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297] 꽃이 지는 자리
상태바
[태화산 편지 297] 꽃이 지는 자리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5.04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며칠전만 해도 그렇게 곱고 화사했는데... 시간이란 놈 앞에서는 복숭아꽃(도화)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색은 바래지고 꽃잎은 오그라들어 별 볼일 없는 흉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더니 만개의 영화는 허무하게 지나 버렸습니다.

세상 일이 다 그런 거지... 너무도 허망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체념 섞인 한마디가 튀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꽃이 지는 그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허망감은 사라지고 잔잔한 기쁨이 찾아들었습니다.

시들고 바래져 보기에도 흉한 자리, 꽃이 지는 그 자리야말로 열매가 열리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꽃이 져야 열매가 열립니다. 만개의 화려함에서는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꽃이 지는 저 자리는 슬픔의 자리도 아니요, 허무의 자리도 아닙니다. 탐스런 결실을 위한 인욕의 자리입니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개화의 시기가 있다면 시들고 오그라드는 낙화의 시기가 있습니다.

부끄럽고 보기 흉해 감추고만 싶은 낙화의 자리. 하지만 인생의 결실 또한 바로 그 자리에서 열립니다. 어려움을 겪어봐야 철이 든다는 말 또한 그것을 지칭하는 또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니 꽃이 진다고 서러워할 것이 아닙니다. 비로소 결실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인식하고 제대로 된 열매가 열릴 수 있도록 스스로 자양분이 되고 밑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저 복숭아(도화)꽃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