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란 "노래 속에 담긴 애닯은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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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 "노래 속에 담긴 애닯은 내 인생"
  • 석희열 기자·진용석 기자
  • 승인 2007.09.18 16:00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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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떠나 청평생활 8년... 왜 그리 고단하고 힘겨워 보이던지

"이 노래는 대선배인 나애심 선생님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직접 부른 영화 주제가입니더. 원래 리듬은 슬로우 왈츠였는데 85년에 제가 리바이벌하면서 슬로우 록으로 바꿔서 불렀지예. 한창 방송을 타다가 대학가에서 학생들의 데모가로 불려지면서 금지곡으로 묶여버린 그런 사연이 있는 노래입니더. 모두들 추억에 한번 젖어들어 보입시더."
15일 주말 저녁. 1년 만에 다시 찾은 청평. 한반도를 할퀴고 간 태풍 '나리'의 심술 때문일까.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낮게 깔린 잿빛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았다.

서울에서 남한강변을 따라 6번 국도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되어 닿은 곳. 풍광 좋은 북한강가에 고이 자리한 이태리풍의 하얀색 라이브 카페 '문주란 뮤즈클럽'이다. 궂은 날씨 탓에 85평 홀 안은 듬성듬성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저녁 8시. 먼 기적 소리처럼 트럼펫 연주가 길게 울려퍼지더니 왕년의 톱가수 문주란씨가 추억을 노래하며 무대에 올랐다. 이따금 마주치는 그의 눈가엔 방울방울 이슬이 맺혔다. 촉촉하게 젖은 그의 목소리가 황혼에 서러웠다. 울긋불긋한 조명 아래서 유난히 슬퍼보이는 그는 이날 사람이 그립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빠바바 바바바방~' 전자 오르간의 음율을 타고 흐르는 '백치아다다'는 흐느끼듯 눈물겨웠다. 수백 번도 넘게 불렀을 이 노래의 노랫말을 그는 음미하듯 읊조렸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검은 머리 금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꽃가마에 미소짓는 말~못하는 아다다여/ 차라리 모를 것을 짧은 날의 그 행복/ 가슴에 못 박고서 떠나버린 님 그리워/ 별 아래 울~며 새~는 검은 눈의 아~~~다다여."

 문주란씨의 '백치아다다' 듣기

"이 노래는 대선배인 나애심 선생님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직접 부른 영화 주제가입니더. 원래 리듬은 슬로우 왈츠였는데 85년에 제가 리바이벌하면서 슬로우 록으로 바꿔서 불렀지예. 한창 방송을 타다가 대학가에서 학생들의 데모가로 불려지면서 금지곡으로 묶여버린 그런 사연이 있는 노래입니더. 모두들 추억에 한번 젖어들어 보입시더."

노래따라 가사따라 운명이 바뀌는 걸까. 사연많은 그의 삶이 자신의 노래인생을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공항의 이별' '보슬비 오는 거리' '동숙의 노래' '백치아다다' '아리나래' '님 그림자'(노사연) '비내리는 명동'(배호) '영영'(나훈아). 이날 그가 고른 노래는 모두 슬픈 곡조를 띄었다. "제 노래는 빠른 게 별로 없다. 가사도 대부분 사랑하고 이별하고 실연하고 눈물흘리고 그런 것들"이라고 했다.

"자꾸만 눈물이 나요. 제 생활이 슬프니까 그냥 눈물이 나요. 그러다가 때로 엉엉 울고 싶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슬퍼요. 제 사주에는 고독이 꼭 나와요. 그래서 외로울 수밖에 없나 봐요."
공연이 끝나고 그의 2층 집에서 문씨를 따로 만났다. "정말 오랜만입니더. 이러다가 얼굴 이자뿌겠습니더(잊어버리겠습니다)." 그의 툭진 경상도 사투리가 정감을 돋웠다.

1년 만에 다시 본 그는 그러나 많이 슬퍼 보였다. 요즘 들어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했다. 특히 한가위가 다가오면서 마음이 더욱 허허로워진다고도 했다. "다들 명절되면 고향에 가잖아요. 그렇지만 저처럼 갈 곳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는 사람들은 이럴 때가 제일 외로운 것 같아요."

이런 문씨에게 10대에서 5, 60대 팬들에 이르기까지 러브 레터가 쏟아졌다. '사랑한다' '존경한다' '아름답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대부분 그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글들이다. "왕년의 효리언니 문주란 선생님, 카리스마 철~철~ 너무 멋져요^^"

공주, 뽀미, 인희, 뽀돌이···. 문씨는 9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산다. 사람이 그립고 옛 추억에 목이 멜 때면 뽀돌이 뽀미와 함께 북한강가를 거닐며 소곤소곤 얘기도 나누곤 하겠지.

"전날에는 나도
현란한 세상옷을 입고 꽃이라 불리었소
얼굴 간지르다 지나가는 바람의 허무에도
교만한 꽃잎 나풀거리며
고운 모습 치장하기에 바빴더랬소"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는 꽃이 되고 싶었나 보다. 부처님 앞에 서면 만인에게 꽃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삶에 대한 애착과 용기와 힘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해주십사 하고 애원한다고도 했다.

"자꾸만 눈물이 나요. 제 생활이 슬프니까 그냥 눈물이 나요. 그러다가 때로 엉엉 울고 싶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슬퍼요. 제 사주에는 고독이 꼭 나와요. 그래서 외로울 수밖에 없나 봐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지 물었다. 문씨의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꿈에라도 한 번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웃에 누가 엄마가 갖다 준 김치다, 밑반찬이다 하며 자랑할 때면 그리움이 더욱 사무치죠. 엄마가 살아 계신다면 아마 제게도 저랬을텐데 하고 생각하면 밀려드는 그리움에 서러움이 복받쳐요."

"그때는 어렸고, 첫사랑 문제도 있었고···. 평범하지 않으니까 모든 것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미국으로 이민간다고 하니까 박춘석 선생님이 얼마나 방방 뜨던지. 박 선생님이 제게 '주란아. 그럼 내가 노래 선물 하나 주마. 이거 불러서 히트하면 안 갈 수 있겠느냐'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부른 노래가 바로 '공항의 이별'이었죠."
그는 유난히 계절을 많이 타는 듯했다. "새파랗던 이파리들이 가을이 되면 어느새 노랗게 물들며 하나 둘씩 떨어지잖아요. 그 많던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것을 보노라면 인생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돼요. 우리 인생도 똑같잖아요. 겉으로는 참 씩씩하고 그런데 정작 제 노래는 슬프고 그 노래 속에 제 삶이 녹아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는 자신을 잊지 않고 주말마다 찾아주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때때로 문닫고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팬들을 보면 다시 마음을 다독거리곤 하죠. 만약 제가 그만 두면 추억따라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오는 그분들에 대한 배신행위잖아요."

어린 나이에 혜성처럼 나타나 인기절정을 누리던 그가 1971년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가기로 했다는 소식에 당시 가요계가 한바탕 충격에 빠졌다. 왜 그랬을까. 이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때는 어렸고, 첫사랑 문제도 있었고···. 평범하지 않으니까 모든 것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미국으로 이민간다고 하니까 박춘석 선생님이 얼마나 방방 뜨던지. 박 선생님이 제게 '주란아. 그럼 내가 노래 선물 하나 주마. 이거 불러서 히트하면 안 갈 수 있겠느냐'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부른 노래가 바로 '공항의 이별'이었죠."

가슴 저미는 첫사랑에 울어야 했던 그는 박춘석씨와 약속한 대로 1972년 '공항의 이별'이 크게 히트하자 미국행을 접었다. 이후 '공항대합실' '공항에 부는 바람' '공항으로 가는 길' 등 공항 시리즈가 잇따라 히트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신곡이 궁금했다.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7월 김희갑-양인자씨 작품의 새 노래가 나왔어야 했다. "두 분이 명성황후 주제가로 많이 바빴고 저 자신도 의욕이 떨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신곡 발표가 늦어진 것. 문씨는 다음달 중순 '시절인연'을 머릿곡으로 하는 새 곡을 낼 계획이다. 수필집도 함께 나올 예정.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자로 태어나되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올 연말에는 그의 바람이 꼭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석희열 기자·진용석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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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2007-09-18 18:28:01
반갑습니다. 보고싶은 매혹의 저음의 여왕 문주란님의 기사를 읽고 매우 행복합니다.꼭 신곡 대박과 함께 자서전 또한 서점가에 폭발 베스트에 랭크되시길 기원합니다.석기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화이팅!!!

최대순 2007-09-19 08:45:59
다르긴 다르군요 기자분이시라
아주 조리있게 글올려주셨읍니다
문사모 모든회원님여러분이 근황을잘알수있게....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이쁜이 2007-09-19 22:43:49
데일리중앙이라면 경기도이신지.
제가 경기도 의왕에 사는지라 괜히 관심이 가는군요.
기사 쭈욱 읽어보니 정말 눈물 납니다.
문주란님이 저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시는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아이고 미안해라.
뮤즈클럽 자주 가야겠습니다.
좋은 기사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택에 데일리중앙 회원에 가입했습니다.

이쁜이 2007-09-19 22:52:41
우리 카페에 가면 저노래 있는데. 잘 연결이 안되나 봅니다.
저음의 여왕 문주란 카페에도 이 기사가 벌써 떳더군요.
근데 거기에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던데 여기는 별로 없어 허전하네요.카페 댓글 중에서 몇개 소개할께요. 감동적입니다.

아니~~ 요즘 감기가 심하시다더니~ 어찌 저리 여위셨을꼬... 인터뷰 내용도 가슴을 찢고~ 백치 아다다가 너무 사무치게 구슬프게 들립니다. 주란님 부디 힘을 내소서 ㅠ.ㅠ

카페댓글 2007-09-19 22:55:57
만인에 우상이신 우리 문주란님이 슬프다는 글에 제맘도 영 헌데 문주란님 외그리 야위셨나요 건강하셨야합니다 07.09.18 22:34
주란님 힘 내십시요. 지금부터 다시 제3의 전성기 가독해야죠 07.09.18 22:36
아아 뉘~~문주란님 많이 아프셨다더니 ..ㅠ.ㅠ 마음이 아프군요 . 오늘따라 왜이렇게 백치 아다다가 가슴아프게 들릴까요 ,,ㅠ,ㅠ 부디 건강하셔서 우리곁에서 오래오래~~좋좋은 노래들려주셔요. 07.09.18 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