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금강산에서 2박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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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금강산에서 2박3일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6.01.17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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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003년 12월 30일부터 2004년 1월 1일까지 2박3일 간 금강산에서 남북 민간교류 엔지오 지우다우 주최로 열린 '통일 새날 열기' 동행 취재기다. 이 행사에는 전국 50여 개 대학 총학생회장단과 교수 등 200여 명이 참가했다. 독자들의 요청이 있어 다시 싣는다. - 편집자 주

▲ 금강산 만물상 삼선대.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석희열 기자] 새벽부터 서두르기 시작한 우리 일행이 서울을 출발한 것은 지난달 30일 아침 9시 정각이었다. 1일까지 2박3일 간 금강산에 머물면서 이곳에서 열리는 전국 대학 총생회 통일기원 해맞이 '통일 새날 열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남북 민간교류 NGO 지우다우가 주최하고 대학생 준비위원회가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전국 51개 대학총학생회 소속 대학생 180여 명과 성공회대 교수단, 동국대 강정구 교수 등 200여 명이 참가했다.

일행을 태운 대형 버스 5대가 서울을 빠져나가자 점점 흥분되기 시작했다. 이번이 여섯 번째라는 강정구 교수와 지우다우 김영권 홍보부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쪽 방문이 처음인 우리는 금강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얘기꽃을 피웠다.

오후 2시 강원도 고성 금강산콘도에서 설렁탕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남쪽 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한 시간은 3시40분이었다. 이곳에서 간단한 발대식을 가진 뒤 지정된 버스로 갈아타자 현대아산에서 파견된 조장(안내 도우미)이 우리를 맞았다.

▲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있는 남쪽 출입관리사무소.
ⓒ 데일리중앙
남쪽 CIQ를 통과한 우리 일행이 구불구불한 아스팔트 길을 따라 버스로 15분간 내달리자 남방한계선(남쪽 통문)이 나타났다. 비무장지대로 들어선 버스가 군사분계선을 지나 먼지나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 해금강이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덜컹거리던 버스가 이내 낙타봉이라 불리는 금강산의 최남단 구선봉(해발 189미터) 앞에서 멈춰 섰다. 북쪽 군인들이 수비를 맡고 있는 북방한계선이었다. 양쪽 한계선이 버스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 2004년 1월 1일 일출 직전의 해금강.
ⓒ 데일리중앙
육로공사를 하다 만 현장과 끊어진 철도를 바라보며 잠시 사색에 잠겨있는 사이 검문을 위해 북쪽 군인 2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무엇인가 말을 건네려 하자 무장군인이 조용히 하라고 호통을 쳤다. 그들은 남쪽에서 온 동포들에게 인사 한 마디 없이 버스에서 내려가더니 곧장 트렁크를 검색했다.

20여 분 간 검문이 진행되는 동안 처음으로 마주한 북쪽 군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눈을 마주쳐보았지만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자주 방문하는 남쪽 사람들에 대한 감흥이 없어진 까닭일까.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그들은 우리의 웃음과 손짓에는 끝내 대꾸하지 않았다.

▲ 봉래대에서 바라본 삼일포.
ⓒ 데일리중앙
방랑시인 김삿갓과 처녀 뱃사공의 익살스런 일화가 전해져오는 남강다리를 건너 안내 도우미의 윤기나는 얘기를 들으며 40분만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장전항(고성항)의 북쪽 출입사무소. 오후 5시 40분이었다.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장전항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남쪽 손님을 맞았다.

간단한 출입심사를 받는 동안 우리에게도 익숙한 북쪽 노래 '반갑습니다'가 소리통을 타고 연거푸 흘러나왔다. 북쪽 CIQ를 빠져나오자 '민족의 명산 금강산 방문을 동포애로써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대형글간판이 또 우리를 맞이했다.

▲ 금강산 만물상 하늘문 입구.
ⓒ 데일리중앙
금강산 비경이 눈 앞에서 펼쳐져 있는 장전항에는 현대아산이 운영하고 있는 선상호텔인 해금강호텔과 설봉호가 바다 위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북쪽 CIQ에서 숙소인 금강빌리지까지 1.2km 구간을 우리는 행렬을 이루어 걸어서 갔다. 간간이 북쪽 병사들이 보였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지우다우 협력업체인 GNF가 운영하는 금강빌리지 내의 식당 하나홀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자 강정구 교수의 통일 강연이 이어졌다.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김운규 현대아산 사장과 북쪽 금강산관광총회사 리덕수 부총사장이 방문하여 남쪽 대학생들을 환영했다.

이 자리에서 리덕수 부총사장은 "뜨거운 동포애로써 남쪽 동포들의 금강산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고 한 문장으로 인사말을 끝내 눈길을 끌었다. 남쪽에서 온 기자라고 말하자 동행한 북쪽 인사는 "리 부총사장은 인사말을 간단히 하는 게 특기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 평양 모란봉 교예단이 공연을 마친 후 남쪽 방문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데일리중앙
이어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단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가) 추진위 준비단 주최로 금강빌리지 하나홀에서 연석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서 학생들은 새로운 학생운동 방향과 새조직 건설에 대한 토론을 밤늦게까지 벌였다.

우리 일행은 다음 날 아침 금강산 만물상 산행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했다. 오후에는 온정각 문예체육관에서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하며 휴식을 취했다. 이날 밤에는 텔레비전을 통해 서울에서둥둥 울려퍼지는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소리에 맞춰 카운트 다운을 하며 새해를 맞았다.

새해 첫날에는 금강산을 바다에 옮겨 놓았다는 해금강으로 이동하여 장엄한 해돋이를 감상하며 통일염원을 빌었다. 아침 식사 후 신라시대 때 4국선이 뱃놀이를 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그만 돌아가는 것을 잊고 3일 동안 머물렀다고 하는 삼일포를 구경했다.

▲ 공연이 끝나자 남북이 함께 '반갑습니다'를 합창하고 있다.
ⓒ 데일리중앙
삼일포 관광을 마지막으로 그리운 금강산에서의 2박 3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금강빌리지 하나홀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뒤로하고 아쉬움 속에 짐을 꾸렸다.

이날 장전항에는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매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북쪽 노래 '다시 만납시다'가 오전부터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날 오후 장전항을 출발해 밤 늦게 서울로 돌아왔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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