 검증-수사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프랑스가 한 두 번의 고위공직자 비리 스캔들로 인사검증을 대폭 강화하고 인사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고 있는 이유를 따져볼 때다.

최인숙 기자 webmaster@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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