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그리고 봄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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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리고 봄눈
  • 데일리중앙 기자
  • 승인 2009.04.04 12: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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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왜 이리 봄이 오면 그리운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오는 봄
너를 보면 눈부셔
…………………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봄
- 이성부 '봄' 중에서 -

ⓒ 데일리중앙
하얀 목련이 수줍은 듯 순백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양지쪽 언덕엔 진달래가 연분홍빛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저만치 피어 있다. 차가운 겨울과 공해에 짓눌려 결코 피지 못할 것 같았던 개나리도 샛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어느새 민들레와 토끼풀도 파릇파릇한 잎새를 뽐내며 온 들녘을 초록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아마 언덕 너머 저 산 허리에는 할미꽃도 분홍 노랑 자주 보라 등 현란한 빛깔로 번져가고 있겠지. 잔설같은 겨울의 흔적이 아직도 저렇게 남아 있는데….

봄눈

봄에 오는 눈은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롭게 느껴졌던가. 대학 1년, 새내기 환영회 때 찍은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다. 솔가지에 소복히 쌓이던 눈이 좋아 껑충대며 거침없이 카메라를 눌러대던 기억이 새롭다.

고즈너기 숨죽인 산중의 봄눈. 교수님과 새내기 재학생이 한데 어우러진 환영회파티. 경건하게 축시 송시가 오가고 산나물 비빔밥에 툭진 막걸리가 인정을 풀어주고 노교수님의 그윽한 샹송이 공간을 누빌 때 우리는 그것 만으로 가슴이 타올랐었지-.

<< 에피파니 : 새로운 각성, 이미 있었던 일을 어느 순간에 새로이 인식, 새로운 감동 종소리 등이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가 그 언젠가 계기가 생겨나면 의식 속에 떠오르게 된다. 어떤 환상적 내지 승화된 이미지로서…. >>
밖에는 봄눈 내리고 그때 우리는 만남 하나만을 축복하기에 여념이 없었지. "사람은 누구나 만남에 황홀해 한다"고 누군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다시 봄. 왜 이리 봄이 오면 그리운지. 지난 아름다웠던 추억에 자꾸만 눈시울이 뜨겁다. 그시절 입던 청바지를 장롱 옷걸이에서 꺼내 벽에 걸어도 보고 노-트를 꺼내 조용히 그때 내 가슴을 꽉 채워두었던 숙제들을 더듬어본다.

<< 에피파니 : 새로운 각성, 이미 있었던 일을 어느 순간에 새로이 인식, 새로운 감동 종소리 등이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가 그 언젠가 계기가 생겨나면 의식 속에 떠오르게 된다. 어떤 환상적 내지 승화된 이미지로서…. >>

그렇다. 하나의 문학작품에 있어 시간은 때로 역전, 정지될 수도 있다. 정경묘사일 수도 있겠고 작중 인물의 성찰이 있을 때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문학작품이 아니고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라면 어떨까.

내가 봄마다 꺼내볼 수 있는 것, 한번씩 폭풍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지나온 시절에 전율하여 환희에 젖곤 하는 그런 것, 그리고 이내 우울해지기도 하는 것-그걸 나는 임의대로 삶의 '에피파니'라 명명해본다.

ⓒ 데일리중앙
지척에 몇 몇 소식 끊기지 않은 친구들을 불러보고 싶지만 한번 이별한 우리라설까. 만남 하나만으로 웃음 주던 그때완 사뭇 달라진 우리들이다. 연연해하기 보단 그냥 한 편의 추억에 기끼워하리라.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다시 읽으며 부디 설레는 봄을 눌러보리라.

데일리중앙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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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주 2009-04-04 19:22:02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나니 완연한 봄이다.
봄이 원래 그런 계절인가보다. 괜히 울적해지고 누군가 그리워지고 그런 계절.
계절의 사춘기라고나 할까 그런 것 아닌가 싶다. 그런게 없다면 좀 삭막한 사람이겠지.
진해군항제가 열리고 있다는데 진해에는 벚꽃이 한창일텐데. 그 탐스런 벚꽃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