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은 늘 색깔로 먼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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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은 늘 색깔로 먼저 다가온다
  • 석희열 기자
  • 승인 2009.03.13 13: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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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일리중앙

아름다운 것들은 늘 색깔로 먼저 다가온다. 빛바랜 기억의 사진첩 속에서도 그리운 풍경은 언제나 풀과 나무와 꽃들의 선연한 빛깔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 속에 봉숭아가 있다.

어린 날의 여름해는 길고도 길었다. 그런 한낮-아이들은 봉숭아를 찧어 손톱 위에 고운 꽃물을 들이곤 했다. 할머니가 그랬고 어머니 또한 그랬듯이 아이들의 생애에서는 그것이 늘 신비한 체험이었다.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것을 난 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푸르른 하늘 아래 늘 푸른 산과 신록-드넓은 들판과 푸른 계곡은 내게 무한한 꿈과 희망을 주었으며, 눈을 들어 드높은 하늘엔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니고 저녁 연기에 멀리 교회종소리가 더없이 평화로웠다. 논둑길을 따라 향긋한 풀냄새에 개구리소리가 또 얼마나 정다웠는지 모른다.

*멀리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 언덕엔 저희들끼리 무리지어 피었다 지는 들풀들 그리고 꽃들….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아이들이 뛰어가고 개울 옆 풀밭에는 흰 염소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문득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울고 있고-. 동구밖 아카시아 숲길에 막 들어섰을 때 샘물처럼 가슴이 확 트이며 치솟던 눈물은 아마도 잊혀져가고 묻혀버린 어린시절 늘 살갑게 안아주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게다.  (*공지영의 장편소설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중에서 일부 요약)

 

▲ ⓒ 데일리중앙

내게 정직함과 부지런함을 일깨위주었던 농촌에서의 성장은 그래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으며 두고두고 되새길 자산이었다.

중 2때, 비련의 여주인공 '카츄사'의 기구한 운명을 끝까지 연민하며 읽었던 톨스토이의 <부활>과『꿈인지 생시인지/ 와르륵 달려들어/ 섬섬옥수로 부여잡고/ 호천망극 하는말이/ 하늘로서 떨어지며/ 땅으로 솟아났나/ 바람결에 묻어오고/ 구름결에 쌓여왔나』로 시작되는 '배따라기' 노래의 사연을 사소한 오해 끝에 아내를 잃고 아우마저 생이별하는 뱃사나이의 한으로 풀이해 놓은 김동인의 단편소설 <배따라기>가 나의 문학적인 감수성에 자극을 주어 장차 어른이 되면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소설가나 신문기자가 되어야 겠다는 꿈을 가지게 했다.
 
각설하고...

많은 문학청년들이 그랬듯 나 또한 청년시절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또 읽으며 내공을 쌓곤 했었지-.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준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내가 갓 걸음마를 배웠음직한 1960년대 당시 문학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며 한국문단에 감수성의 혁명을 몰고왔다.

열에 일곱이 그의 감수성과 유려한 글쓰기에 압도됐다는 그 <무진기행>을 난 지금도 가방 속에 넣고 다닌다.

안개 낀 무진! 그래 이번 봄에는 무진에 한 번 다녀오자.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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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타령 2009-03-13 16:23:02
누구든 옛것에 대한 그리움은 있기 마련
그것이 기쁘든 슬프든. 옛날 추억을 떠올리다보면 목이 메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 같다.
봄이 되니 친구들이 그립고 고향 아낙네들이 그립고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구나.
우리나라는 참 고향 풍경이 정답고 그러는데 다른 나라도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