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년. 세상이 온통 기쁨과 열정으로 빛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매일매일 태양을 찬미하며 또 거기에 취해 있었다. 놀이와 꿈 속에서 내 유년이 꽃피었던 것처럼 내 모든 지적 아름다움과 이데아의 탯줄이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속삭이던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필드는 신앙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뿐인가! 한가로운 오후의 햇살이 은빛으로 춤추는 캠퍼스 정원의 한가운데에 누워 롱펠로우의 <인생예찬>을 읊조리며 나는 봄볕에 취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톨스토이와 세익스피어, <아시아의 드라마>의 군나르 뮈르달, 제임스 조이스같은 문학이 또 내 젊은 청춘을 애무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낭만적 대학생활은 오래가지 않아 수정되었다. 동아리 라미문학회에 들어가고부터 친구들과 <자본론>을 함께 읽으며 조국과 민족의 미래에 대해 밤새워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늘어났던 것. 거기에는 늘 레오 마르크시즘에 대한 지적 담론과 질풍노도의 젊음이 함께했다.
암울했던 80년대-. 치열했으며 그래서 그때 20대를 보낸 젊은 청춘들은 하나같이 혁명을 꿈꾸던 시기였다. 나도 그랬다. 누구도 역사의 대장정에서 비껴난 삶을 살 수가 없었다. 굴곡이 많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장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민주주의에 대한 도덕적 복무는 자연히 파쇼와 그 부역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준엄한 역사의 대세였으며 당위였다.
저항의 시대 80년대. 치열했던 만큼 동지애도 진했다. 그시절 젊은 청춘들과 밤새워 토론하고 고민하며 함께 '동지가'를 부르던 기억들을 잊을 수가 없다. 맑은 영혼들의 애끓는 젊음을 오직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초개처럼 불살랐던 순수한 열정은 늘 밤하늘 별빛처럼 영롱하고 반짝였다.
종속과 굴종의 굴레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오욕의 시대, 우리의 위대한 대장정은 실로 역사의 합법칙이며 당위였다. 아무도 그걸 방해할 수 없었으며 어떤 세력도 우리의 찬연한 행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일부 배신자들과 우개량주의자들은 변혁운동이 마치 종말을 고한 듯이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분리책동을 걸음마다 저지 파탄시켰다. 그때 우리는 노동자계급과 대중을 모든 진보운동의 주체로 준비시키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놓았다. 우리의 스크럼을 가로막는 자에겐 불벼락과 함께 단죄의 칼날이 떨어졌다. 파쇼와 그에 기생하는 반역자들은 그 어떤 논리로도 우리의 견고한 논리와 당위성을 이기지 못했다.6·10항쟁. 바야흐로 1987년 반도 남쪽에서는 20세기 인류 역사상 마지막 대장정이 그 서막을 알렸다. 세계의 모든 양심과 지성이 우리를 격려했다. 너도 나도 무릎 꿇고 살기 보다는 서서 죽기를 각오했다. 마침내 우리는 백전백승 불패성을 힘있게 과시하며 역사 앞에서 승리의 월계관에 입맞춤했다.
그날의 항쟁으로 우리는 단번에 절망의 질곡에서 희망의 기슭으로 올라섰다. 광화문에서 을지로에서 퇴계로에서 서면에서 남포동에서 충장로에서 그리고 동성로에서 우리는 무너져내리는 군부파쇼를 장송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처음처럼' '조국사랑'... 이런 단어의 감수성에 취해 그때 우리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그리고 한순간을 살아도 산맥처럼 부끄럼 없이 살고자 다짐했다.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러운 자 되어/ 조국을 등질 수 없어/ 나로부터 가노라..."
우리의 80년대는 그랬다. 최루탄 연기에 하루도 영일이 없었다. 진지했지만 눈물도 많았다. 그때 우리가 함께 체험하고 공유했던 '시대정신'과 '청년정신'은 늘 순결했으며 감성은 풍부했다. 우리의 전진도상에는 만감도 많았으며 일시적인 우여곡절도 있었다.
우리의 웃음이 유별히 따뜻하고 살가웠지만 가볍거나 헤프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으며, 그래서 아픔도 많았다. 역사의 죄인들을 '단죄'하려고 했지만 거기에는 사려분별이 있었다. 고단하고 지난했지만 언제나 깨어 있었으며 학습과 교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자 했지만 이따금 과오도 있었다.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투쟁으로 금자탑을 세우고자 하지는 않았지만 훗날 역사는 우리 모두를 영웅으로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주체위업은 영구히 빛날 것이다.
중국의 사상가 노신(魯迅)은 그의 글 <고향>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도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것이 곧 길이 되었다."
한 치의 풀어짐도 허용하지 않았던 80년대 우리의 민주화 도정도 노신이 말한 '희망'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이제 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걸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저절로 있었던 길은 아니다.조국의 품으로! 시대의 품으로! 세상의 품으로!
애국한양이여! 영원하라!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