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 산이 있고 하늘 속에 땅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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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 산이 있고 하늘 속에 땅이 있네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6.01.17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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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금강산에서 2박3일... 만물상 천선대에 올라

이 글은 지난 2003년 12월 30일부터 2004년 1월 1일까지 2박3일 간 금강산에서 남북 민간교류 엔지오 지우다우 주최로 열린 '통일 새날 열기' 동행 취재기다. 이 행사에는 전국 50여 개 대학 총학생회장단과 교수 등 200여 명이 참가했다. 독자들의 요청이 있어 다시 싣는다. - 편집자 주

▲ 금강산 만물상 천선대로 오르는 층층 계단.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해금강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낸 우리는 이튿날 동이 트자마자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맨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이 어느새 버스는 온정리를 돌아 하한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미인의 자태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미인 소나무들이 저희들끼리 무리를 지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김일성 주석이 간간이 와서 묵었다는 초대소를 지나 만상계에 이르니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벌써부터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흡사 곡예를 하듯 만상정에 이르는 열두 구비를 수십 대의 버스가 오르락 내리락하며 장관을 이뤘다. 옆에 앉은 안내 도우미가 '버스쇼'라고 명명했다.

만상정에서 내리니 어디선가 본 듯한 장수바위가 만물상으로 통하는 문을 굳게 지키고 서 있었다. 안개가 걷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서리서리 산의 향기가 코끝을 매만졌다. 그리운 금강산! 흥분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만물상 탐승길에 올랐다.

"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음마다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니
산은 푸르고 돌은 흰데 사이 사이엔 꽃이 반겨 웃는구나
화공에게 저 경치를 본따서 그림을 그리라 한다면
숲 속의 저 새소리는 또 어찌할꼬
"
- 방랑 시인 김삿갓의 시

장군바위를 지나 몇 굽이를 끼고 돌아 올라서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삼선암이다. 아래서 올려다 보니 하늘에 맞닿아 있는 자태가 몸에 감길 듯이 온화하다. 상선암과 중선암, 하선암. 비범한 기품이 신선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길동무가 일러준다. 세 신선의 미움을 받아 쫓겨난 독선암이 저만치 홀로 눈을 부라리고 서 있다.

"산 위에 산이 있고 하늘 속에 땅이 있네
물가에 물 흐르니 물 속에 하늘이로다
창망히 허공 속에 떠있는 이 몸은 안개도 신선도 아닌 것을
내 듣건 데 원생 고려국하여 일견 금강산이라고 하더니만
금강산에 와보니 일 만 이천 봉우리는 구슬이구나"

삼선암을 마주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길은 막히는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기를 되풀이했다. 몸은 어느덧 심해같이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깊은 수목 속을 거닐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창망한 하늘 위로 흰 구름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바위틈에 걸쳐 있다.

습경대에 올라 다리도 쉴 겸해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뒤 주변을 둘러보니 형형색색 기암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우러러 볼수록 기묘하고 찬란하다. 아사달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저처럼 신묘한 재주를 부릴 수 있을까.

"산 위에 산이 있고 하늘 속에 땅이 있네
물가에 물 흐르니 물 속에 하늘이로다
창망히 허공 속에 떠있는 이 몸은 안개도 신선도 아닌 것을
내 듣건 데 원생 고려국하여 일견 금강산이라고 하더니만
금강산에 와보니 일 만 이천 봉우리는 구슬이구나"

- 봉래 양사언의 '칠언절시' 중에서

▲ 바위들로 이루어진 금강산은 조각미와 산악미가 백미다.
ⓒ 데일리중앙

습경대를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니 절부암이다. 그 옛날 나무꾼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만나기 위해 도끼로 바위를 찍으며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잃어버린 부인을 되찾기 위해 떨어지고 넘어지며 바위 틈을 기어오르던 나무꾼의 흉리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남녀상열지정이 천년에 서럽다.

난간을 붙들고 가파른 급경사를 따라 안심대에 올라서니 북쪽 안내원이 지친 길손을 맞아주었다. 남쪽에서 온 총각들이 마음에 드느냐고 말을 붙이자 갓 스물을 넘겼음직한 안내원은 수줍어 수줍어 생글 돌아서며 얼굴을 붉혔다. 새색시마냥 수줍게 돌아서며 살포시 드러나는 볼우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붉게 빛났다.

돌아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나자는 다짐을 하고 돌아서려니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웃어 주었다. 조심하라는 인정과 함께 도타운 미소가 잘 익은 머루알처럼 고왔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반대편으로 돌아 내려오는 바람에 그날 북쪽 처녀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튿날 점심 무렵에 삼일포에서 그와 다시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 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 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 한상억 '그리운 금강산' 중에서

만물상을 탐승하는 감흥과 북쪽 처녀에 대한 연정이 뒤섞인 채 가파른 길을 따라 다시 한참을 올라가니 천선대로 오르는 하늘문이 나타난다. 속세의 인연이 범접할 수 없음이런가. 그 웅장한 자태는 하늘로 쭉 뻗어 커다란 기둥 모양을 하고 있다. 사람이 다가서자 그제서야 문이 열리는 듯하다. 때마침 불어오는 산바람이 갓 길어 올린 샘물처럼 맑고 상쾌하다.

난간 손잡이에 의지해 층층 가파른 돌계단을 한사코 기어올라 꼭대기에 우뚝 서니 만산이 한눈에 굽어보였다. 시야가 일망무제로 확 트였다. 여기가 세상의 만물을 다 모아 놓았다는 만물상 정상 해발 936미터의 천선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금강산의 절경에 취해 몇 날을 이곳에서 놀다 갔음직하다.

사방을 빙둘러 오봉산(만물상 촤고봉) 줄기마다 이름 모를 봉우리들이 여기에서도 불끈 저기에서도 불끈. 깎아지른 절벽과 기기묘묘한 형상들이 한 눈에도 비경임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이백과 맹호연이 여산의 경치를 찬탄하여 시를 지었다지만 만약 그들이 금강산을 보았더라면 이보다 낫단 말 못했을 것이라고 한 송강의 한탄이 새삼스럽다.

▲ 금강산 만물상의 기암.
ⓒ 데일리중앙
▲ 금강산의 진면목을 볼려면 자신의 나신을 숨김 없이 드러내놓는 겨울(개골산)이 제격이다.
ⓒ 데일리중앙

옛 사람들이 금강산을 일러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이 산을 보면 죽어도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 뜻을 알 만도 하다. 중국 북송의 문장가 소동파가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願生高麗國一見金剛山)"고 한 말이 거짓은 아니리라.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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