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381] 봉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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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381] 봉숭아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5.08.2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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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아랫마을을 지나다 보았습니다.

어느 집 돌담 아래 피어 있는 저 소담한 꽃을. 얼핏 스쳤는데도 참 많은 것이 연상되어 차를 후진시키고 내려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저 꽃이 참 흔했습니다. 집집마다 담 밑에는 저 꽃을 심었습니다. 꽃이 예쁘기도 하지만 그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저 붉은 빛깔의 꽃이 사악한 기운을 막아 질병이나 나쁜 일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뱀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아준다고 해서 금사화(禁蛇花)라고도 불렸답니다.

저 꽃을 뜯어 손톱에 물을 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예쁘게 치장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쁜 기운을 막아 건강을 지켜달라는 기원의 표상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매니큐어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하며 민족의 한을 담아 노래한 것도 저 꽃에 담겨 있는 그러한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될 것 같으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흔하던 저 꽃이 지금은 보기도 힘들 정도가 된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했던 게 저 혼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물리적인 힘이 생길 수 있음을, 그래서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내년에는 씨앗을 구해 마당가에 몇 송이 심어 놓을 계획입니다. 그리고 잊혀진 의미도 부각시킬 것입니다.

특히나 뱀이라면 기겁을 하는 집사람에게 수시로 얘기하고 인지시켜 줄 것입니다. 그렇다고 믿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안정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니까요.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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