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편지 385]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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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편지 385] 기다림
  • 한상도 기자
  • 승인 2015.08.2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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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도(농부 작가)

▲ ⓒ 데일리중앙
저희집 2층 베란다에 있는 장독입니다. 속에는 지난 1월에 띄운 와송된장이 들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8개월의 시간을 한결같이 저곳에서 저 모습으로 견뎠습니다. 맛좋고 몸에 좋은 된장으로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그러해야 합니다.

장을 일러 흔히들 기다림의 맛이라고 합니다. 저 캄캄한 독 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며 햇빛과 바람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익어가는 것. 그 기다림과 인고의 크기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묵으면 묵을수록 깊고 그윽한 맛. 더 활발해지는 기능과 약성. 그래서 오래된 장은 약이라고도 합니다.

기다림은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세상을 바꾸든, 내 삶을 바꾸든 무엇인가 일을 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참고 기다리는 숙성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빨라졌기 때문인지,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요즘의 우리들은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속성이니 광속이니 해가며 꽃도 지지 전에 열매를 따려 하고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재촉합니다.

저도 이곳으로 내려온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되는 일 하나 없다는 것을요.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것 같은 신데렐라에게도 저 장처럼 무수한 시간의 기다림이 있었다는 것을요.

그러니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더 많은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더 다듬고 숙성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강태공은 바늘 없는 낚시를 던지며 70년을 기다린 끝에 천하를 얻었지 않았습니까?

제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저도 더 많이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저 장독이 제게 기다리라 기다리라, 그렇게 일깨워 주고 있으니까요.

한상도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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