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칼럼] 공직비리 엄단해야 경제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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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칼럼] 공직비리 엄단해야 경제가 산다
  • 이정우 기자
  • 승인 2015.04.0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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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민주주의와 시장원리로 부패에 맞선 참여정부... 고비처 설립 논의하자

경제성장·개방(FTA)·금융·부동산 등에 관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임기 중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보수진영과 일부 언론은 '경제실패' '경제파탄'이란 극단적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참여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정말 실패한 정책인가? 지난 정부 경제정책의 공과 과를 정확하고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한국 경제와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미래연 웹사이트에 연재되고 있는 참여정부의 경제철학을 되짚어보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의 칼럼 전문을 미래연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정책실장·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지냈다. - 편집자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5년 2월 3일 '2005년 부패방지평가 보고대회'에 참석해 "국민이 함께 참여하고 협력하는 부패청산을 한번 해보자"면서 "부패청산에 성공하면 선진경제도 가고 선진한국도 간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노무현 사료관)
ⓒ 데일리중앙
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10월 7일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그해 국가별 부패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를 보면 한국은 10점 만점 기준으로 4.3점을 차지해 조사대상 133개국 중 겨우 50위에 머물렀다. 조사대상국 수가 31개국이나 늘어 순위가 하락한 탓이 있기는 하나, OECD 가입국 30개국 가운데 24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투명도를 높이고 부패를 줄이기 위해 한국이 가야할 길은 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여정부는 사회 각 영역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각종 특권과 부패를 청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부패는 일반적으로 조세수입을 줄이는 한편, 공공지출을 늘리는 경향이 있어 재정적자를 키우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음성적인 소득을 더 많이 획득하게 되므로 소득불평등을 증가시킨다. (Tanzi, 1998). 정부가 필요한 규제를 하지 못하거나 불필요한 규제를 하기도 하고, 자의적인 조세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투자나 교육지출 등을 줄여 경제성장률을 낮추는 부작용도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확립을 지연시키는 등 갖가지 폐단이 심각하다.

이처럼 갖가지 해악을 낳는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패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연고주의 같은 한국 특유의 문화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고, 행정조직 내부의 통제체계나 금융실명제 같은 제도적 장치의 부실도 부패를 부추기는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의욕을 갖고 부패척결에 나설 조직주체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억압한 채 성장만을 최우선으로 추구하였던 과거 독재시절의 고도성장 과정 자체에서 특권과 부패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발전국가형' 성장이 한국형 부패의 뿌리... 견제와 균형으로 극복해야

1970-80년대를 거쳐 한국은 정부와 재벌, 금융의 밀접한 연계를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하는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체제를 통해 공업화를 추구했다. 부족한 자본을 국가가 동원하되, 이를 소수의 재벌에 집중 지원함으로써 고저축-고투자-고성장의 선순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기반으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할 수 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체제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동시에 특권적 소수에 의한 정치?경제?사회적 지배를 용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금융기관으로 집중된 막대한 자금이 시장기제를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배분됐다. 특혜와 유착, 독점적 이익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였다. 정부는 각종 규제를 통해 소수 재벌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그 결과 몇몇 대기업의 급속한 성장이 가능했던 반면 공정한 경쟁이나 기회의 균등, 그리고 책임성 강화 등은 실현될 수 없었다. 정경유착과 불법정치자금은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했던 비용이면서 동시에 일이 성사되도록 만드는 급행료 지불이기도 했다. 게다가 권력 집중과 취약한 민주주의 기반으로 인해 사회 각 분야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한 통제가 작동할 수 없었다.

한국의 고질적이고 총체적인 부패구조는 결국 개발시대 압축적인 고도성장 과정의 필연적 부산물이었다. 이제 더 이상 발전국가형 성장은 적절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 ‘필연적 부산물’인 부패 역시 극복해야 할 시점이다.

'입시지옥' '고시낭인'... 총체적 부패에 도전한 참여정부

▲ 이정우 경북대 교수.
ⓒ 데일리중앙
참여정부는 이런 인식 속에서 참여민주주의의 확대와 효율과 책임의 시장원리 구현을 통해 특권과 부패가 자리잡을 수 없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경제구조를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문민정부 이전까지 '부패추방'은 정권의 취약한 정통성을 만회하기 위한 사실상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 부패척결 작업이 부패사건 관련자 몇 사람을 처벌하는 1회성 사정작업에 그치거나 정부 말기에 가서 대형 권력형 비리로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사그라든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구조적, 체계적 관점에서 부패 문제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크게 부족했다.

참여정부는 달랐다. 부패청산, 독점해소에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자 노력했다. 부패와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는 ‘전체적 접근(holistic approach)'을 통해 ’국가적 반부패 시스템(National Integrity Systems)'을 구축해야 한다는 국제투명성기구의 제안과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 자신이 직접 4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언급한 바 있지만 도대체 부패를 청산하고 특권을 해체하지 않고서 실현가능한 참여정부의 장기과제란 찾아보기 어려웠다. 독점과 유착을 해소하지 않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을 건설할 수 없고, 교육계에 만연한 특권과 부패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우리 아이들을 망국적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킬 수 없다. 참여정부는 균형발전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배정했는데, 그것이 만일 지역의 일부 토착특권층의 배를 불리는 데만 사용된다면, 지방화라는 참여정부 과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권철폐나 부패청산은 단순히 사회의 부정과 불공정을 바로잡는 작업에 머무르지 않는다. 특권과 부패가 존재하는 한 구성원 모두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이를 추구할 것이고 혁신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

이공계를 나와 봐야 기술인력으로 사회에 기여한 만큼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국민들 사이에 파다하다면, 그리고 법조계 같은 특정 계통에서는 각종 특권적, 경쟁제한적 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여전히 클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하다면 학생들이 각자의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자명하다. 속칭 '고시낭인'이 넘치고,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줄을 잘 대는’ 일이 더 중요한 한 경쟁력의 원천인 인적 자본 축적은 요원할 것이다.

부패척결, 공정경쟁·지속 성장 계기로 삼아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논의해야

특권과 부패의 해소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부 먼저 혁신의 고통을 떠안겠다는 솔선수범의 자세와 엄정한 법집행 의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여과 없이 드러난 공직 비리의 사슬은 우리나라의 발전을 좌우할 아킬레스의 건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비리가 심각한 교통, 건설부문이나 공기업, 인허가 같은 행정분야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여 단호한 개혁을 해야 한다.

특히 정부부문에서 독점적 이익이나 부패가 존재할 경우 자금 등 로비력이 부족하고, 정부와 기존에 형성한 관계가 없는 외부자일 가능성이 큰 (신생) 혁신 중소기업은 각종 인허가나 코타를 획득하는 데 애로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혁신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Murphy, Shleifer, and Vishny, 1993).

특권과 부패의 척결은 각자의 행동동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부족한 자원이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부패 척결은 정의 실현을 넘어서 공정한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정의의 바탕 위에서만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

홍콩은 부패공무원을 기소하여 승소하는 비율이 50%에 이르는 반면, 우리는 10% 미만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부패 경찰을 300명씩 파면했던 영국의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부터 고치겠다는 공직사회의 뼈를 깎는 의지와 노력이 절실한 때다.

좌우 눈치 보는 한국 검찰로는 비리 척결에 한계가 있으므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고비처) 신설을 심각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 논의하던 고비처 신설 문제는 권력기관 간의 힘겨루기 끝에 결국 물 건너갔지만 언젠가는 다시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정우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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