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정국 '폭풍전야'... 정치권, 살얼음판

대중 폭발성 강한 추모 열기 언제 터질지 몰라... 청와대도 '근조 모드'

2009-05-25     석희열 기자

정국이 거대한 태풍의 눈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따른 조문 정국으로 정치권은 폭풍 전야의 긴장 속에 숨을 죽이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몰고올 두려움과 불안감에 떨고 있는 것이다. 대중 폭발성이 강한 추모 열기가 점점 데워지면서 응축된 에너지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폭발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민감한 시기에 자칫 오버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로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지나친 정치적 해석을 자제하고 해외 출장을 취소하는 등 추모 분위기 속에 몸을 낮추고 있다. 당분간 정치 일정도 중단했다.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들에게 장례 기간 동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언행을 최대한 자제하고, 골프 등을 금지하라고 당부했다. 애초 이번 주로 예정됐던 의원 연찬회와 신임 원내부대표단 선임 일정도 뒤로 미뤘다. 25일 여야 원내대표 협상도 취소됐으며, 당 쇄신특위도 추모 기간 동안 회의를 연기하는 등 일체의 정치 행위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박희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는 더욱 신중하고 더욱 절제된 행동을 보여야할 때"라며 "우리 모두 슬픔의 짐을 나누어지고 정치권에 부과된 이 어려운 숙제를 풀어나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극도로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추모 열기가 제2의 촛불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처럼 전국으로 촛불이 확산될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2년차를 뒷받침하기 위한 속도전에 급 제동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공식 비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장례 기간 동안 조문에 당력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의원들은 24일부터 상임위별로 조를 짜서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로 내려가 조문객을 맞고 있다. 해외 출장 중인 11명의 의원도 25일 밤까지 모두 귀국, 29일 영결식에는 모든 의원이 참석할 예정이다.

6월 임시국회 일정도 늦춰질 전망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애도 기간을 감안하면 6월 국회가 1, 2주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허용범 대변인도 "6월 임시국회가 1주일 정도 순연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언론 관계법, 비정규직법, 한미 FTA 동의안 등 쟁점법안 처리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청와대도 국민적 추모 열기 속에 '근조 모드'에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흘째 별다른 공식 일정 없이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과 향후 대책을 논의하며 대외적인 정치 행위를 자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참모들과 조문 형식에 대해 논의했지만 최종 결론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인사들에 대한 잇따른 조문 거부에서 보듯 이번 조문 정국은 정치인의 예상치 못한 발언 하나에 정국이 폭발할 수도 있는 초특급 태풍이다.