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장애 구필화가 한미순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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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장애 구필화가 한미순의 기도
  • 석희열 기자
  • 승인 2007.10.14 18: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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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을 주소서"... 그의 절규가 황혼에 서럽다

"전날에는 나도/ 현란한 세상옷을 입고 꽃이라 불리었소/ 얼굴 간지르다 지나가는 바람의 허무에도/ 교만한 꽃잎 나풀거리며/ 고운 모습 치장하기에 바빴더랬소/ ·····."

붓대롱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고 타이핑을 하는 여류 화가 시인 한미순씨의 '꽃'이란 시구절이다. 애절한 그의 절규가 문득 가슴을 적시는 저녁이다.

▲ 붓을 입에 물고 유화에 몰두하고 있는 구필화가 한미순씨. 한씨는 도우미의 문제로 애태우지 않게 진정한 사마리안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 데일리중앙 석희열
지난 2003년 1월 서울 거여동 한미순씨의 아파트로 찾아 가던 날은 하늘에서 함박눈이 분분히 내리고 있었다. 머리를 정갈하게 빗고 있던 그는 현관으로 들어서는 기자를 보자 흡사 새악시처럼 수줍은 미소로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바깥에 눈이 내리나봐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따뜻했다. 침대가 놓여 있는 그의 방 한 켠에는 작업을 위한 컴퓨터와 캔버스, 팔레트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3년째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마음씨 착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내온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들자 휠체어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참 신기하기도 해라. 손님이 오시는 날을 어떻게 알고 하늘에서 함박눈을 다 내려주시네···." 천진스럽게 웃는 그의 표정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 있었다.

1984년 가을, 서른살.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한창 꿈에 부풀어 있던 그에게 천형같은 재앙이 찾아왔다. 교통사고.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병원으로 실려가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 있던 그가 한달 반만에 깨어났을 땐 목 위의 얼굴만 살아 있을 뿐 손과 발은 이미 움직임을 멈춰 있었다.

절망~. 스스로의 힘으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된 그는 기막힌 현실에 몸서리를 쳤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글에서 "절망이 개천을 이루던 시절"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지난 세월 어떻게 지냈는지를 묻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리 빠르고 허망한 기분이 들까요. 한 살 한 살 보태지는 나이가 끔찍할 뿐입니다. 시간이 저 혼자 질주한 것 같아요"라며 세월의 급류에 휩쓸려 온 자신의 삶을 애달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20년 가까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는 나의 몸을 고쳐주소서!"
화려한 꽃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싱싱한 푸르름으로
피고 싶습니다 ················

그는 이날 "내 감정을 표현하고 기도를 표현할 수 있어 글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술에 대해 "자기 완성을 위한 끝없는 몸부림이며, 자기를 구현하고 자기세계를 천착하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이라고 정의한 그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싶지만 처한 환경이 그렇지 못하다"며 우회적으로 이웃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제는 그림으로 전신마비의 결박을 풀고 자유를 누린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02-443-9853)에서 "고립과 한계를 초월한 영혼의 세계를 화폭에 담아내는 작품들을 통하여 생명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고 밝혔다.

현재 세계구족화가협회에서 나오는 장학금으로 매달 100여 만원의 보수를 지급하며 중국동포 도우미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그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늘 가슴 속에 남아 있다"며 "이웃들의 왕래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세상의 모진 풍파에 떠밀리면서 가끔은 버려지기도 했을 지난했던 그간의 고단함 때문일까.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잠시 경련이 일어났다.

"20년 가까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는 나의 몸을 고쳐주소서!"

우회하지 않고 직설적인 그의 기도는 간절했다.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그는 하느님께 매달렸다.

▲ '추곡리 가는 길' (한미순 작). 
최근 한씨와 통화했다. 4년 9개월 만이다. 수화기를 들자 마자 "보고 싶다"는 말이 돌아왔다. 사람이 그리워서일 게다. 하루 일과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으며 소일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간다고 했다. 그를 돌보는 중국동포 도우미도 그대로였다.

그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게 해주소서. 직업상 딱 한 번 만났는데도 기자는 아직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을 구하는 그의 저녁 기도가 그치지 않는 한 기억 속에서 그의 간절한 절규는 끝내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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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리 2007-10-15 14:57:16
저런 사연이 있었구나. 세상살이가 여간 팍팍하지 않을 것인데 교회에서 도와주나. 한미순님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하루 빨리 나타나서 걱정없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