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들에게 정관·낙태 강요한 국가는 배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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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들에게 정관·낙태 강요한 국가는 배상해야"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5.07.17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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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냉대와 멸시속에 살아온 그들... 박영립 변호사 "국가, 항소 포기해야"

[데일리중앙 김주미 기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 한하운의 '전라도길- 소록도 가는 길에' 중에서

▲ 사슴을 닮았다 하여 소록도라 했다. 이름은 예쁘지만 어느 한때 이곳은 홀로코스트 버금가는 잔악한 시절이 있었다. '소록도는 곧 문둥이 수용소'라는 것이다.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엔 그 누구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섬이었다. 소록도의 아침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사진=다음블로그)
ⓒ 데일리중앙
사슴을 닮았다 하여 소록도라 했다. 우리가 흔히 나병이라고 부르는 한센병 환자들의 정착촌이다. 현재 소록도 등 전국 89개 정착촌에 1만2000여 명이 살고 있다. 평생을 냉대와 멸시 속에서 한을 안고 살아온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다.

이들을 더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만든 건 국가가 강제로 정관·낙태수술 받게 했다는 사실. 이들은 단지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소록도에 강제 격리 수용돼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직업도 가질 수가 없었다.

국가가 이분들에게 혼인을 조건으로 강제로 정관수술을 받게 하고 낙태 수술을 강요했던 것에 대해 법원이 그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세 차례의 법원 판결이 있었지만 정부는 항소를 제기해 한센인들을 더욱 힘들고 고달프게 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정부는 항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 소송을 이끌었던 박영립(변호사) 한센인권변호인단장은 17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나와 "한센인들의 맺힌 한을 생각한다면 국가는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센인들은 모두 이러한 인격 침해의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소록도 등 전국 89개 정착촌에 1만2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강제 단종·낙태 피해자들은 6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법원의 판결조차 알지 못하고 억울하게 세상을 뜬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센병 환자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돼 멸시와 냉대 속에 살아온 것은 이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 때문이다.

사실 한센병은 유전병도 아니고 완치가 가능한 전염병의 일종이다. 그리고 1950년대 이미 완치약이 개발돼 지금은 거의 한센병이 발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센병은 혐오스럽다, 전염이 될 것이라는 편견이 많은 게 현실.

지금 소록도 등에 집단 거주하고 있는 1만2000명은 모두 한센병을 앓았다가 완치된 분들로 전혀 전염력도 없다고 한다. 건강인들과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 전염력이 결핵의 1/100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에 법원이 국가에서 피해 보상하라고 한 한센인은 139명. 이들이 피해자로 인정된 것은 한센진상규명위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박영립 변호사는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 "실제로 한센인들은 소록도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강제로 정관·낙태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국가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센인들은 이번 판결에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한센인들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판결 금액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매우 기뻐하고 있다. 그 이유는 평생을 차별과 편견, 냉대, 멸시 속에서 살아온 이분들이 이번 판결을 통해서 이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이고 권리 의무의 주체다, 그렇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감격해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1심 판결에 대해 정부가 또 항소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번 판결이 네 번째 판결인데 모두 원고(한센인들)가 이겼다. 그런데 1, 2, 3차 판결에 대해 국가가 모두 항소해서 지금 항소심과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박 변호사는 "이번 네 번째 판결도 전례에 비춰보면 항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늦으면 이분들 평생 한을 안고 세상을 마감할 수도 있다. 시간이 없다. 국가가 항소를 포기하고 정말 이분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하길 간절히 촉구한다"고 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과 대만은 이미 한센인들에게 일괄보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슴을 닮았다 하여 이름붙여진 소록도. 물길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소록도가 햇빛을 받아 황혼에 서럽다.

내년이면 소록도 한센마을 100주년이다.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가 또다시 항소를 고집하면서 이들의 피멍든 가슴에 대못질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이 드높다. 정부의 선택이 주목된다.

김주미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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